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아빠와 10분 창의놀이
어느 일중독 아빠의 이야기
‘나는 과연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가?’
“우리 아빠 최고!” 내 가슴을 울린 아이의 말 한 마디였습니다. 매일 10분씩이지만 최선을 다해 놀면, 최고 아빠가 될 수 있음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10분을 채우지 못한 적도 많습니다. 바쁠 때는 3분, 또 어떤 날은 1분. 아무리 바빠도 아이와 하루 한 번 눈이나 맞추자는 생각으로 잠깐잠깐 스킨십만 했는데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듣다니! 그때 전 깨달았습니다. ‘얼마나’ 놀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놀았는지가 아이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빠는 항상 일만 해!
예나 지금이나 나는 열심히 일합니다.
늘 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그것이 가족을 위한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
결혼 1주년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나는 아내에게 육아를 다 맡겼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늘 일 속에 파묻혀서 살다 보니 아이와의 스킨십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늦게 퇴근하는 날은 아이의 자는 얼굴만 봐야 했고, 주말에도 일을 하느라 놀이터, 공원, 극장, 아이가 좋아하는 과학관에도 함께 갈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평소에도 늘 피곤하다 보니 집에만 오면 마치 나뭇조각처럼 몸이 굳어 버려, 소파에 벌렁 드러누워 텔레비전만 봤습니다.
“아빠! 놀아 주세요.”
“피곤해, 다음에.”
“아빠! 오늘 학교에서요…….”
“피곤해, 다음에.”
“아빠! 저랑 같이 나가요.”
“피곤해, 다음에.”
“흥! 아빠는 항상 일만 해.”
그때부터 나는 ‘항상 일만 하는 아빠’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얘야, 우리나라 아빠들이 늘 이렇게 바쁘게 일하기 때문에 너희들이 편안하게 사는 거야. 표현은 잘 못하지만, 우리나라 아빠들만큼 자식사랑이 지극한 아빠들도 없어. 딴 나라 아빠들을 봐. 자식이 성인이 되면 집에서 내쫓잖아. 하지만 우리나라 아빠들은 자신의 노후도 대비하지 않고 모든 걸 아낌없이 다 자식에게 주잖아. 네가 먹는 과자, 네가 입는 옷, 네가 자는 집……. 아빠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어. 너도 크면 아빠를 이해할 거야.’
그 꿈 많던 소년은 어디로 갔나?
돌이켜 보면 나도 한때는 꿈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사진사, 발명가, 만화가, 레크리에이션 강사 등등. 하지만 넉넉지 않은 그 시절,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꿈을 하나둘 접은 채 학교를 졸업해서 정신없이 일하기에 바빴습니다. 결혼해서도 일 속에 파묻혀 살다 보니 어느덧 꿈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린 나이 마흔이 넘은 아저씨가 되어 버렸습니다.
재활용품으로 아이를 위한 놀잇감을 만들기 전에는 내 꿈과 취미가 무엇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고 그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내 직업들은 모두 적성에 맞지도 않고,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못하는 일뿐이었지요. 그래도 하루 세 끼 밥을 주고 잠잘 집도 주고 운전할 차도 주는 무지 고마운 ‘일’이었기에 꾸역꾸역 하루하루 열심히 일했습니다.
맞습니다. 나는 일만 하는 아빠입니다. 하지만 나도 일이 싫습니다. 힘들고 재미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책임감이 강한 남자입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곧 가정에 대한 최선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아이가 그런 아빠의 마음을 몰라 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터에서 돌아온 나는 텔레비전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온몸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날 소파에 그냥 좀 내버려 둬. 이렇게 쉬는 게 아빠의 최선이란다. 너도 좀 이해해다오.’ 그렇게 아이가 태어나고 8년이 지나갔습니다. 그 8년 동안 나는 집에만 오면 몸이 나뭇조각처럼 굳어 버리는 마법에 걸린 아빠였습니다.
괴물 아빠 앞에서 터진 아이의 울음
아이가 9살이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피곤에 지친 얼굴로 아이를 말없이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내 얼굴을 쳐다보던 아이가 갑자기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꾸중을 하거나 혼을 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빠의 낯설고 어두운 얼굴이 아이에게는 눈물이 날 만큼 무서웠던 것입니다.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난 괴물이구나. 내가 죽어라 일만 하는 일중독 괴물이 되었구나.’
엄청난 위기감이 몰려왔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아이와 가까워져야 한다는 외침이 머릿속에 울려퍼졌습니다.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아빠의 진심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이와 스킨십도 하고 함께 웃으며 뒹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잘 몰랐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게는 아이와 놀러 나갈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충격도 잠시, 아이와 놀아 줄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나는 다시금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어릴 때 아빠가 함께 놀아 주지 않은 아이는 나중에 나이 든 아빠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고. 그리고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더 이상 아빠와 놀려고 하지 않고 친구들과 어울려 밖에서 논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내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된다. 뭔가를 해야 한다! 지금 안 하면 나는 영영 아이에게 괴물 아빠로 남는다!’
흥분, 즐거움, 기대, 재미가 넘치는 아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가?’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아빠’이고 싶었습니다. 고리타분하고 잔소리하고 인상 쓰는 아빠는 싫었습니다. 아이가 아빠를 떠올렸을 때 흥분, 즐거움, 기대, 재미를 느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놀아 줄 시간도 없는데? 직장을 확 바꿔 버려?’ 하지만 배운 것과 꿈꾸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모두 다른 엇박자 인생. 특별한 직업적 기술도 갖추지 못한 40대 남자를 ‘어서 옵쇼.’ 하고 받아줄 사장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뭔가를 해야 했습니다.
축구공을 샀습니다. ‘아이와 매일 놀아 주리라!’ 그러나 사흘을 못 넘기고 실패했습니다. ‘그래, 학교 운동장까지 가야 하니 잘 안 됐지. 집 근처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야겠어.’ 배드민턴 채를 샀습니다. 차에도 늘 넣고 다녔습니다. 그것도 사흘을 못 넘겼습니다. 또 실패였습니다. ‘그래!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 잘 안 되니 이번에는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걸 찾자.’ 아이의 동화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앞으로 매일 한 권 씩 읽어 주리라!’ 하지만 이 또한 사흘을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일 년에 책 5권도 안 읽는 남자였기 때문입니다. ‘아, 나는 안 되는 걸까? 이대로 포기할 수밖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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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아빠와 10분 창의놀이, 아빠 육아, 김동권
일주일에 7일 출근하는 일중독 아빠. 열심히 일해 가족에게 생활비를 안겨 주는 것이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 여기며 오로지 ‘일’에 매달려 지내던 어느 날 피곤에 지친 자신의 굳은 얼굴을 보며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아이와 ‘매일 10분 놀이’를 시작했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무엇을 갖고 노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노느냐가 중요하며, 무엇보다도 놀이를 하는 아빠 자신이 재미있고 즐거워야 함을 깨달았다. 이후 피곤하고 지친 아빠들도 쉽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재활용품 놀잇감을 하나씩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이 과정을 담은 블로그 [아빠와 함께하는 10분 게임]이 네티즌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게 되었고 아빠로서는 최초로 네이버 육아 부문 파워블로거가 되었다. 무뚝뚝하고 조금은 서툴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한민국의 모든 아빠들이 아이에게 ‘우리 아빠 최고!’의 찬사를 받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쉽고 재미있는 아빠 놀이를 고민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100인의 아빠단’ 놀이 멘토, 환경부 환경교육용 이동교구상자 놀이개발 자문위원, 서울대학교 한국디자인산업연구센터(KDRI) 육아ㆍ놀이분야 트렌드세터로 선정되었으며 EBS [다큐 프라임 '아버지의 성']을 비롯해 KBS, SBS, MBC 등 다수의 텔레비전 및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조선일보, 한국일보, [앙쥬], [맘앤앙팡] 등의 주요 언론과 육아 전문지에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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