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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의 재상 아흐마드

20년 동안 정국의 중심에 있었던 남자, 말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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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의 무슬림 경제 관료들은 오르톡 조직과 표리일체의 관계였다. 쿠빌라이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힘을 행사한 아흐마드Ahmad는 오르톡의 상인 출신이었다. 그는 무서울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다.

쿠빌라이의 무슬림 경제 관료들은 오르톡 조직과 표리일체의 관계였다. 쿠빌라이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2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힘을 행사한 아흐마드Ahmad는 오르톡의 상인 출신이었다. 그는 무서울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다.

아흐마드는 지금에 비유하면 재정ㆍ산업ㆍ건설ㆍ농수산ㆍ경제 기획 등 모든 것을 사실상 혼자서 장악했다. 쿠빌라이 정권이 추진한 거대한 프로젝트와 그것을 지원하는 중앙의 재무 행정 기구는 그를 정점으로 하는 실무 담당 그룹이 맡고 있었다.


쿠빌라이 칸

아흐마드 본인은 궁정이 대도 방면으로 남하하는 겨울에는 거의 대부분 쿠빌라이의 옆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황제 쿠빌라이가 궁정ㆍ군단 외에 정부 요원의 절반을 데리고 상도上都 방면으로 북상하는 여름 동안에는 제국 운영의 중심인 거대 도시 대도에 잔류해 경제ㆍ통상ㆍ세금 징수 등 중앙기구가 지장 없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힘썼다.

그에게는 7명의 아들이 있었다. 아흐마드는 그 7명을 이른바 자기의 ‘분신’으로 삼았다. 제국의 2대 도시인 대도와 항주의 재무책임자로 상주시키는 등 천주, 광주 등 강남의 거점이 되는 항만도시나 경제 요충지에도 파견해서 활약하게 했다. 즉 아흐마드 부자들이 대원 울루스의 재무ㆍ경제의 핵심 부분을 장악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대원 울루스의 서쪽 면에 해당되는 섬서ㆍ감숙ㆍ운남의 재무와 경제의 전반을 쥐고 있던 사이이드 아잘Sayyid Ajall과 그의 일족이다. 이 일족은 그 이전에는 독립 국가였던 운남에서 금은 광산의 개발과 농경지의 확장을 목적으로 하는 토지개발을 오랫동안 추진해왔다. 일종의 ‘자수성가형 기업인’이었다. 그런데 아흐마드 일족이 실각한 뒤 이 일족은 운남의 토지개발 업무뿐만 아니라 동남 해안 지역의 해외무역 관리 등에도 기용되었다.

한편 아흐마드의 인맥에는 아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예를 들면 아흐마드가 암살된 뒤 중앙정부의 재무장관이 된 유명한 상가한자로는 ‘桑哥’ 또는 ‘相哥’로도 기록되었다는 원래 쿠빌라이 황제의 스승인 파스파의 제자로 ‘슈크르치’, 즉 몽골어로 ‘승려’였다고 한다. 티베트인 또는 티베트화한 위구르인이었던 상가는 여러 나라 말에 능했고 티베트ㆍ위구르ㆍ화북 불교 각파에 모두 인맥이 있는 독특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흐마드의 조직에서 재무에도 통달한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아흐마드 암살 후 일시적으로 중앙재정을 담당했던 노세영盧世榮은 한족이었다. 그러나 여러 나라 말에 능통했다. 게다가 아흐마드의 오른팔이라고 해도 좋은 장혜張惠의 경우 이름은 한족 같지만 어릴 때부터 몽골에서 자란 인물이었다.

이 당시를 ‘인종’으로 생각하는 것은 헛수고다. 특히 아흐마드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러했다. 아흐마드는 다방면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고 인종 또한 다양하게 갖춰 그 어떤 지역이나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의도해서 그룹을 구성했을 것이다.

아흐마드는 너무나도 유능했다. 그리고 20년이라는 너무나 긴 기간동안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 20년 동안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온갖 기구가 바뀌고 변했으며 세상이 변했다.

20년 동안 정국의 중심에 있던 그는 자신은 엄격하게 대했지만 자기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또한 그는 사람들의 질시와 원한을 살 만한 일을 태연하게 행했다. 한족의 원한은 아흐마드 본인과 그의 일족에게 집중되었다. 그 결과로 그는 결국 한족의 손에 암살당하고 말았다. 1282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아흐마드가 중앙재정을 장악하고 있는 사이에 쿠빌라이 정권은 남송 접수 작전을 비롯한 대규모 사업을 차례로 진행시켰다. 보통 정권이라면 대도 건설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쿠빌라이 정권과 그 중앙정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단한 능력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원의 뒤를 이은 명왕조는 자기들이 제작한 중국 정사인 《원사元史》에서 아흐마드를 상가 등과 함께 〈간신전姦臣傳〉에서 다루었다. 농본주의를 내세운 중국의 유교식 전통 관념으로 보면 ‘상’은 꺼려야 할 ‘말업末業’이었다. 중화 문화를 절대시하는 ‘문화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들에게 국정의 ‘일부’(사실은 대부분)를 담당하면서 상업 이윤만을 추구한 무슬림들의 거두 아흐마드는 용서하기 힘든 ‘악’의 화신이었다.

그런데 페르시아어로 쓰인 ‘몽골 정사’인 《집사》에서는 〈쿠빌라이기〉속에서 한 절을 할애해 〈아흐마드전〉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그의 암살 사건에 대한 대목은 제법 상세하다. 그 다음에 나오는 〈상가전〉과 함께 아흐마드 그리고 그의 후계자인 상가에 대해 《집사》 전편에 걸쳐 비몽골인으로는 매우 파격적으로 다루었다.

동일한 사건도 평가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달라진다. 몽골에게 어느 쪽이 진실인가는 새삼 말할 것도 없다. 아마 이뿐만 아니라 중국 정사의 평가만을 진실이라고 믿고 고색창연한 훼예포폄毁譽褒貶의 필주筆誅를 태연하게 행해온 사람이 만약 있다면 마음이 쓸쓸해질 뿐이다. 중국 정사는 좋든 나쁘든 중화 문화의 방침과 전 왕조의 정사 편찬에 해야 하는 다음 왕조의 입장을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되풀이해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쿠빌라이 정권을 모범으로 삼아 국가 재편과 행정 개혁을 추진하려고 했던 훌레구 울루스의 군주 가잔Ghazan, 合贊과 그의 재상 라시드 앗딘(그는 유대계였다고 한다. 아흐마드와 마찬가지로 ‘이방인’이었다)이라는 조합은 묘할 정도로 쿠빌라이와 아흐마드의 조합과 비슷하다. 먼저 쿠빌라이와 아흐마드를 먼저 자기들의 개혁 정치의 최고의 모범으로 삼았다는 점, 그리고 아마도 아흐마드의 능력에 대한 끝없는 애증의 마음을 품고 《집사》 속에서 자기들의 동시대인이면서 ‘선인’이기도 했던 아흐마드의 전성기를 기록한 것이 그것이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지만 만약 아흐마드가 근현대에 태어났다면 엄청난 재정 능력과 탁월한 사업 운영 능력을 통해 틀림없이 세상 사람들이 절찬을 받았을 것이다. 또는 너무 유능해서 오히려 오직汚職이나 직권 남용의 죄를 뒤집어쓰고 실각하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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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눈으로 본 세계사 스기야마 마사아키 저/이경덕 역 | 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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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스기야마 마사아키

1952년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교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교토여자대학 조교수를 거쳐 현재 교토대학 교수다. 주요 연구 주제는 몽골 시대사로 일본 내에서 몽골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1995년 《쿠빌라이의 도전》으로 산토리 학예상을 수상했고, 2003년 시바료타로상, 2006년 《몽골제국과 대원 울루스》로 일본학사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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