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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도시, 야만인, 예상된 침략의 기다림…… - 『야만인을 기다리며』

정치인들에게 안성맞춤인 교훈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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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스웰 쿳시는 194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많은 문학상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두 번의 부커 상과 2003년에 수상한 노벨 문학상이 눈에 띕니다. 그는 성기지만 무척 암시적인 문체와, 정교하게 구성되고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최면에 걸린 듯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로 최고의 반열에 오른 소설가입니다. 그의 진수를 수상님께 보여주려고 저는 그가 1980년에 발표한 세 번째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골랐습니다.

캐나다 수상 스티븐 하퍼 님에게,
교훈적인 이야기를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

하퍼 수상님께,

얼마 전, 정확히 말하면 캐롤 모티머의 소설 『사내 연애』에 동봉한 예순네 번째 편지에서, 지나가는 말로 제가 존 쿳시를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 다음 편지, 즉 추천글을 언급한 편지에서도 부차티의 『타타르의 사막』을 추천한 작가로 쿳시라는 이름을 다시 언급했습니다. 따라서 이 최고 작가의 소설을 수상님께 보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존 맥스웰 쿳시는 194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났습니다(지금은 오스트레일리아 시민입니다). 그는 많은 문학상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두 번의 부커 상과 2003년에 수상한 노벨 문학상이 눈에 띕니다. 그가 그런 명예를 누린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성기지만 무척 암시적인 문체와, 정교하게 구성되고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최면에 걸린 듯 빠져들게 만드는 소설로 최고의 반열에 오른 소설가입니다. 그의 진수를 수상님께 보여주려고 저는 그가 1980년에 발표한 세 번째 소설,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골랐습니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치안판사가 소설의 주인공입니다. 그는 역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제국의 변방에 있는 국경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변방 너머에는 결코 야만적이지 않은 야만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평화를 사랑하며 도시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물물교환을 하는 유목민이고 어부들입니다. 야만인들과 도시 사람들의 관계는 좋습니다. 전반적인 삶이 평온하고 조용합니다. 그러나 제삼 국의 졸 대령이 찾아와서 치안판사에게 야만인들이 들썩이고 있으며 조만간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할 거라고 알립니다.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마침 두 야만인-병든 소년과 그의 늙숙한 삼촌-이 가축을 훔치려고 했던 죄목으로 얼마 전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졸의 감독 하에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삼촌이 죽습니다. 소년만 살아남아, 졸과 그의 부하들을 사막으로 안내해서 더 많은 야만인들을 생포합니다. 야만인들은 도시로 끌려가서 고문을 받습니다. 마침내 졸이 보고서를 작성하려고 수도로 돌아갑니다. 치안판사는 길에서 구걸하는 야만인 소녀와 우연히 마주칩니다. 발목이 부러지고 시력마저 부분적으로 상실한 소녀이고, 소녀는 아버지가 자기 앞에서 고문당해 죽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죄수들이 모두 풀려나고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신세였던 것입니다. 치안판사는 소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갑니다. 그러나 졸 대령이 새로운 군대를 데리고 돌아와서 치안판사는 도덕적이고 육체적인 지옥으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수상님이 직접 확인해보십시오. 그러나 이 정도만 하더라도 수상님의 귀에 익은 부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국경 도시, 야만인, 예상된 침략의 기다림…… 그렇습니다. 『타타르의 사막』의 전제와 무척 유사합니다. 우연의 일치는 아닙니다. 쿳시는 부차티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그 이탈리아 소설을 ‘색다르고 마음에서 잊히지 않는 소설, 평범함을 벗어난 고전’이라고 칭찬하며 추천했던 것입니다. 물론 두 소설은 완전히 다릅니다. 『타타르의 사막』은 햇살과 침묵과 고독에 젖은 철학적인 소설인 반면에, 『야만인을 기다리며』는 몸에 뿌리를 두고, 사람과 정치와 고통이 뒤범벅된 사회적 소설입니다. 쿳시는 부차티에게 영향을 받아 자신의 창의적인 여행을 시작하긴 했지만, 자기만의 고유한 종착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가들은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는가’라는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쿳시처럼 저도 다른 책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저는 브라질 작가 모아시르 스클리아르의 『막스와 고양이』(Max and the Cats)에 대한 서평에서 영감을 받아 『파이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 후로 종교, 야생 상태와 울타리에 갇힌 동물들의 행태, 바다에서의 생존을 다룬 책들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어서 그 소설을 써낼 수 있었습니다. 작가 자신의 삶이 중요한 영감원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약간만 풀어놓아도 소설만큼 흥미진진한 삶을 살아온 작가라도, 픽션에는 자서전보다 더 원대한 것이 계획됩니다. 픽션, 더 나아가 예술은 모든 가능성이 춤추는 광장이며, 온갖 유형의 생각이 모이는 집회장입니다. 따라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정기적으로 예술에 깊이 파고들려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는 것입니다. 예술에서는 삶의 가장 진부한 형태부터 지독히 가증스러운 형태와 이상적인 형태까지 온갖 형태로 논의되고 펼쳐지니까요. 삶이 당위적으로 어때야 하고, 현재의 삶이 어떠한지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예술과 함께하는 삶은 지혜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예술을 멀리하는 것은 자기만의 경험이란 편협한 틀 안에서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예술에 빠져들면 다양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술은 다른 현실, 다른 세계, 다른 선택을 우리에게 더 명확하고 더 밝게 더 가까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현미경인 동시에 망원경입니다. 예술은 현실이 잉태되는 풍요로운 꿈입니다.

영감과 창의력의 본질은 노력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창의력에 부여되는 가치는 분야마다 다릅니다. 예술과 과학과 사업에서는 창의력이 무척 중요하지만, 감히 말씀드리지만 정치에서 창의력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입니다. 정치인은 독창적인 아이디어까지는 아니어도 멋진 아이디어를 가졌다고 주장하고 싶어 합니다. 실제로 훌륭하면서도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행운을 누리는 정치인들-토미 더글러스(1904-1986)*가 제안한 포괄적 공중의료제도는 독창적인 공공정책의 명백한 사례입니다-도 있지만, 일반적인 관측에 따르면 지나친 독창성은 정치에서 위험합니다. 여하튼 정치, 특히 민주 정치는 가장 사회적인 행위입니다. 정치는 근본적으로 모임과 위원회를 통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 사람이 머리를 모아서 정책을 짜내야 합니다. 독창적인 머리를 지닌 사람이 혼자서 생각해낸 의견은 비현실적이고 무모하며 위험하기 십상입니다. 수상님의 이력에서 제가 지금 말한 것이 맞다는 게 입증되지 않습니까? 수상님이 개혁당에서 일하던 때와 지금의 수상님을 비교해보십시오. 개혁당의 혁신적인 제안들, 즉 개혁당이 캐나다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내놓았던 새로운 해결책들과 새로운 접근법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방법들은 하수구에 버려지고 잊혔습니다.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제 수상님은 한 나라의 수반으로서, 오랜 시간을 두고 구축되고 독창적이지는 않지만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의견들을 받아들이며 중도를 향해 신중하게 다가가고 있습니다.

소설의 가치는, 수상님이 그 소설을 읽고는 뒤늦게야 깨달았다는 듯 이마를 치고 하원에 제안할 새로운 법안을 끼적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소설의 독창성은 그 소설을 읽는 독자의 개별적인 특성에 호소합니다. 그 소설을 읽고 난 후 그 독자가 관습과 다른 사람의 감성을 배려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동한다면, 다시 말해서 정치적이 된다면, 소설의 독창성이 희석되는 것이지만 괜찮습니다. 우리는 어차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 하니까요. 그러나 예술이 없는 삶은 독창성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각자의 개성이 약화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결과는 서글프기도 하지만 위험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소중한 개성을 살리지 못하는 시민은 선동가와 독재자의 주장에 쉽게 휩쓸리기 때문입니다.

다시 존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로 돌아가겠습니다. 정말 훌륭한 소설입니다. 윤리적이지만, 독자에게 설교하려 들지 않습니다. 읽기 힘들고, 법의 이름으로 법을 제멋대로 농단하는 사악한 국가 관리들에게 분노를 억누르기 힘듭니다. 정치인들에게 안성맞춤인 교훈적인 이야기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얀 마텔 드림.


* 캐나다 정치인


존 맥스웰 쿳시(J. M. Coetzee, 1940년 생)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 학자, 번역가이다. 지금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살고 있다. 『마이클 K』와 『추락』으로 맨부커상을 2회 수상했고, 2003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9월, 『야만인을 기다리며』(왕은철 옮김/들녘)로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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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얀 마텔 저/강주헌 역 | 작가정신
이 책은 캐나다의 수상 스티븐 하퍼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루어져 있지만 실은 세상 모든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얀 마텔적 충언'이자, 더 나아가 모든 독자들에게 전하는 문학 편지다. 짧은 편지들로 이루어져 있어 술술 읽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번에 읽어 치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하루에 편지 한 통, 아니면 일주일에 편지 한 통도 좋다. 얼마나 많은 페이지를 읽느냐보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마치 시를 읽듯이, 편지 한 통 한 통을 곱씹어 읽으며 고요한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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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얀 마텔

1963년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캐나다, 알래스카,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순례했다. 캐나다 트렌트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후 다양한 직업을 거친 뒤, 스물일곱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93년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을 발표하며 데뷔했고, 이후 『셀프』(1996) 『파이 이야기』(2001) 『베아트리스와 버질』(2010)을 썼다. 전 세계 40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파이 이야기』로 2002년 부커상을 수상했으며 이를 계기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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