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최민석의 영사기(映思記)
Django freeman and Draft Beer (장고와 생맥주)
영화칼럼을 빙자한 맥주 칼럼
간단히 말해, 장고는 ‘맥주를 마시기 이전의 장고’와 ‘맥주를 마시고 난 후의 장고’로 구분되는 것이다. 당연히 그의 호칭은 이제, 장고 자유부인, 아니 장고 자유인이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는 러닝타임 165분에 해당하는, 즉 인류역사상 가장 긴 맥주 광고인 것이다.
우선, 영어로 제목을 정한 건 이 텍스트는 반드시 영어로 표기됐을 때 그 예술적 함의가 온전히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일 리 없고, 그냥 겉멋 때문이다. 왠지 연재를 시작하며 앞으로 내 글이 번역돼 세계 각국의 독자들에게 읽힐 것 같다는 근거 없는 느낌이 들어서 일단 제목부터 영어로 썼다. 멋있나요? (아, 그렇다고 언어제국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나저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 분노의 추적자>를 보고 왔다(적응하시길. 이 칼럼은 항상 이렇게 맥락 없이 전개된다). 영화는 타란티노 감독이 이때껏 걸어왔던 장르영화적 매력요소를 집대성해서 단번에 분출시키고 있으며, 언제나 그랬듯 O.S.T 역시 환상적이었다. 이상 영화평 끝(아니, 이런 영화칼럼이 어딨느냐고 따지신다면, 네 여기있습니다). 영화칼럼이라서 영화에 대한 감상을 예의상 적었을 뿐,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맥주 이야기다. 자, 그럼 이야기 속으로.
영화 속 장고의 신분은 노예였다. 그런데 치과의사인 킹 슐츠 박사가 자유인의 옷을 입혀주면서 현상금 사냥꾼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럼으로써 얻은 그의 이름은 몹시도 노골적이게도 ‘장고 프리맨'. 번역하면 장고 자유인, 정도 되겠다. 장고가 여자라면 장고 자유부인(장고는 결혼한 몸). 아무튼 그건 장고 사정이고, 나는 영화를 보면서 견디기 힘든 딜레마로 곤혹을 치렀다. 두 욕구가 상충했는데, 하나는 영화가 재밌어서 제발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극장문을 당장 박차고 싶을 정도로 뛰쳐나가길 원했다는 것이다. 아니, 심심할 만하면 총질을 해대서 사람도 제법 쓰러지고, 가슴도 반쯤 드러내놓는 서부시대 배경인데 왜 극장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전적으로 맥주 때문이었다.
그렇다. 이건 영화칼럼을 빙자한 맥주 칼럼이다. 여하튼, 남자라 자유부인의 신세를 면한, 자유인 장고는 닥터 킹 슐츠의 과도한 친절 때문에 난생 처음 선술집에 들어간다. 영화에서 평생 노예로 살아왔던 장고가 시원한 생맥주를 맛봤을 리 없고, 주인장 역시 일견 노예로 보이는 흑인을 고객으로 모시고 맥주를 따라야 할 자신을 상상 못해봤을 것이다. 주인장은 놀랍게도 ‘Help! Help!'를 외치며 가게를 버리고 도망간다. 이 장면은 마치 강도를 당한 것처럼 묘사되는데, 당시 남부의 정서를 고려하면 주인의 입장에선 아마 영혼을 강탈당했다고 느낀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제 과도히 친절한 킹 슐츠 박사는 어쩔 수 없이 직접 바(Bar) 안으로 들어간다. 바에 부착된 생맥주 기계는 나무 박스로 되어 있다. 박사는 고혹적인 검정색의 기다란 레버를 당긴다. 화면 가득히 투명하고 큼직한 맥주잔이 비춰지고 그 안에 창으로 들어온 햇빛을 품은 유리잔 속의 맥주는 빛이 난다. 맥주는 마치 누룩으로 부풀어오르는 빵처럼 거품을 뿜어내고, 슐츠 박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사를 내뱉으며 편편한 자로 거품을 쓰윽 쓰윽 밀어낸다.
박사는 대사를 뱉으며 맥주잔을 건조하게 장고에게 건네고, 장고 역시 무심하게 맥주를 한 모금 입에 대고 넘기려다…… 여기서 잠깐(!), 우주가 멈춘다. 다시 말하자면, 장고는 태어나서 맥주를 처음 마셔본 것이다. 여태껏 마신 맥주가 물이라면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치러도 남을 정도의 필자지만, 나도 멈칫했다. 초심, 아니 잊었던 첫맛을 되찾은 기분이랄까. 말하자면, 장고는 이 순간 진짜, ‘장고 프리맨’, 그러니까 자유부인, 아니 자유인이 된 것이다. 기막히게도 영화는 이전의 장고는 그냥 장고로 부르고, 이후의 장고는 장고 프리맨으로 부른다. 간단히 말해, 장고는 ‘맥주를 마시기 이전의 장고’와 ‘맥주를 마시고 난 후의 장고’로 구분되는 것이다. 당연히 그의 호칭은 이제, 장고 자유부인, 아니 장고 자유인이다. 그러니까 내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는 러닝타임 165분에 해당하는, 즉 인류역사상 가장 긴 맥주 광고인 것이다. ‘맥주가 비로소 자유를 가져다 준다(!)’ 까지의 메시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자유의 첫 상징으로 감독은 맥주를 등장시켰다. 그래서 나는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 맥주가 그렇게 마시고 싶어? 응.
당장 어두컴컴한 극장문을 박차고 나가 문 닫았을지 모를 게으른 동네 술집 주인장을 깨워 “어서 맥주를 따르라(!)”고 버럭버럭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론, 착한 시민인 나는 그 심정을 꾹 누르고 2시간 30분동안 극장에 앉아 있었다(맥주씬은 15분께 등장하는데, 총 러닝 타임이 2시간 45분이었다). 그야말로 ‘맥주, 맥주, 망할 맥주’ 하면서 보았다.
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기 위해 장고를 한 번 더 보았다. 영화의 정식 번역 제목은 <장고:분노의 추적자>였지만, 내게는 <장고: 분노의 술생각>으로 읽혔다. 쓰고 나니 맥주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카페의 벽과 천장 곳곳에 노란 나트륨 등이 매달려 있다. 스탠드는 허공에 노란 빛을 은은하게 뿜어내고 있다. 마치 허공에 맥주가 군데군데 매달린 것 같다.
저어기. 사장님. 맥주 한 잔이요……. 꿀떡꿀떡 꿀떡.
마감 후에 뇌로 자유의 소리가 전달된다.
그렇다. 나도 이제, 자유인이다.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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