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탈리아풍 원더랜드는 『나무 위의 남작』, 『반쪼가리 자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세 권 모두, 정직한 제목을 배반하듯(아니, 충실하듯?), 기상천외한 거짓말은 주변에서 가끔 보이는 특이한 성격의 정수만을 모아낸 등장 인물들, 이들이 불협화음을 빚어내며 그리는 갈등들, 기이한 모험을 엮어내며 내내 내달린다. 그런데 이 꾸며낸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공감이 퐁퐁 솟아난다.
이탈로 칼비노하면 굉장히 정직한 제목을 애용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열두 살에 폭군 같은 누나와 강압적인 아버지로부터 도망쳐 나무 위로 오른 남작이 주인공이면 소설의 제목은 『나무 위의 남작』, 적군의 대포에 맞아 몸이 두 동강이 난 자작이 나오면 『반쪼가리 자작』인 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에는 문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가 등장한다.
‘셀림피아 체테리오레와 페츠의 기사, 코르벤트라츠와 수라의 구일디베르나 구문과 기타 가문 출신인 아질울포 에모 베르트란디노’ (아질울포 같은 기사들 다섯 명만 모이면 자기 소개로 하루를 꼬박 보내는 건 일도 아니겠다)는 무지갯빛 깃털이 달린 투구와 이어진 백색 갑옷을 입었지만,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는 오직 의지의 힘으로만 존재하고, 자신을 참전하게 만든 ‘정의’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써 갑옷을 움직인다. 그렇다. 제목은 정직하지만 소설은 말도 안 되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서 부르는 사람에 따라서 이름이 수도 없이 바뀌는 떠돌이, 구르둘루가 있다. 그에게는 자아라는 개념이 없다시피 해서, 자신이 오리인지 개구리인지 아니면 구르둘루인지 분간을 못할 지경이다. 심지어는 고슴도치에 발이 찔리면 미리 피하지 않은 자신의 발을 욕하기 까지 하는데,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자신의 발에 안부를 전해달라던 앨리스를 떠올렸다. 정말로, 이 책에는 정신 병리학적으로 접근하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것 같은 인물들이 빼곡하다. 또, 아질울포가 속한 군대는 규율로 가득하지만 그들의 일처리는 장미에 페인트칠을 하는 수준이다.
이 이탈리아풍 원더랜드는 『나무 위의 남작』, 『반쪼가리 자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세 권 모두, 정직한 제목을 배반하듯(아니, 충실하듯?), 기상천외한 거짓말은 주변에서 가끔 보이는 특이한 성격의 정수만을 모아낸 등장 인물들, 이들이 불협화음을 빚어내며 그리는 갈등들, 기이한 모험을 엮어내며 내내 내달린다. 그런데 이 꾸며낸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공감이 퐁퐁 솟아난다. 아무리 특이한 캐릭터가 나오고 이상한 일들이 벌어져도, 농도만 좀 낮추면 어딘가에서 만난 적 있는 사람, 당한 적 있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다른 두 권과 달리 역사적인 배경 설정이 아주 희박해서(가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고유명사들이 등장하더라도, 실존하는 단체 및 인물과의 상관성을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배경지식 없이 게으르게 읽어나갈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그 덕분에 나는 멋대로 내 기억들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무슨 트릭인지 얘기하면 재미가 없어지니까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만 귀여운 트릭이 들어간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이탈리아산 거짓말과 만나보면 어떨까?
존재하지 않는 기사이탈로 칼비노 저/이현경 역 | 민음사
‘존재하지 않는 기사’ 아질울포는 형체 없이, 오로지 존재하고 싶다는 열망과 이념만으로 백색 갑옷 속에 머문다. 오래전 한낱 떠돌이였던 아질울포는 겁탈당하려던 소프로니아를 구해 주고 기사 작위를 받았다. 하지만 어느 날 소프로니아의 아들임을 주장하는 청년 토리스먼드가 나타난다. 소프로니아의 처녀성을 지킴으로써 비로소 기사로 존재할 수 있었던 아질울포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리고 아질울포의 하인 구르둘루, 아질울포를 짝사랑하는 여기사 브리다만테, 브리다만테를 짝사랑하는 풋내기 기사 랭보가 그의 뒤를 쫓는데…….
1923년 쿠바에서 농학자였던 아버지와 식물학자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부모의 고향인 이탈리아로 이주한 칼비노는 부모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접하며 자라났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의 전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 칼비노는 부모의 뜻에 따라 토리노 대학교 농학부에 입학해 공부하던 중 레지스탕스에 참가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조셉 ..
현대문학의 거장 이탈로 칼비노
'우리의 선조들' 3부작의 완결편
이탈로 칼비노의 '우리의 선조들' 3부작 가운데 가장 나중에 발표된 작품. 칼비노는 십여 년에 걸쳐 쓴 세 작품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1960년에 한 권으로 묶어 '우리의 선조들'이라는 제목을 붙였..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나아가는 이야기가 있다. 천선란의 이 소설집처럼. SF의 경계를 뛰어넘어 천선란의 다정한 세계관이 무한하게 확장되었음을 확인하게 하는 신작.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가다 보면, 끝내 누군가의 구원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넘실거린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유홍준의 산문집. 대한민국 대표 작가로서의 글쓰기 비법과 함께, 복잡한 세상사 속 재치와 지성을 잃지 않고 살아간 그가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전한다. 이 시대와 호흡한 지식인이 말하는, 예술과 시대와 인간에 대한 글들을 빼곡히 담은 아름다운 ‘잡문’에 빠져들 시간이다.
우리 시대 젊은 그림책 거장 두 사람이 함께 만든 따뜻한 크리스마스 이야기. 모두에게 선물을 주느라 정작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산타 할아버지를 위해 북극 친구들은 특별한 크리스마스 계획을 세운다. 산타 할아버지가 맞이할 마법 같은 첫 크리스마스를 함께 만나보자.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의 신작. 거짓 정보와 잘못된 믿음이 지닌 힘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왜 가짜 뉴스에 빠져드는지 분석한다. 또한,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되는 사회의 양극화를 극복하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넘쳐나는 정보 속 우리가 믿는 것들은 과연 진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