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우리의 인생은 크게 3막으로 나뉜다. 인생 1막은 태어나서 결혼까지다. 부모들에게 자식을 언제까지 돌볼 것인지 물으면 절반 이상이 결혼할 때까지라고 대답한다. 이는 자녀들도 마찬가지여서, 부모의 우산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립을 하는 시기를 결혼 때까지로 본다. 인생 2막은 사회생활을 하다가 은퇴할 때까지로,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동분서주하면서 자기 삶의 공고한 토대를 쌓는 시기이기도 하다. 마지막 인생 3막은 은퇴 후부터 죽을 때까지로, 치열한 삶의 결과물들을 정리하는 시기다.
예전에는 각각의 막이 25년씩이었지만, 이제는 각각 30년씩으로 늘어났다. 30세에 결혼, 60세에 은퇴, 90세에 인생의 막을 내리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83세까지 살다가 93세에 죽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83세에 자신이 치매에 걸렸다는 사실을 발표했는데, 그 후 10년 동안 긴 투병생활을 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83년 동안 배우로, 혹은 정치인으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았던 레이건의 마지막 10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시간을 온전히 레이건만의 비밀로 해주고 싶었던 가족들의 배려 때문이었다.
사람의 일생은 삶과 죽음 두 가지로만 되어 있는 게 아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는 생즉비생(生卽非生), 즉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시간’이 있다. 그래서 사람은 ‘삶을 살다’가 바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누구나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시간’을 지나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9%인 53만 명이 치매에 걸렸고, 85세를 넘는 노인의 절반이 치매 상태라는 통계가 있다. 더욱이 이들 중 3/4은 노인요양원에 있거나 심지어 간병 혜택도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문제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에서 치매환자가 5년마다 두 배씩 늘어나 2025년에는 100만 명을 웃돌 것이라는 점이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또 다른 이유는 돈 문제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 중 2위인 아일랜드와 3위인 멕시코를 합친 45% 수준으로 압도적인 1위다. 게다가 65세 이상 독거노인의 빈곤율은 77%에 달해서 OECD 평균의 3배가 넘는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유독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60세 이상의 가구를 보면, 소득 중에 35%를 빚을 갚는 데 쓴다고 한다. 그런데 대출 받은 용도의 절반 이상이 자식의 사업자금이라고 한다. 인생의 3막에 이르러서까지 자식들 사업자금을 대주느라 돈을 빌리고 이자까지 내주며 살다 보니 자연히 팍팍한 노후를 보낼 수밖에 없는 인생, 그것이 우리나라 노인들의 은퇴생활이다.
여기다 가족들의 병치레와 금전 문제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시간을 더욱 길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부모나 배우자의 병 수발하랴, 놀고 있는 자식들 뒷바라지하랴, 정말 고단한 나날의 연속이다. 그래서 어느 날,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보며 문득 이렇게 깨닫게 된다.
“이건 정말 사는 게 아니다!”
결국 은퇴 준비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시간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일이다. 인생 3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정말이지 ‘사는 것처럼 사는’ 시간으로 메울 수 있는 방책을 만드는 일, 이것이 은퇴 준비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은 언제부터 시작될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치매나 중풍 같은 노인질환이지만, 현실은 결국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우스갯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루 용돈 1,000원이면 파고다공원, 5,000원이면 종각, 20,000원이면 시청.”
인생 3막을 살아가는 사람은 수중에 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이 말은, 최악의 노인질환은 결국 ‘빈손’이라는 냉정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이 세상에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노인은 하나도 없을 테지만, 현실은 어떤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말년을 보내다 인생이라는 무대를 떠나고 있다.
당신의 묘비명은 무엇입니까?‘사는 게, 사는 게 아닌’ 시간을 지나면, 마침내 인생의 끝에 도착한다.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라는 영화가 생각나는가?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은퇴한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자신이 인생의 끝자락에 와 있다고 생각하고, 현재의 자신을 거꾸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인생의 맨 끝에서 뒤돌아 본 내 모습은 어떨 것 같은가?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 수 있으며, 내가 세상에 남길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
서양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의 일생을 집약한 묘비명(epitaph)이라는 것을 남긴다. 헤밍웨이의 묘비명은 ‘일어나지 못해 미안합니다’이고,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은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 슈베르트는 ‘음악은 이곳에 소중한 보물을 묻었다’이다.
고대 그리스의 물리학자 아르키메데스는 특이하게도 자신이 발견한 공식을 원기둥 안에 구(球)가 내접한 모양의 그림으로 남겼다. 미국의 위대한 사업가 앤드류 카네기는 ‘여기,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을 주위에 모으는 기술을 알고 있었던 한 인간이 잠들다’라는 멋진 묘비명을 남겼다. 아르헨티나의 여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에바 페론은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tina)’, 교육자 페스탈로치는 ‘모든 일을 남을 위해 했을 뿐, 그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을 남겼다.
이런저런 묘비명 중에 나에게 ‘은퇴와 인생’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가슴에 와 닿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걸레스님이라 불렸던 중광스님의 묘비명으로, ‘괜히 왔다 간다’이다. 평생을 기행으로 일관했던 중광스님다운 묘비명으로, 가슴이 짠해지는 무엇이 있지 않은가? 다른 하나는 94세까지 살았던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가 남긴 묘비명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런 묘비명을 남기고 싶지는 않지만, 어쩌면 나 역시도 결국엔 이처럼 되지 않을까? 우물쭈물하다가, 어영부영하다가, 우왕좌왕하다가 결국엔 이렇게 되고 말았다……. 이제 당신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의 묘비명은 무엇입니까?”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이미 은퇴한 사람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해봐야 한다. 후세에 길이 남을 멋진 묘비명을 남겨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 3막을 어떻게 꾸미고 마무리할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냄비 속의 개구리>라는 우화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뜨거운 물이 들어 있는 냄비에 개구리를 넣으면 곧장 튀어나온다. 하지만 물이 들어 있는 냄비에 개구리를 넣고 서서히 수온을 올리면, 개구리는 가만히 떠 있다가 결국 체온이 높아져 하늘로 배를 뒤집고 죽고 만다. 은퇴 문제에 직면한 오늘의 베이비붐 세대가 바로 냄비 속의 개구리 신세다. 세상의 판이 바뀌고 있고, 그들의 처지도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은퇴를 하게 되면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세상은 이와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빠르게 변한다. 은퇴 후에 잠시만 정신줄을 놓고 있어도 시장에서 엄마 손을 놓친 아이처럼 길을 잃고 만다. 어디로 갈지 고민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멈춰 있는 차에서는 핸들을 틀어 방향을 잡을 수 없다. 일단 차가 움직여야 핸들을 틀면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은퇴 준비도 마찬가지다. 일단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세상의 빠른 변화에 발걸음을 맞춰야 한다.
58년 개띠, 마침내 은퇴하다은퇴 이야기가 봇물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요즘 언론매체에는 매일같이 베이비부머(baby boomer)라는 말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6?25전쟁이 끝난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로, 전 인구의 15%인 700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2013년이 되면서 베이비부머를 부르는 다른 이름이 생겼다. 바로 ‘50대’다.
2013년은 베이비부머의 막내 격인 1963년생이 만 50세가 되는 해로, 맏형 격인 55년생은 만 58세가 되어 50대가 베이비붐 세대로 완전히 채워지는 해인 것이다. ‘50대’라는 말이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있다. 2013년은 베이비붐 세대의 상징인 ‘58년 개띠’가 만 55세 정년을 맞음으로써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이슈가 절정으로 치닫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베이비붐 세대는 인구수로는 15% 정도지만 전체 가구수 기준으로 보면 23%에 달한다. 더욱이 부채를 제외한 순자산 규모로 살펴보면 우리나라 가계 전체 순자산의 29%를 넘게 보유하고 있다. 이제 50대, 정년, 은퇴 같은 이슈는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50대들이 본격적으로 은퇴 모드에 들어가기 시작한 오늘날, 그로 인해 벌어지는 변화들은 쓰나미처럼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를 완전히 바꾸게 될 것이다. 어떻게 바뀔지 세부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이대로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가까운 예를 보자. 2012년 12월에 있었던 18대 대통령선거의 판세를 가른 것도 50대 유권자였다. 우리나라에서 50대 유권자의 비중은 19%로, 연령대별로 보면 가장 낮은 20대 이하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지만 출구조사 통계로 추정한 실제 투표자를 보면 50대들이 22.4%로 가장 높았다.
반면에 2002년의 16대 대통령선거 때는 50대 유권자의 비중이 13%였고, 실제 투표자 비중도 16%로 가장 낮았다. 오히려 그때는 40대 유권자의 비중이 세 번째 정도였는데 실제 투표자 비중은 24%로 가장 높았다. 주목할 점은, 현재의 50대와 10년 전 대통령선거 당시의 40대가 사실은 같은 베이비붐 세대라는 사실이다. 시대는 변했어도 베이비붐 세대가 대권의 향방을 결정짓는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디 그뿐인가. 베이비붐 세대는 주식세대, 컴퓨터세대, 아파트세대, 카드세대, 기러기아빠 세대 등 수많은 닉네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중산층 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의 큰 물줄기에서 항상 중심적인 위치에 있어 왔던 베이비부머들이 이제 새로운 은퇴 시대와 고령화 시대를 열어나가는 위치가 되었다.
특히 베이비붐 세대들은 100세 시대를 맞아 장수하는 부모님과 그들의 자녀가 주축인 에코 베이비붐 세대 사이에서 샌드위치 같은 위치에 있다. 그래서 양쪽의 문제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로 인한 절박감은 수많은 50대들이 은퇴세미나, 은퇴학교 등으로 몰려드는 데서 쉽게 알 수 있다. 이제 50대들은 고민을 넘어 직접 행동에 나설 시점이지만, 앞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직장이나 사업 여건은 대단히 어렵고, 마음은 급한데 바닥없이 추락하는 금리에, 나날이 오르기만 하는 물가, 대책 없이 떨어지는 집값과 세금폭탄 등 은퇴준비 여건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여기서 느끼는 ‘은퇴 피로감’이 이제 극에 달하고 있다. 소득은 줄어드는데 지출할 곳은 많고, 모은 재산은 별로 없는데 그나마 풀어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마디로 앞뒤가 꽉 막혀버린 형국이다. 게다가 준비할 여력도, 시간도 별로 없다. 집을 처분해서라도 대책을 마련하고 싶지만 아예 거래가 안 되고, 보험이나 연금은 손실 때문에 해약할 수도 없다.
그뿐인가? 손해가 난 투자 상품은 마냥 쳐다만 볼 수밖에 없고, 어쩔 수 없이 있으나마나 한 이자에 만족하며 그냥 은행에 넣어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요컨대, 현금과 부동산 등 수중에 쥐고 있는 재산이 제도와 경제 현실에 꽁꽁 묶인 채 돌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12년에 은퇴설계를 받은 1만 5,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유하고 있는 금융자산으로 연평균 1.5% 정도밖에 수익을 내지 못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은퇴자산으로 5억원을 갖고 있다면, 1년 동안 750만원 밖에 벌지 못했다는 얘기다.
반면에 베이비부머들이 각자의 은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수익률은 현재 보유한 금융자산으로 연 6.5% 정도는 꾸준히 내야 하는 것으로 나왔다. 은퇴자산 5억원으로 최소한 연 3,250만원은 수익이 나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전체 금융자산에서 5% 이상의 수익률을 현재보다 더 올려야 하는데, 지금 금융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는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변한 세상, 먼저 버려야 새로 채울 수 있다현실적으로, 직장생활을 했거나 평생 자영업에 종사해온 50대 전후 사람들이 은퇴 준비를 할 방법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50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정년을 앞두고 있거나 은퇴 직후에 세상이 이렇게도 갑자기 변할 줄 몰랐고, 그동안 벌어 놓은 돈이 그리 많지 않으니 그저 망연자실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뾰족한 해결책을 구해보지만, 50대를 위한 조언이라는 걸 들어보면 주로 쓰는 것을 줄이고 더 많이 저축하라는 뻔한 말뿐이다.
베이비부머는 정년퇴직 전까지 10년을 채우지 못하기 때문에 세금혜택이 있는 연금저축 같은 걸 들기도 어렵다. 게다가 50대가 되면 자녀의 유학이다, 혼사다 해서 지출할 돈이 최고조에 달하기 때문에 어디부터 어떻게 줄여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금융회사들은 젊은이들에게는 남들보다 일찍 은퇴 준비를 해야 한다고 야단들이고, 고령의 부자들에게는 자산관리다, PB서비스다 해서 난리법석인데 정작 은퇴 문제가 심각한 베이비부머들에게는 별다른 제안이 없다. 기껏해야 팔리지도 않는 주택 규모를 줄이라고 하고, 돈도 없는데 저축하라고만 한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에 베이비부머를 위한 금융은 없다.
필자 또한 이런 문제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사실 필자는 그동안의 직장생활이 주로 금융을 연구하는 곳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정작 나 자신의 재테크 전략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 집의 재테크는 영문과를 나온 아내가 전담하고 있는데, 가끔 아내가 돈 문제를 거론하다가 답답한지 이렇게 묻곤 했다.
“당신 정말 금융전문가 맞아요?”
필자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국제경제를 전공했고, 첫 직장도 증권사 연구소에서 국제금융시장을 분석하는 일이었으며 지금의 직장에 와서도 주로 금융사들의 개인 자산관리나 퇴직연금, 신탁, 금융시장분야의 전략을 연구했었다. 그러다 필자가 은퇴자산관리에 필요한 구체적인 은퇴 솔루션에 직접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증권사로는 처음으로 <은퇴설계연구소>를 만들면서부터이다. 이때부터 그동안 연구해 온 잡다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은퇴 솔루션이라는 걸 만들기 시작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나 자신이 베이비붐 세대이고, 내가 찾아야 하는 은퇴자산관리 솔루션이 바로 대부분의 베이비부머들이 찾고자 하는 솔루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이런 방식의 은퇴 솔루션은 현재 40대인 2차 베이비부머들과 우리의 자녀들인 20대 에코 베이비붐 세대에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쉬운 점은, 많은 금융사들이 아직까지 ‘은퇴’라는 주제를 사회복지나 연금, 보험, 또는 사회공헌 등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20세 이상 인구의 전체 평균연령은 10년 전만 해도 42세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평균연령이 47세가 되고 있어 이제 은퇴라는 주제는 금융기관 일부 고객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고객의 문제가 된 셈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대부분의 금융사들이 제시하는 은퇴 솔루션은 여전히 1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투자 상품, 고금리의 특판 예금, 절세되는 연금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금융권이 내놓은 자산관리 서비스는 은퇴자산보다는 투자자산의 관리와 절세 서비스 등에 치중되어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에만 주력해 온 것이다.
은퇴라는 주제는 돈을 버는 재테크보다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잘 풀어쓰는 방법에 관한 자산관리 서비스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제공하는 자산관리 서비스라는 관점에서 보면, 은퇴라는 주제는 고객의 전 생애에 걸친 종합자산관리로 확장되는 핵심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이와 동시에 금융업은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물론 금융회사들이 굳이 은퇴라는 테마를 다루지 않아도 다른 여러 금융 사업으로 살 수는 있다. 또한 다른 금융기관들이 은퇴영업의 길을 닦아놓으면 그때 진입해도 늦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은퇴 문제에 대한 명확한 솔루션을 선제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는 금융사는 앞으로 금융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증권업을 보면 주식중개만으로는 주가지수 1000을 넘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투자자산관리가 시작되었으나 결국 주가 2000시대를 열지는 못했다. 이제 2008년 글로벌위기 이후 은퇴서비스를 통한 종합자산관리가 시작되면서 3000시대로의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은퇴에 관한 모든 것을 알려주는 ‘은퇴 교과서’가 아니다. 그동안 은퇴와 관련된 강연과 기고 등을 통해 이야기해온 나 자신의 고민과 생각을 모아서 정리한 글이다.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접하고는 곧바로 시작했다. 필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은퇴 준비를 위해 무슨 상품을 사야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것을 버리고, 어디를 비워 놓아야 하는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처럼, 은퇴자들에게 다가올 새로운 50년을 위해서는 새로운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 50년을 허리에 묶고 다니면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렵다. 먼저 버리는 사람이 더 빨리 변할 수 있다.
지난 반생은 15년 동안 배워 25년 동안 써먹었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50년에서 적어도 10년은 다시 배워야 20년을 써먹지 않겠는가? 글자로 꽉 찬 종이에 어렵게 빈자리 찾아 무엇을 더 써놓아 봤자 아무도 알아볼 수 없다. 단호하게 지우고 새로 배운 것을 넣을 자리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부디 이 책이 지나간 많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채워 넣을 수 있는 빈자리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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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물쭈물하다 이럴 줄 알았다 김진영 저 | 홍익출판사
이 책은 은퇴를 앞뒀거나 이제 막 은퇴를 한 사람들이 반드시 들려야 할 건강검진센터 같은 책이다. 검진센터는 이미 암 말기 판정을 받은 환자가 아닌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가는 것처럼 이제부터 길어진 후반생을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미리 자신의 금융 상태를 돌아보고 점검하고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은퇴자산관리의 새 장을 열고 있는 저자 김진영 소장은 단순한 재테크로서가 아닌 은퇴 이후의 경제와 시장, 삶을 보는 법으로서 새로운 은퇴설계를 제안하며 더불어 새로운 삶의 목표까지 생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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