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김봉석의 하드보일드로 세상읽기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다함이 없다’ - 『로스트 라이트』
형사이든 아니든 이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죽은 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보슈는 죽은 자들의 소리를 듣는다. 그들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밝혀내려 한다. 다수를 위한다는 모호한 이유 혹은 추상적인 목적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로스트 라이트』에서 중요한 것 하나는, 지금 당장 거대 권력과 맞서 어떻게 보슈가 승리를 거두는가, 이다. 궁극적인 승리가 아니라, 직면한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
『블랙 에코』로 시작하여 『라스트 코요테』 『앤젤스 플라이트』 등으로 이어지던 해리 보슈 시리즈는 8번째 작품 『유골의 도시』에서 변화를 모색한다. LA의 형사였던 해리 보슈가 『유골의 도시』가 끝나면서 사직을 결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9번째 작품인 『로스트 라이트』에서 해리 보슈는 사립탐정으로서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형식에서도 변화가 있다. 『유골의 도시』까지는 3인칭으로 해리의 행동과 심리를 묘사하지만, 『로스트 라이트』에서는 1인칭으로 해리 보슈의 마음을 탐험한다. 아마도 그의 마음을 더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15세기의 화가 히에로니머스 보슈의 이름을 따서 지어준 어머니는 창녀였고, 보슈가 열한 살 때 살해당했다. 청소년 보호소와 위탁 가정을 거치며 성장한 보슈는 16살 때 입대하여 베트남 전쟁에서 ‘땅굴쥐’로 활동했다.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을 일찌감치 경험했던 해리 보슈. 그의 이름과 같은 화가 히에로니머스 보슈의 그림이 보여주었던 연옥도의 풍경처럼, 잔인하고 추악한 세계를 고독하게 걸어가는 남자의 마음이 뭔지는 정말 궁금하다.
『유골의 도시』에서 보슈는 회의를 느낀다. 범죄로 뒤덮인 도시는 단지 현대의 역병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어쩌면 폭력의 유전자가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순진무구한 이들이 어느 한 순간 정신이 나가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고, 단순한 욕망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잔인해지기도 한다. ‘고독한 늑대’였던 해리 보슈는 조직 내에서 피곤함을 느꼈다. 승진한다 해도, 보슈가 조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예 자유로워지자,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보슈의 마음은.
그만한 일을 해치우는 데도 경찰국과 연방수사국 내부 정책들의 집중포화 속을 걸어가야만 했다. 내가 더 이상 그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랐다.
‘형사이든 아니든 이 세상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죽은 자의 편에 서는 것이다.’ 이것만이 보슈가 지키는 원칙이고, 정의다. 보슈는 경찰을 그만두면서 그가 일했던 12년간의 미제 사건 파일을 몽땅 가지고 나왔다. 더 이상 경찰에서는 수사하지 않는 사건 그러나 종결되지 않은 미제사건들. 누구의 의뢰도 받지 않은 채, 보슈는 그 중 하나인 안젤라 벤턴 사건을 파고든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강간 살인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뒤 영화촬영현장에서 소품으로 쓰이던 지폐 200만 달러를 강탈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안젤라 벤턴은 돈을 강탈당한 영화를 만들던 영화사에서 일했고, 그렇다면 그녀가 범죄에 연루되어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미심쩍은 증거들도 발견됐지만, 사건은 종료됐다. LA 경찰국 강력계에서 사건을 가져갔고, 담당이 된 강력계 형사 잭 도시와 로턴 크로스가 술집에서 강도의 총에 맞아 도시가 죽고 크로스가 반신불수 되면서 흐지부지됐다.
해리 보슈는 안젤라 벤텐 사건을 추적한다. 200만 달러 강탈사건의 범인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FBI 요원 마서 게슬러가 실종된 사건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벽에 부닥친다. 경찰국에서 압력이 들어오고, FBI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협박을 가한다. 보슈가 수사하는 사건 어딘가에 ‘국가 안보’와 연관된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 안보’를 지키는 조직과 부서는 어떤 규칙도 지키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 위에 존재하고, 어떤 행동이든 다 할 수 있다.
리액트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 보슈. 대테러 신속대응팀 말이야. 2001년 9월 11일 이후부터는 규칙도 없어졌어.....그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켜보며 이곳의 룰을 모조리 바꾸고 있어.
그들은 해리 보슈를 협박하며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한다. 충돌하는 지점은 간단하다. 리액트 팀은 국가 안보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의 평화를 위해 개인의 정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소수를 희생시켜 다수를 구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생각한다. 보슈는 죽은 자들의 소리를 듣는다. 그들을 죽인 자가 누구인지 밝혀내려 한다. 다수를 위한다는 모호한 이유 혹은 추상적인 목적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로스트 라이트』에서 중요한 것 하나는, 지금 당장 거대 권력과 맞서 어떻게 보슈가 승리를 거두는가, 이다. 궁극적인 승리가 아니라, 직면한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
하지만 마이클 코넬리는 일방적으로 보슈의 행동을 찬양하지 않는다. 친구이기도 한 FBI 요원 린델은 말한다. ‘그는 언제나 자기가 원하는 것만 추구했어요. 경찰 배지를 달고 있을 때조차도 그는 언제나 사립 탐정처럼 행동했죠.’ 이 말은 결코 찬사가 아니다. 린델은 보슈가 자기 맘대로 행동하여 사건을 해결했을 때, 그리고 린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이런 말을 했다. 보슈도 알고 있다. 그가 움직이는 이유는, 자신이 원할 때뿐이라는 것을. 필요한 일이었지만, 결국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그 영상을 본 보슈는 생각한다. ‘그것이 감시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그 부분은 나를 거의 침입자처럼 느끼게 만들었고, 나 자신 속에 그은 품위의 선을 넘어버린 기분이었다.’ 어쩌면 보슈를 협박한 FBI 요원들과 불법적으로 감시카메라를 설치한 보슈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보슈는 언제나 ‘죽은 자의 편’에 서 있다. 그것만이 유일한 정의다. 추상적인 평화나 정의가 아니라 그들의 구체적인 원한을 풀어주는 것이, 보슈의 원칙이다. 『로스트 라이트』는 ‘마음속에 있는 것들은 다함이 없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언제든 다가올 것은 오기 마련이고, 해야 할 일들은 해야만 한다. 보슈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자신이 믿는 것, 원하는 바를 행하기 위해 헌신한다. 그 결과가 반드시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유골의 도시』도 그랬고, 『로스트 라이트』에서도 밝혀진 진상은 너무나 추악한 것이다. 끔찍한 살인마가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이 조금 선을 벗어나면 저지를 수 있는 범죄들. 이 세상의 삶이 결코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야기들.
그럼에도 홀로 선 해리 보슈는 더 이상 절망의 나락으로만 빠져들지는 않는다. 세상이 지옥이라면, 그 지옥에서 우리가 해야 할 몫이 또한 있는 것이니까.
사랑과 상실감 속에서 밤은 항상 신성하다. 인간이 그렇게 만들 수 있을 때에만 멋진 세상이 될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