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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갑’이 되는 방법

“덜 사랑할수록 더 권력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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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사랑할수록 더 힘을 원하고, 덜 사랑할수록 더 돈을 원하고, 덜 사랑할수록 더 젊음을 원한다. 권력의 속성이 사랑임을 모르는 사람들의 행태다. 기실 사랑 그 자체가 힘이고 돈이고 젊음이기 때문에 지금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 이외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직 사랑하지 않는 자들만이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어 권력을 얻으려 한다. 권력의 주변에 머물지 말고 사랑하라. 그게 권력이다.

“덜 사랑할수록 더 권력을 원한다.”
_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야구 감독 김성근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2012년 가을 무렵, 프로야구 감독들이 줄줄이 해임당할 때, 그는 한 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일갈했다.

“감독이 파리야? 한국 야구판 왜 이래!”

오호, 그는 정말 멋진 남자다. 우리 같은 피라미들이 본받아야 할 마초다(힘세고 털 많은 게 마초가 아니다. 언젠가 귀엽게 생긴 여자애가 나에게 한 말이 기억난다. “가슴에 털도 없으면서 잘난 척은…….” 아, 나쁜 x).

김성근 감독은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나와 예의 그 어눌한 말투로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왜 선수들을 혹독하게 다루는가. 그건 선수들 뒤에 가족이 있기 때문이야요. 내가 적당히 봐주고, 경기 나가서도 대충 하게 하믄, 나중에 성적 잘 안 나오고 바로 내년에 뛸지 몬 뛸지 모르게 되는데…… 감독은 이 선수들 모두 책임지고 있다고. 선수들 뒤에는 가족들 있고. 선수 한 명 잘린다고 끝이 아니지. 그 가족들 다 어떻게 할 겁니까? 적당히 하면 가족들 죽으란 말이지요.”

이런 게 프로다. 김성근 감독은 을이면서 갑으로 사는 남자다. 프로야구판에서 감독은 을이다. 갑인 것 같다고? 천만의 말씀. 영화 <머니 볼>을 보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인 빌리 빈(브래드 피트 분)은 면밀한 통계를 바탕으로 장래성이 있는 선수를 선발하여 팀을 새로 구성한다. 이들은 사생활 문제, 잦은 부상, 고령 등의 이유로 다른 구단에서 버림받은 상태였다. 빌리는 이들이 과소평가되어 있으며 언젠가는 분명 자기 몫을 하리라고 믿고 영입해서 말 그대로 외인구단을 만든다.

처음부터 외인구단이 빛을 발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단장이 스카우트한 선수들을 경기에 내보내지 않는 감독이 문제였다. 감독은 빌리에게 “당신이 선택한 선수들은 이미 한물간 친구들”이라며, “경기에 투입할 선수를 지명하는 것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라고 맞선다. 빌리는 감독이 총애하는 선수를 다른 팀으로 이적시켜 버린다. 갈등과 위기 속에서 빌리가 데려온 선수들은 하나둘 제 실력을 내기 시작하고 애슬레틱스 팀은 메이저리그 사상 최초로 20연승을 거두며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다.

야구판에서 감독이 갑인 것 같지만 그 위로 단장이 있고 그 위로 구단주가 있다. 감독은 구단주가 임명하고 선수는 단장이 영입한다. 그러므로 감독은 단장이나 구단이 보기엔 을이다. 구단주와 단장이 합의하면, 아니 구단주가 맘만 먹으면 감독은 언제든 잘릴 수 있다. 거칠게 말하면 김응용 감독도 김성근 감독도 구단주님께 잘 보여야 한다. 그분 눈 밖에 나면 천하의 선동열도 아웃이다.

김성근 감독은 구단주 눈치 보지 않고 소신대로 팀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김 감독님은 ‘사회생활’을 잘 못하신 거다. 그는 늘 야구판의 갑으로 지내왔다. 비즈니스나 인맥은 둘째고 야구만 보고 살아온 것이다. 한마디로 김성근에게는 야구가 갑이고 야구가 전부고 야구가 이념이다. 야구로 밥 말아 먹는 사람한테 스테이크를 들이미니까 내팽개치고 나오는 거다. 김성근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야구 눈치만 본다. 자신이 믿는 절대 갑의 눈치만 보고 그 어떤 것의 눈치도 보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남자 아닐까? 야구판이 끈끈이주걱처럼 된 이유는, 야구판도 결국 권력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본질적으로 권력을 원한다. 왜? 돈과 여자와 지배욕 때문이다.

칭기즈칸이 부하 장수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물었다.
“남자로서 최고의 행복을 느낄 때가 언제인지 아느냐?”
부하 장수들이 대답했다.
“다른 사람을 지배할 때요.” “전쟁에 나가 용맹하게 싸울 때요.” “새로운 땅을 정복할 때요.” ……
그들의 말을 듣고 칭기즈칸이 말했다.
“너희들은 아직 하수다. 남자의 최고 행복은 남의 여자를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녀의 입술에 입 맞추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자의 말이니 믿어도 좋을 거다(다만 가슴에 얼굴을 묻고 동시에 입술에 입 맞추는 체위(!)는 왠지 불가능해 보이지 않나?).

아무리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해 치장하려 해도 소용없다. 남자가 권력을 원하는 이유는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권력을 잡고 나서 그 권력을 오로지 민중을 위해, 백성을 위해, 국민을 위해 운용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권력자 중 열에 아홉은 그저 제 한 몸의 안위와 야망을 위해 권력을 이용했을 뿐이다. 대중들은 늘 영웅이 나타나기를 염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도 또 한 명의 대도(大盜)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들도 이 확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다행히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은 10명이 넘으므로 한두 명은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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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권력을 원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다. 모임의 회장이 말할 때 회원들은 들어주어야 한다. 조직의 장이 떠들 때 조직원들은 경청해야 한다. 대통령이 입을 열면 장관들은 귀를 기울여야 하며 교장선생님이 훈화말씀을 늘어놓으면 학생들은 졸도를 하더라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이게 다 권력 지향적 인간들이 좋아하는 모습들이다. 내가 하는 99퍼센트 쓸데없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1퍼센트도 놓치지 않고 들어주는 것. 권력을 원하는 자들은 곧 주목받기를 바라는 자들이다.

세상에는 절대 버릴 수 없는 직업이 둘 있단다. 바로 연예인과 정치인이다. 왜? 박수를 잊을 수 없고 환호를 지울 수 없고 대접을 뿌리칠 수 없어서다. 연예인과 정치인은 늘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그들이 관심을 받는 사정의 이면에는 그들 말고는 신경 쓸 일들이 별로 없을 만치 현대인의 삶이 권태롭다는 이유도 숨어 있다. 그러므로 남자들아, 연예인과 정치인 따위는 잊고 좀 더 멋지고 다양하고 통 큰 아이템에 관심을 갖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남성적 습성 중 하나가 모여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거다. 이번 대선이 어떻다느니, 지난 총선이 어떻다느니, 여당과 야당의 기싸움이 볼만하다느니……. 대체로 권력 지향적 남자들일수록 여자들한테 버림받을 확률이 높다. 제발, 정치담화는 이제 그만.

일찍이 독일의 영화감독 파스빈더는 갈파했다. “덜 사랑할수록 더 권력을 원한다.” 나는 권력에 관한 한 그의 선언보다 더 명쾌한 정의는 들어보지 못했다. 덜 사랑할수록 더 힘을 원하고, 덜 사랑할수록 더 돈을 원하고, 덜 사랑할수록 더 젊음을 원한다. 권력의 속성이 사랑임을 모르는 사람들의 행태다. 기실 사랑 그 자체가 힘이고 돈이고 젊음이기 때문에 지금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 이외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직 사랑하지 않는 자들만이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어 권력을 얻으려 한다. 권력의 주변에 머물지 말고 사랑하라. 그게 권력이다.


남자에게 ‘권력’이란?

그 어떤 것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힘. 권력이 있어서 가장 좋은 점은 99퍼센트 쓸데없는 말을 해도 다른 사람들이 1퍼센트도 놓치지 않고 들어준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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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교과서 명로진 저 | 퍼플카우
아이를 좋은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던 한 남자는 부인에게 “당신은 아이 교육에 관심이나 있나요?”라는 말을 듣는다. 또 한 남자는 회의 중에 “집에 올 때 5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사오라”는 전화를 받고, 미팅을 가던 중에 어머니에게 “김치 왜 안 가져가냐”는 전화를 받는다. 이 인물들은 한 사람일 수도, 여러 사람일 수도 있다. 한국 남자들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이 책은 ‘역할피로’에 지친 남자들의 이야기를 비롯해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남자들의 욕망까지 46가지 남자들의 속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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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명로진

명로진은 ‘인디라이터’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는데 애 썼다. ‘인디펜던트 라이터 Independent Writer’의 준말인 인디라이터는 자본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저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스포츠조선」에 입사, 사회부와 연예부에서 3년 동안 기자 생활을 했다. 1994년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SBS 드라마스페셜 <도깨비가 간다>의 주연으로 데뷔한 뒤, 방송, 영화, 연극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50여 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인디라이터』, 『내 책 쓰는 글쓰기』, 『베껴 쓰기로 연습하는 글쓰기 책』 등 글쓰기와 책쓰기에 대한 단행본 뿐 아니라 아동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자동차가 부릉부릉』, 『펜도롱씨의 세계여행』을 비롯해 시집 에세이 동화 실용서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썼다. 코오롱등산학교를 졸업하고 안데스 산맥 6000m 급 원정에 참여하기도 하고, 살사 댄스 매니아로서 국제 살사 대회를 주최하기도 했으며, 북극권부터 남미, 아프리카까지 6대륙을 모두 여행한 여행광이다. 무엇보다 다채로운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전방위적인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디라이터다. 2011년 현재 심산스쿨에서 인디라이터 반을 맡아 강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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