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랑과 유랑사이 - 박범신의 『소금』
세상의 모든 소금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맛이 달라
‘붙박이 유랑인으로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들의 이야기’라는 카피처럼 이 소설은 고착화된 역할에 목이 매여 떠돌아 다닐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아버지를 생생히 묘사한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과 세상을 잔인하게 드려다본다.
“우리네 삶을 몰강스럽게 옥죄는 전 세계적 ‘자본의 폭력성’ 에 대해, 문학은 여전히, 그리고 끈질기게 발언해야 한다고 믿는다” 는 박범신. 그의 신작 『소금』은 『비즈니스』, 『나의 손은 발굽으로 변하고』에 이은 자본의 폭력성에 대해 발언하는 장편소설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던 작품이기도 한 이번 신작은 그가 ‘소금’이라는 소재를 통해 가족관계에 내면화된 자본의 매커니즘에 대해 ‘발언’ 한다.
전작 『비즈니스』가 ‘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본에 의해 밀려난 이들의 골목변을 누볐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자본의 원리에 길들여진 인물들의 유랑(流浪)과 부랑(浮浪)의 사이를 오간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아버지 모습을 한 ‘선명우’를 내세워 그는 가족에 대해서,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고 새로운 인간관계와 삶의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선명우와 나, 췌장암 진단을 받고 막내딸 생일에 집에 돌아가는 길 우연치 않게 마주한 사고 앞에서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 선명우, 이혼을 하고 내려온 고향마을에서 우연히 시우를 만난 나의 이야기에서 서사는 하나로 모아지는 듯 하지만, 실은 반복되고 어긋나는 현재와 과거를 통해 오히려 이 소설은 새로운 서사를 위한 서사들로 펼쳐진다. “어떤 연속극에서 핏줄은 무조건 당기는 거라는 말을 들은 일이 있는데, 다 뻥” 이라는 선미의 말처럼 처음엔 부랑했으나, 유랑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박범신은 특유의 진하고 묵직한 문장을 통해 몇 개 되지 않는 선택지를 가진 우리네 가족과 아버지를 그려 나간다.
‘붙박이 유랑인으로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들의 이야기’라는 카피처럼 이 소설은 고착화된 역할에 목이 매여 떠돌아 다닐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아버지를 생생히 묘사한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과 세상을 잔인하게 드려다본다. 소설 속 '빨대'라고 표현된 자식과 “치사해, 치사해.” 라고 외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네 아버지들은 지금 어디에서 부랑하고 유랑하고 있는지 되돌아 보게 된다.
예전의 삶이 부랑이었다면 그 즈음의 삶은 유랑이었고, 자유였고, 자연이었다. 본질적인 단맛이기도 했다. 그는 그 자신이 강물이 됐다고 느꼈다. 그것이야말로 아버지를 찾아 하루 백오십 리가 넘는 길을 걸었던, 그리하여 멀고 흰 강의 꿈을 꾸었던 오래 전부터 시작된 잠재적인 욕망이었다. 사랑이, 자유가 왜 강물이 되지 못하겠는가. 겉으로는 흐르는 삶이었지만 속으로는 진실로 머물렀다고 자주 느끼기도 했으며, 그래서 그는 머무르고 흐르는 강이 된 자신이, 아주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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