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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여, 자신을 위해 울고 자신을 위해 웃어라

“쉬어라! 나는 너의 눈물샘을 통해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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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40대 남자는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웃어야 할 때 웃지 않는 메타 코미디 속에 살고 있다. 강해야 한다는 자아상 내지는 타인의 기대 때문에 울 수 없다. 상사와 갑을 위해 웃음을 다 써버렸기에 정작 자신을 위한 웃음은 남아 있지 않다. 가족들 앞에서는 굳은 얼굴로 지내다 조직과 인맥 가운데 들어서면 웃음을 남발한다. 마치 남을 위해서는 한껏 웃기면서도 집에서는 웃기지도 않았고 웃지도 않았다는 어떤 코미디언처럼.

“우는 것도 일종의 쾌락이다.”
_미셸 몽테뉴

어느 날 오후 9시쯤, 나는 문자를 받았다.

“요즘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네”

마침표도 없는 문자. 절친 경민이한테서 온 것이다. 40대 초반의 잘나가는 사업가인 그가 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무슨 무슨 팰리스라는 이름이 붙은 80평대의 주상복합에 살고, 벤츠와 볼보를 번갈아 몰고,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딸이 있는 그가. 뭐가 부족해서 훌쩍이는 것일까?

누군가는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고 한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남성 호르몬이 줄어들고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이 늘어나면서 눈물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벌써?

그 문자를 받았을 당시 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면, 친구의 이상한 문자를 받고 나서 바로 전화를 하거나 그에게 달려가 위로를 해주었을 것이다. 야근 중이던 나는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는 절친의 문자를 받고 무시해야만 했다. 나중에 나는 부질없는 답을 보냈다.

“울지 말고 푹 쉬어…….”

스스로도 쉬지 못하면서 친구에게 쉬라고 하다니. 2012년 초까지만 해도 나는 1년 365일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라서 일주일에 최소한 하루는 쉬어야 한다. 기계도 종종 가동을 멈추고 기름을 부어 주어야 하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그런데 나는 왜 쉬지 못했을까?

나는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이고, 인생 중에 가장 바쁜 시기를 맞이한 중년이고, 처와 자식이 딸린 가장이다. 휘날리는 21세기 신자유주의 깃발 아래 높아만 가는 수출 의존도 탓에 세계 금융 위기와 장기 불황이 피부로 와 닿는 대한민국, 지구상에서 가장 변화가 빠르고 바쁘며 경쟁적인 대도시 서울에 살고 있다. 이곳은 사실 지옥이다. 이 지옥에는 전생에 느림보, 게으름뱅이, 잠꾸러기였던 이들이 모여 24시간 쉬지 않고 돌을 굴리며 일하고 있다. 그들이 산꼭대기로 돌을 올리는 까닭은 단 하나, 다시 아래로 떨어뜨리기 위해서다.

365일 동안 연중무휴 간판을 내걸고 영업한 내 몸은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어느 날, 허리가 끊어질 듯해서 병원에 갔더니 디스크가 부었단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집에 와 꼼짝 없이 2주일을 누워 있었다. 지팡이나 목발 없이는 몇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통원하며 환자 신세로 시간을 보냈다. 쉬고 싶어도 쉬지 못했던 중년의 어느 2주를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쉬며 지냈다. 쉬는 동안, 프리랜서인 나는 수입이 0원이었다. 아빠가 아파도 아이는 자라고 쌀독이 비어도 밥은 먹어야 한다. 세금은 내야 하고 난방은 해야 하며 아이는 피아노 레슨을 받아야 한다. 수입은 없어도 지출은 늘 있다.

아파도 아플 수 없는 가장은, 누워서도 돈 걱정뿐이었다. 어느 날 새벽, 잠이 오지 않아 거실 소파에 누워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안방에선 아내가, 작은방에선 아이가 가볍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평화로운 오전 3시였다. 얼음처럼 냉정하고 투명한 내 정신은 그 고요 속에서 흐트러졌다. 내가 쓰러지면, 저 두 사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전업주부인 아내와 피아노를 전공하는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지?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보험을 더 들거나, 보험금을 받을 상황을 만들거나.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가 처한 상황이 치사했다. 이룬 것 없는 삶이 비루하고 가진 것 없는 현실이 서글펐다. 절친 경민이가 떠올랐다. 경민이도 이런 상황이었을까? 그는 잘나가는 사업가이니 돈 몇 푼에 울지는 않았겠지. 그러나 남들에게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그에게도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겠지. 과로에 묻힌 그의 정신적 통증들이 눈물이 되어 나왔겠지.

그때의 나는 조금 비참해져서 우울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고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1년에 한두 번 눈물을 비칠까 말까 하는 삶…… 그게 정상일까?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울 여유도 없고 울 상황도 만들어지지 않고 울 만한 감정이 생기지도 않는 삶이 과연 좋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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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40대 남자는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웃어야 할 때 웃지 않는 메타 코미디 속에 살고 있다. 강해야 한다는 자아상 내지는 타인의 기대 때문에 울 수 없다. 상사와 갑을 위해 웃음을 다 써버렸기에 정작 자신을 위한 웃음은 남아 있지 않다. 가족들 앞에서는 굳은 얼굴로 지내다 조직과 인맥 가운데 들어서면 웃음을 남발한다. 마치 남을 위해서는 한껏 웃기면서도 집에서는 웃기지도 않았고 웃지도 않았다는 어떤 코미디언처럼.

영혼의 독소가 가득 쌓인 대한민국 40대 남자는 어느 날, 허리가 부러지고 말았다(어떤 이에게 그 독소의 기운은 무릎이나 어깨, 좌골의 통증으로 느껴진다). 기실 그 허리 디스크 염증은, 고일대로 고여 폭발 직전인 부패한 감정이 신경계에 내린 명령이었다.

“쉬어라! 나는 너의 눈물샘을 통해 이곳을 벗어나야겠다.”

그것은 주인과 눈물 모두에게 매우 이로운 처사였다. 조용히 훌쩍이던 40대 남자는 급기야 엉엉 울어버렸다. 다행히 아내와 자식은 모두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날이 밝자,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진 남자는 툭툭 털고 일어나 아침을 먹고 씩씩하게 작업실로 향했다.

때로는 감정이 우리에게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울고 싶을 때, 엉엉 소리 내어 울자.


남자에게 ‘눈물’이란?

남자의 눈물은 마음속에 분노와 울화가 쌓여 만들어진다. 어려서부터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는 말을 듣고 자라 잘 울지 못하며, 혹시라도 눈물이 나면 구석진 곳에서 혼자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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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교과서 명로진 저 | 퍼플카우
아이를 좋은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던 한 남자는 부인에게 “당신은 아이 교육에 관심이나 있나요?”라는 말을 듣는다. 또 한 남자는 회의 중에 “집에 올 때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사오라”는 전화를 받고, 미팅을 가던 중에 어머니에게 “김치 왜 안 가져가냐”는 전화를 받는다. 이 인물들은 한 사람일 수도, 여러 사람일 수도 있다. 한국 남자들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이 책은 ‘역할피로’에 지친 남자들의 이야기를 비롯해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남자들의 욕망까지 46가지 남자들의 속마음을 담았다.

 



‘남자’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남자의 공간
내 남자의 사생활
남자의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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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명로진

명로진은 ‘인디라이터’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는데 애 썼다. ‘인디펜던트 라이터 Independent Writer’의 준말인 인디라이터는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저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스포츠조선」에 입사, 사회부와 연예부에서 3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다. 1994년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SBS 드라마스페셜 <도깨비가 간다>의 주연으로 데뷔한 뒤, 방송, 영화, 연극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5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인디라이터』, 『내 책 쓰는 글쓰기』, 『베껴 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등 글쓰기와 책쓰기에 대한 단행본 뿐 아니라 아동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자동차가 부릉부릉』, 『펜도롱씨의 세계여행』을 비롯해 시집 에세이 동화 실용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썼다. 코오롱등산학교를 졸업하고 안데스 산맥 6000m 급 원정에 참여하기도 하고, 살사 댄스 매니아로서 국제 살사 대회를 주최하기도 했으며, 북극권부터 남미, 아프리카까지 6대륙을 모두 여행한 여행광이다. 무엇보다 다채로운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전방위적인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디라이터다. 2011년 현재 심산스쿨에서 인디라이터 반을 맡아 강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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