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렬하게, 더 자극적이게”
<쓰릴 미>는 김무열, 최재웅, 류정한, 김우형 등 수많은 스타 배우가 거쳐 갔고,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명성을 이어온 뮤지컬이다. 이번에는 신촌 소극장 THE STAGE로 옮겨 극의 밀도를 높였다. 최소한의 무대소품, 최소한의 무대 장치만으로 이루어진 작은 공간. 객석과 근거리에 있는 무대에서 단 두 명의 배우가 극을 이끌어나간다.
그야말로 배우의 땀방울, 숨소리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구조라, 배우들은 그 작은 무대 위 어디에서도 관객의 눈을 피할 수 없다. 게다가 피아노 반주 하나로 모든 노래를 소화해야 한다. 배우의 연기 내공이 샅샅이 드러나게 되는 작품인 셈이다.
나와 그, 두 명의 천재소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친구였다가, 한시도 떨어져있고 싶지 않은 연인이었다가, 나중에는 결국 범죄를 저지르고 공범이라 불리게 된 사이. 모범생과인 나와는 달리 그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큼 매력적이고 사교적인 소년이다.
나는 언제나 그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러다보니 언제나 그가 원하는 대로 끌려 다닌다. 급기야 그 사랑을 대가로 그가 원하는 모든 일을 함께 하자는 계약서까지 쓰기에 이른다. 나가 이 끔찍한 유괴 사건에 동참하게 된 까닭이다.
실제 유괴사건 바탕으로 한 이야기
두 사람은 심심한 일상에 자극이 될 만한 작은 범죄를 일삼다가 급기야 그마저도 성이 안차 강렬한 경험을 기획한다. 아이를 유괴해서 죽이는 완전 범죄를 저지르기로 한 것이다. 보통 사람으로는 공감하기 어려운 기획 의도와 계획이지만, 이 이야기는 1924년 시카고에서 일어났던 실제 유괴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쓰릴 미, 스스로를 전율하기 위해 만든 범죄는 온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실제 사건이 배경이라고 하니, 스릴이라기보다는 충격과 공포가 더 크다.
단 두 사람이 등장해 학창시절부터 범죄 당시, 34년 후에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모습까지 연기로 풀어낸다. 빈 무대에서 조명으로 음악으로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연출과 연기의 힘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2007년부터 국내에서 공연되고 있는
<쓰릴 미>는 매해 연출가와 배우를 바꿔가며, 해마다 색다른 인상으로 관객을 만났다. 연기와 연출로 극의 몰입도가 높을수록 마지막에 마련되어 있는 반전이 훨씬 강렬하게 다가온다. 올해는 일본 크리에이브팀이 대거 참여했다.
이번 공연에는 또 다시 ‘나’로 돌아온 정상윤과 전성우, 매력적이자 마력적인 ‘그’의 역에는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이재균과 송원근이 연기한다.
정상윤은 ‘나’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모습- 소심함, 나약함, 음침함, 단호함 등의 모습을 표정과 목소리만으로 표현해낸다. 특히 소년시절의 ‘나’와 감옥에 수감된 ‘나’는 목소리나 인상만으로도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다.
무대 위에서 범죄가 벌어질 때 송원근이 어린 소년을 노래로 유혹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소름이 오싹 돋는 장면이었다. 이번에 새로 <쓰릴미> 무대에 서는 송원근과 이재균은 동안 미모와 미성을 자랑하며 여느 스릴미 듀오보다 소년다운 느낌을 잘 살려낸다.
쳐다만 봐도 미소 짓게 만드는 아름다운 ‘그’가 취미 삼아 범죄를 저지르고, 모범생인 ‘나’는 탐닉하는 게 따로 있다.
<쓰릴 미>는 극 속 사건이나 캐릭터를 통해, 우리가 보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보여준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한다. ‘나’를 사로잡은 ‘그’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그’가 ‘나’의 마음을 완전히 조종할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천재가 아니더라도 삶에는 누구나 자극이 필요하고, 그 자극을 채우길 욕망한다. ‘그’에게는 범죄였고, ‘나’에게는 사랑이었다. 어떤 이는 그 욕망 때문에 더 많은 일을 하고, 어떤 이는 그 욕망과 사이좋게 지내는 지혜를 터득한다. 원하는 건 모든지 가질 수 있었던 ‘그’가 결국 그 욕망 때문에 무너지는 걸 보니, 쉽게 얻는 건 쉽게 잃는다는 옛날 말은 천재도 피해갈 수 없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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