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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위드 러브’ 영화와 소설은 일상과 다르지 않다

우디 앨런 감독의 To Rome with Love 대충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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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유럽의 도시에 남아있는 17ㆍ8세기의 돌길, 건강하게 그을린 이탈리아인들의 피부, 그 피부를 돋보이게 하는 원색의 의상, 동물적이고 매혹적인 현지인의 발음, 노천카페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 시민, 거리 곳곳을 지나치는 소형차,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일상적 병풍이 되는 콜로세움. 게다가 그 위에 깐소네와 유머가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얹어진다. 이렇게 된 이상 이야기는 중요치 않다. ‘허어, 어영부영 이야기도 굴러가니 이거 어쩐지 고맙잖아’ 하며 알 수 없는 감사함까지 고백하게 된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이야기꾼이 있다. 완벽하게 짜인 구성으로 한 치의 오차 없이 날실과 씨실의 완벽한 직조를 보여주는 이야기꾼, 그리고 어딘가 허술하고 그럭저럭 만든 것 같은 데 계속 보다보면 야금야금 매력에 젖게 하는 이야기꾼. 나는 둘 다 좋아한다. 하지만, 굳이 따져야한다면 후자를 더 선호한다. 사실 나는 인류에 잔존하는 몇 명 되지 않는 긍휼한 마음의 박애주의자인지라, 전자와 같은 이야기 구조를 보다보면 어느 순간 ‘아이구. 저걸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겠누……’ 하고 할머니같이 돼버린다. 반면, 후자의 이야기 구조는 ‘허어. 이 양반 정말 대충 만들었군. 편하게 사는 게 보기 좋구먼……’ 하며 포근한 안도감에 젖어보게 된다. 어쩐지 행복감까지 느껴버린다(네. 행복합니다). 그러니 나처럼 섬세한 사람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얼기설기 이야기를 짜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우디 앨런을 매우 존경한다. 우디 앨런이 한글로 작성된 내 글을 부인인 ‘순이 프레빈’의 입을 통해 번역해 듣는다면 매우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치어스! 뉴욕가면 맥주 한 잔 사겠습니다. 홍상수 감독도 이러하고, (때론 너무하다 싶은) 짐 자무쉬도 그러하다. 이런 감독들의 특징은 필름을 빌어 자신들의 취향을 전시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자연스레 취향의 박물관이 된다. 이틀 전에 봤는데 아직까지 흐뭇한 기분에 젖어 있게 한 <로마 위드 러브>도 그러했다. 영화의 곳곳에 로마를 향한 우디 앨런의 애정이 박혀 있었다. 21세기 유럽의 도시에 남아있는 17ㆍ8세기의 돌길, 건강하게 그을린 이탈리아인들의 피부, 그 피부를 돋보이게 하는 원색의 의상, 동물적이고 매혹적인 현지인의 발음, 노천카페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 시민, 거리 곳곳을 지나치는 소형차,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일상적 병풍이 되는 콜로세움. 게다가 그 위에 깐소네와 유머가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얹어진다. 이렇게 된 이상 이야기는 중요치 않다. ‘허어, 어영부영 이야기도 굴러가니 이거 어쩐지 고맙잖아’ 하며 알 수 없는 감사함까지 고백하게 된다(순이 프레빈 씨 이 부분을 잘 번역해주세요).

그는 이전 개봉작 <미드 나잇 인 파리>에서도 자신이 구축해놓은 취향의 박물관을 개관한 적이 있는데, 파리의 풍경은 물론 헤밍웨이와 스콧피츠제럴드, 살바도르 달리 같은 작가들도 등장시켰다. 밤이슬에 촉촉이 젖어가는 몽마르뜨 언덕을 배경으로 노란 나트륨 전구의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고, 귓가에는 샹송이 안개처럼 내려앉는다. 어디선가 마차가 등장하고, 그 마차를 타고 따라가면 1920년대의 작가들이 한 손에는 위스키 잔을, 다른 한 손에는 시가를 들고 연회장을 오가며 일상적이고 근사한 대화를 늘어놓는다. 이런 파티를 즐기고 난 다음날 아침, 호텔방으로는 따뜻한 햇살이 들어와 주인공의 하루를 채근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렇게 된 이상, ‘역시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다’. 어디선가 킹콩이 불쑥 나타나 도시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않는다면, 뭐 그런대로 이럭저럭 흘러가도 좋다고 여기고 만다.

사실 이런 느슨한 방식의 전개를 좋아하는 이유는 (물론 내가 박애주의자이기도 하지만) ‘영화와 소설이 일상과 다르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백일몽이 되었건 소소한 농담이 되었건, 이런 유의 작품을 접하게 된 후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어쩐지 내 일상 역시 영화와 소설의 배경이 된 듯한 기분에 젖는다. 그러면 나는 일상을 가린 시시한 커튼을 걷어내고, 그 뒤에 감춰진 빛나는 풍경을 마주한다. 내가 보낸 하루는 영화의 한 신(scene)이며 소설의 한 단락이다.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인 만큼, 내일의 신과 단락을 새로 쓰고 싶은 의욕이 생겨난다. 어쩐지 비장해져버렸지만, 이런 느슨함이 일상의 가치를 높여주는 도약대가 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로마 위드 러브>를 보고 나오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객석에 사람은 많지 않았고, 비평은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는 존재한다. 동시에 관객과 독자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고 좌절감을 주는 완벽한 작품도 존재한다. 하지만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언제나 ‘뭐야, 나도 만들겠잖아’ 라고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 기쁨을 많은 사람이 느낀다면 나도 기쁘다. 그렇다 해서 모두가 영화감독과 소설가, 음악가가 돼버리면 세상이 꽤나 곤란해지겠지만, 각자의 마음 한 구석에 만만한 예술가 몇 명쯤 있다는 건 괜찮은 것 같다. 말하자면, 최민석 씨의 소설처럼 말이다(‘뭐야, 이 칼럼은 나도 쓰겠잖아!’라고 느끼셨다면, 제 의도대로 읽은 겁니다. 계속 그렇게 느껴주세요). 그나저나, 우디 앨런은 천재예술가가 아니냐고? 그 반응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에 대해 가장 크게 신화화된 두 가지 사실은, 내가 지성적이라는 것과 아티스트라는 것이다.
 그건 아마도 내가 뿔테 안경을 쓰고, 내 영화가 돈을 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 같다.”
그나저나, 돈은 저도 못 법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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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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