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돌의 노래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자연이다. 이 말이 진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몽돌이 구르는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파도가 휩쓸 때마다 수천, 수만 개의 몽돌이 제 몸을 굴린다. 몽돌은 오직 단 하나의 사명을 가진 것 같다. 더 둥글고 매끈하게 제 몸을 깎는 일. 그보다 겸허한 소리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찬란한 태양 아래 반짝이는 몽돌은 세상 어떤 보석보다 아름답다.
만물의 소리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다. 파스칼 끼냐르가 각본을 쓰고, 알랭 코르노가 연출한 <세상의 모든 아침>은 바로크 시대의 비올라 거장인 쌩뜨 꼴롱브에 관한 영화이다. 하지만 이 거장의 음악은 악기의 소리가 아니다. 세상을 깨우는 아침의 소리가 조화를 이루게 되었을 땐 더 이상 연주자도 청취자도 없다. 숨을 쉬는 당신과 나, 하나가 된 우리를 느낄 수 있다. 시대를 뛰어넘는 음악이 귀를 황홀할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생명성에 있다. 어느 맹인 가수에게 딸아이의 울음소리는 마음의 눈을 뜨게 한다.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사진작가의 셔터소리는 황홀을 준다. 낙엽 지는 소리, 얼음장 아래로 물 흐르는 소리, 해녀의 숨비 소리, 제야의 종소리. 무수히 아름다운 소리가 우리 곁에 살아있다.
햇살이 고루 내린 오월, 몽돌을 밟았다. 각지에서 여행을 온 사람들이 몽돌밭을 걸으며 휴식을 즐겼다. 아이들은 예쁜 몽돌 찾기 대회라도 하는지 허리를 숙이며 몽돌을 주웠다. 흑진주 빛 몽돌은 한 아이의 손바닥 위에서 더없이 빛났다. 재밌는 것은 몽돌밭을 걷는 자세였다.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몽돌을 위에선 엉거주춤 했다. 발을 자칫 잘못 디딘 사람은 미끄러지며 허둥댔다. 곳곳에서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다. 묵은 피로가 씻기는 기분이었다. 해수욕장을 절반 정도 걷자 몽돌이 그려진 표지판이 나왔다. ‘저를 데려가지 마세요.’ 주머니에 살짝 넣어두었던 작은 몽돌을 돌려주었다. 몽돌은 여럿이 부딪혀야, 파도가 쓰다듬어줘야 제 맛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이 따뜻했다. 주판이 한쪽으로 쏠릴 때 비슷한 소리가 났던가. 구슬이 맞부딪혔을 때 이렇게나 깊이 울렸던가. 사람이 만났을 때, 감정이 통했을 때, 이렇지 않았던가. 나는 소리의 길을 따라 걸었다.
숭어의 노래거제도 학동 포구를 찾은 이유는 숭어 잡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처음 숭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곡이 떠올랐다. 그 곡을 들을 때마다 싱싱한 숭어가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을 통통 두들겨 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슈베르트가 살았던 오스트리아 내륙엔 바닷물고기인 숭어가 있을 리 없었다. 나는 빈 합창단의 공연 영상을 보고 나서야 슈베르트의 곡은 숭어과의 민물고기 ‘송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송어이건 숭어이건 비늘이 두꺼운 물고기가 꼬리를 흔들며 힘차게 헤엄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생동감이 넘치고 기분이 좋아졌다. 학동포구에는 오월이면 어김없이 숭어가 돌아왔다.
어민들은 잡은 숭어를 물차에 싣고 있었다. 숭어는 그물을 찢을 기세로 몸을 뒤흔들었다.
“힘이 굉장한가 봐요.” 내가 묻자,
“장정 한 사람이 잡기에도 힘이 들지.”라며 어민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숭어를 한 마리 들어 올려선 움직이지 못하도록 힘껏 잡아 주었다. 느리게 뻐끔거리는 숭어의 입보다는 핏줄이 솟은 어민의 팔뚝에 눈이 갔는데, 그것이야말로 학동 포구의 자부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숭어 잡이를 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어민들은 큰 대꾸 없이 고개를 휙휙 돌리곤 했는데, 그들의 시선은 해안가의 아찔한 절벽을 향했다. 절벽 끝에 슬레이트 지붕을 친 판잣집 한 채가 덩그러니 자리했다.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격정의 사랑을 나눈 저택(『폭풍의 언덕』)도 아니고, 구름 미끄럼틀을 타는 무릉도원의 정자(亭子)도 아니며, 적막이 흐르는 군사지역의 참호도 아닌, 그저 판잣집이었기에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때, 어촌계장이 말했다.
“저기 가면 어로장이 있으니, 가 보이소.”
어로장의 노래숲이 우거지고 제법 험한 산길을 십여 분 걸으니 절벽 끝에 닿았다. 가까이서 본 판잣집은 생각보다 더 허름했지만 며칠 묵을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을 갖추어 신기할 따름이었다. 어로장은 다짜고짜 나를 창으로 이끌었다. 그는 저 아래 바다로 지나가는 숭어를 보라고 말했다. 백 마리 정도가 지나간다는데, 도무지 내 눈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물결만이 넘실대고 있었다. 내가 아쉬워하자 어로장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물 색깔과 고기 색깔을 육안으로만 판단하는데, 누구나 숭어를 보는 능력이 있으면 자신의 직업도 가치가 있겠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백 마리 정도는 양이 작아 그물을 올리지 않았다. 어로장은 내 무릎을 탁탁 두드리며 다음에 오라고 했다. 한번 잡히면 다음 그물 때까진 이삼일은 걸린다는 것이었다.
어로장은 새벽부터 망루에 올라, 해 질 무렵까지 숭어를 기다렸다. 숭어 떼는 주로 해 뜨는 시간과 지는 시간에 이동을 했는데, 그 때를 놓치지 않으려면 부지런해야 했다. 학동 포구는 전통어법에 기계식 그물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물을 미리 쳐두고 숭어 떼가 지나가는 순간 그물을 당기는 어법이었다. 적게는 삼백 마리 많게는 이만 마리도 잡힐 때가 있었다. 숭어는 신중하고 민첩하며 떼로 다니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어부 또한 숭어처럼 재빨라야 했다.
“숭녀야, 숭녀. 예전부터 숭어는 꾀 많은 여우라고 했지. 한 마리만 잡혀도 그 냄새를 맡고 떼로 도망가. 그런 물고기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숭어 이야기에 넋이 나갔고, 다음에 오라는 소리에 진이 빠졌다. 어로장의 경험에서 우러난 말은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 숭어를 설명한 대목과 같았다. (성질은 의심이 많고 위험을 피하는데 민첩하다. 헤엄을 잘 치고 수면 위로 뛰어오르기도 잘한다. 사람의 그림자만 비쳐도 급히 피해 달아난다.) 그러면서 우스갯소리로 숭어는 여자라는 말도 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온 종일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이었다.
오월의 노래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 그 방식은 리듬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모두 숨을 쉰다. 하지만 들숨과 날숨, 즉 호흡의 속도가 다르고, 세기가 다르며, 길이가 다르다. 그것을 음표로 그려놓으면, 하나의 악보가 된다. 우리는 쉼 없이 어떠한 소리를 만들어 내고, 마디를 끊으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악보를 그리고 있다. 바쁜 날은 스타카토, 비가 오는 날은 레가토, 눈부신 날에는 16분음표로 하루를 채우는 것이다. 몽돌은 도(道)를 수행하듯 제 몸을 굴리고, 숭어는 고향을 찾아 꼬리를 흔든다. 어로장은 오감으로 숭어의 물결을 좇으며, 나는 더 많은 삶의 리듬을 알고자 여행 가방을 꾸린다. 이렇게 포구를 다녀오면 흥얼거리는 노래가 하나쯤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 가벼운 콧노래가, 달라진 숨소리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믿음이, 모든 여행자에게는 있다. 오월, 얼마나 아름다운 계절인가. 각자의 보폭으로 우아하게, 혹은 날렵하게 리듬을 찾아내는 일. 지휘자는 당신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