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각하, 문학을 읽으십시오
사악한 정치인의 비열한 수법을 적나라하게…
“돼지가 인간 같고 인간이 돼지 같다” 조지 오웰 『동물 농장』 그들만의 유토피아, 그 끝은…
많은 사람이 어렸을 때 『동물농장』을 읽었습니다. 아마 수상님도 읽으셨을 겁니다. 동물들이 등장하는 데다 재미도 있어 많은 사람이 그 소설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한층 성숙해진 지금, 이 소설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이 보냅니다.
추신: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하퍼 수상님께,
수상님이 응원하는 아이스하키팀, ‘캘거리 플레임스’가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졌으니 이제 시간이 좀 여유로워지셨을 듯합니다.
제가 수상님께 보내는 두 번째 책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인 것을 두고 저를 나무랄 사람들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래도 이 소설은 상당히 유명하며, 톨스토이처럼 백인 남성인 데다 상류층 출신이라는 이유로 과대평가됐다는 작가가 쓴 소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수상님이 다음 선거에서 패하지 않는다면, 언어를 사용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온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할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이지 무척 많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합니다. 만약 수상님이 다음 선거에 패하면 책을 읽는 데 지금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겠지만, 제 생각으로는 안타깝게도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많은 사람이 어렸을 때 『동물농장』을 읽었습니다. 아마 수상님도 읽으셨을 겁니다. 동물들이 등장하는 데다 재미도 있어 많은 사람이 그 소설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한층 성숙해진 지금, 이 소설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동물농장』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과 적잖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모두 짤막하며, 위대한 문학 작품답게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지녔습니다. 또 두 소설 모두 인간의 사악함과 착각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 개인의 사악함, 따라서 진정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인간의 실패를 다룬 반면에, 『동물농장』은 집단 광기를 고발하는 소설입니다. 『동물농장』은 정치적인 색채를 띤 소설이어서, 수상님 주변 사람들에게는 이해를 얻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문제, 즉 폭압의 폐해를 다룬 소설입니다. 물론 어떤 책이든 하나의 주제로 축약할 수는 없습니다. 책의 위대함은 읽는 행위 자체에 있는 것이지, 그 책이 어떤 문제를 다루려고 하느냐에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제가 『동물농장』은 선택한 데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책을 쓰고 싶기 때문입니다.
먼저 『동물농장』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수상님도 이 소설의 문체가 명쾌하고 꾸밈없다는 것을 즉시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오웰의 특징이지요. 그런 문장, 그런 단락을 쓰는 게 세상에서 가장 쉽고 가장 자연스런 것인 양 표현 하나하나가 상황에 딱 맞아떨어진다는 인상을 받으실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명쾌하게 생각하는 것도 어렵지만, 그런 생각을 명쾌하게 표현하는 것도 무척 어렵습니다. 수상님도 연설문과 각종 문서를 작성하면서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경험하셨을 겁니다.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매너 농장의 동물들은 농장 주인 존스와 그의 착취적 행동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서 존스를 쫓아냅니다. 그리고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세워서 가장 숭고하고, 가장 평등한 원칙에 따라 운영하기로 약속합니다. 그러나 부패한 돼지 나폴레옹과, 나폴레옹의 충복으로 말솜씨가 뛰어난 스퀼러라는 돼지가 있습니다. 이 두 돼지는 또 다른 돼지, 용감한 스노볼의 노력과 농장 동물들의 유순한 선의에도 불구하고 ‘동물농장’-농장 동물들은 존스를 쫓아낸 후 매너 농장의 이름을 ‘동물농장’이라고 바꾸었습니다-의 꿈을 파괴할 것만 같은 악몽 같은 존재입니다.
저는 2장 끝부분이 무척 감동적이라 생각합니다. 젖소에게서 짜낸 다섯 통의 우유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문제로 대두됩니다. 농장 주인 존스가 쫓겨나고 없어 우유를 팔지 못하니 어떻게든 우유를 처리해야 합니다. 닭이 우유를 사료에 섞어 모두가 함께 먹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동무들, 우유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수확이 더 중요합니다. 스노볼 동무가 여러분을 안내할 것입니다. 나는 곧 뒤따라가겠습니다!”라고 소리칩니다. 그래서 동물들은 건초를 수확하려고 모두 자리를 떠납니다. 과연 우유는 어떻게 됐을까요? ‘…… 저녁에 동물들이 돌아왔을 때 우유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다섯 통의 흰 우유와 함께, 갓 피어나기 시작한 동물농장의 이상도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나폴레옹의 욕심 때문에 말입니다. 수상님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갈 뿐입니다.
『동물농장』은 문학 작품이 지향할 수 있는 목표의 하나, 즉 ‘휴대용 역사책’의 표본입니다. 20세기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라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이시오프 스탈린, 레프 트로츠키, 시월혁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라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동물농장』은 그런 독자에게도 북극권 너머의 우리 이웃에게 일어났던 사건의 핵심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상의 왜곡, 권력의 부패, 언어의 남용, 국가의 파멸이 백이십 쪽에 불과한 책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떤 독자라도 사악한 정치인들의 교묘한 수법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겁니다. 이것도 문학 작품에서 기대할 수 있는 효과, 즉 예방접종입니다.
이제 제가 수상님께 『동물농장』을 보내는 개인적인 이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유럽에서 나치스의 손에 학살당한 유대인들도 그들의 역사를 휴대용으로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다음 작품에서 다룰 생각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파편들-수많은 눈물과 수많은 학살-을 취해서 우아하고도 압축된 글로 표현해내고, 두렵고 무서운 사건을 밝은 글로 바꿔놓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독서의 위대함과 더불어 제가 지향하는 문학적 이상이 수상님께도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건강하십시오.
얀 마텔 드림
추신: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 영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였고, 언론인과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했다. 오웰은 인도에서 태어났고, 자신의 집안을 ‘하류 중상층’이란 말로 소개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부상을 당했다. 가장 유명한 두 작품, 『동물농장』과 『1984』에서 오웰은 자신만의 고유한 문체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그가 가장 집착했던 두 문제, 즉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의식과 전체주의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또한 언어가 정치에 미치는 힘과,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에 미치는 영향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웰은 마흔여섯 살의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 ||
1963년 스페인에서 캐나다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캐나다, 알래스카, 코스타리카, 프랑스, 멕시코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란, 터키, 인도 등지를 순례했다. 캐나다 트렌트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후 다양한 직업을 거친 뒤, 스물일곱 살 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93년 『헬싱키 로카마티오 일가 이면의 사실들』을 발표하며 데뷔했고, 이후 『셀프』(1996) 『파이 이야기』(2001) 『베아트리스와 버질』(2010)을 썼다. 전 세계 40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파이 이야기』로 2002년 부커상을 수상했으며 이를 계기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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