정상윤의 세 번째 네이슨, ‘나’‘나’, 네이슨은 격하게 아끼는 ‘그’, 리처드를 위해 자신을 초인이라 여기며 희열을 느끼는 ‘그’의 살인엽기행각에 동참한다. 동성애와 방화, 납치, 살인 등 소재부터가 자극적인 <쓰릴 미>, 이 독특한 작품에서 2009년에 이어 세 번째 ‘나’를 맡게 된 배우 정상윤, 그는 같은 작품이지만 매일매일 다른 연기를 생각한다.
“익숙하다기보다 매 공연마다 새로워야하니까요.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세 번째니까 많은 걸 알고 있긴 하죠. 작품 전반적으로, 씬 하나하나, 캐릭터, 서브텍스트나 느낌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 조망할 수 있는 여유가 좀 있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오히려 오늘은 어떤 감정선, 어떤 상황으로 여유롭게 보여줄 것인가 생각해볼 수 있어요.”
지난 번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그의 배우 인생에 있어 소중한 작품, <쓰릴 미> 출연을 제의받았을 때 망설임은 없었다고. 다만 관객의 욕을 도맡아 먹고 있지만 강렬한 매력으로 무장한 리처드, ‘그’를 연기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을까?
“이번에 해보고 싶었는데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나’를 맡게 됐어요. ‘그’도 강한 매력이 있는 캐릭터지만 사실 ‘나’는 작품 전체를 끌고 가야하고 나이 들었을 때와 젊었을 때를 왔다 갔다 하면서 할 게 많아요. 내 새끼 같은 애착이 있어요. ‘그’를 하려고 하다가도 계속 ‘나’에 대해 생각이 나더라고요. 내가 ‘그’를 하면 누가 ‘나’를 하지, 뭐 그런 생각을 했죠.”
무대 위에 오르는 사람은 ‘나’와 ‘그’, 그리고 피아노 한 대. 피아노 선율 속에 흐르는 두 사람의 페어 연기와 호흡이 그 어느 작품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그의 짝으로 낙점 받은 사람은 후배 송원근. 앞서 <파리의 연인>에서 호흡을 맞춰왔던 송원근의 합류로 정상윤은 ‘그’를 받쳐주는 ‘나’의 새로운 조합을 짰다.
‘나’와 ‘그’와의 관계정상윤은
<쓰릴 미>에 처음 참여하는 송원근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송원근 역시 방화와 납치, 살인을 오락처럼 즐기는 인간 유형 ‘그’와 밀착하기란 쉽지 않을 터.
“그래서 어렵거나 이해가 안 되거나 몰입이 안 될 때뿐 아니라 평소에도 둘이 붙어서 얘기를 많이 해요. 저도 직접적으로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원근이 기질에 맞게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저렇게 해보는 건 어때’ 그런 상황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죠.”이미 ‘그’를 추종하는 ‘나’에 몰입되어 보이는 정상윤, 작품 속 ‘그’를 철저히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나’와 ‘그’뿐이 아닌 사람과 사람과의 본질적인 관계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지금 인터뷰를 해도 제가 지금 말을 안 하면 안 되잖아요. 상대방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런 관계가 생활 속에 다 있잖아요.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우정, 사랑, 집착 이런 걸 떠나서 관계라는 것 자체를 깊이 생각하고 있어요. 두 사람의 치열한 관계가 장면마다 세세하게 그려지거든요.”모두가 궁금해 하는 그들의 키스신‘나’는 ‘그’를 사랑하고, ‘그’는 '나’를 필요로 한다. ‘나’와 ‘그’의 관계도다. ‘그’를 갈구하는 ‘나’를 맡은 정상윤은 동성애에 대해 그렇게 답했던 것 같다. 남자와의 키스가 아니라 역할로서의 키스라 충분히 몰입할 수 있고, 그래서 아무렇지 않다고.
<쓰릴 미>가 화제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인 ‘나’와 ‘그’의 키스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또 물었다.
“원근이는 처음이니까 좀 어색하겠죠.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극 속의 인물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죠. <쓰릴 미>라는 작품 자체가 마니아들이 많고 알아서 몰입해서 보시니까 관객들도 이상하게 보시지는 않는 것 같아요.”글쎄, 공연에 몰입해 보던 관객들도 집에 와서 일기 쓰듯 블로그에 감상평을 남길 땐 배우들의 키스신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오는 것 같던데…^^ 관객들에겐 작품의 내용이나 소재, 배우들의 연기보다 두 남자 배우의 애정신이 더 충격이었을지도. 그런데 배우 정상윤도 자신들의 키스신 도중 충격 받은 일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동참해서 방화를 저지르고 난 뒤에 저에게 상을 주는 느낌으로 키스를 해주는 장면이 있었는데요. 관객석에서 저희가 하는 키스를 본 연인이 키스를 하더래요. 저희 조연출이 그걸 본 거죠. 그 얘기 듣고 좀 놀랬죠. 로맨틱하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는데 그랬다는 게 쇼킹했어요.”흠, 과연 미스테리다. 두 사람의 실감나는 연기가 키스를 유발했던 걸까?
소극장뮤지컬의 신화, 올해도 가능할까?2007년 초연 이후 매 공연 기록행진을 달리며 주목받아온 뮤지컬
<쓰릴 미>, 특히 올해는 일본 크리에이티브팀이 가세해 또 한 차원 업그레이드되었다는 평.
“쿠리야마 타미야 연출님이 굉장히 디테일하세요. 동선이나 조명으로 관계가 바뀌는 설정을 많이 하셨어요. 이미지적인 걸 많이 생각하신 것 같아요.”연출을 맡은 쿠리야마 타미야는 일본을 대표하는 연출가로 지난해 한국에서는 <밤으로의 긴 여로>의 연출을 맡은 바 있다. 쿠리야마 타미야는 이미 일본 현지에서도 <쓰릴 미>를 연출해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었다고. 그런데 늘 진지한 표정과 굳게 다문 입이 좀 무서울 것 같다.
“웃으실 땐 귀여우세요. 연출하실 땐 포스가 있는데 평상시에는 잘 웃으세요. 저는 편안했어요. 오히려 든든했죠.”기자간담회에서 쿠리야마 타미야는
<쓰릴 미>가 두 배우와 피아니스트의 호흡을 통해 신화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작품이라는 말을 했다. 실제로
<쓰릴 미>가 단출한 미장센 속에서도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는 건 두 배우와 피아노의 유려한 합.
“피아노와 배우 두 명의 합이 굉장히 중요해요. 노래가 다 대사이기 때문에 어떤 ‘큐’들이 있어요. 누가 뭘 물었을 때 생각하지 않고 바로 말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피아노 역시 대사와 함께 맞물려서 들어가는 순간이 많은데 그런 합이 잘 맞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긴장감이 더 조성되죠. 0.1초 차이로 배우가 나오고 코드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 잘 맞으면 그게 가장 베스트죠.”그렇다고 무대 위에서 실수가 없는 건 아니다. 정상윤의 구두굽이 두 번이나 빠졌고, 떨어져야 할 가방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공연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미리 계획을 세워놓진 않아도 크게 걱정은 안 해요. 며칠 전에는 바지가 시작부터 허벅지 쪽이 뜯어져 있더라고요. 리처드가 노래하는 동안 짧다면 꽤 짧은 시간이 있어요. 분장실까지 갈 수는 없고 해서 스탭한테 바지를 가져다달라고 해서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멜빵 다 빼서 바지를 갈아입었죠.”그래서 2013버전
<쓰릴 미>, 그 스테디셀러의 신화는 계속될 것 같다.
그런데 <쓰릴 미>는 보는 사람만 본다?<쓰릴 미>를 한 번 본 사람들은 여러 번 보기 마련이라고들 한다, 블로거들이. 그런데 그 관객들 다수, 아니 거의 전부가 여성이라는 것이 좀 아쉽기는 하다. 하긴 여자 배우가 나오지 않아서일지도. 무대 위 정상윤은 어두운 객석이지만 공기의 흐름과 냄새로 분위기를 파악한다. 새로운 관객이 있는지도.
“한 작품을 여러 번 봐주신다는 게 우선 감사하죠. 그래서 더 고민을 많이 하게 돼요. ‘오늘은 이런 느낌으로 해볼까, 저런 느낌으로 해볼까?’ 하면서 더 재미있어져요. 관객과 같이 가는 공연이기 때문에 관객도 여러 번 보시게 되는 거 아닐까 해요. 저는 배우와 관객이 만들어가는 게 공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관객이 있어야 공연이 완성되잖아요. 관객도 공연을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가끔 공연이 끝나고 관객을 만나게 되면 관객들이 저한테 고생했다고 말하는데, 저도 관객에게 고생하셨다고 말해요. 특히 이 작품은 그게 더 강해서 마니아들이 더 강력하게 형성된 게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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