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서 탈출해 파리에 도착하면서 그 유명한 ‘100일 천하’가 시작된 날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1769년 8월 15일 ~ 1821년 5월 5일)는 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가이며 황제였다. ‘나폴레옹 법전’은 세계의 민법 관할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지만,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역할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유럽 전체에 헤게모니를 형성했고, 프랑스 대혁명의 이상을 퍼트렸으며, 이전 정권의 양상을 복원하는 제국 군주제를 통합했다. 그가 전쟁마다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가장 위대했던 장군들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유년기에 나폴레옹은 하루 종일 독서에 심취하였는데, 특히 플루타르코스의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즐겨 읽었다. 1779년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가 브리엔느 유년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1784년에는 파리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통상 재적 시간이 4년인 곳을 불과 11개월 만에 필요한 과정을 모두 수료하였다.
16세의 어린 나이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발랑스에 주둔한 라 페르 연대 포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1793년 말, 프랑스군 대위로 근무하고 있었을 때에, 툴롱 공성전 에서 왕당파 반란군을 진압하는 최초의 무훈을 세워 젊은 나이에 사단장이 되었다. 총재 파울 바라스에게 등용되어 1795년 10월 5일 파리에서 왕당파의 봉기가 일어나자 이를 수도 시가지에서 대포를 쏘는 대담한 전법으로 시원스럽게 진압함으로써 사단장이 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1796년, 귀족의 미망인으로 바라스의 애인이기도 한 조제핀 드 보아르네와 결혼한다. 같은 해, 바라스에 의해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발탁된다. 이 이탈리아 원정을 20년 동안 펼쳐진 나폴레옹 전쟁의 서막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때 나폴레옹의 나이는 27세였다.
당시 프랑스는 혁명 이후 혁명파와 반혁명파간의 이념 대립 등의 혼란 상태가 지속되어 외세의 침입을 자주 받았다. 이에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은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방면에서 오스트리아군을 물리치는 부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나폴레옹은 이탈리아에 주둔한 오스트리아군과 싸우기 위해 눈보라가 몰아치는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그는 곧바로 이탈리아를 제압한 후, 1797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점령하였다. 이러한 업적으로 나폴레옹의 인기는 프랑스 내에서 높아져 갔다.
나폴레옹은 개인적인 인기를 등에 업고 프랑스 원로원으로부터 10년 임기의 제1통령으로 임명되어 불과 30세의 나이에 사실상 프랑스 정권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었다. 나폴레옹은 연합국에 강화를 제의하지만 거절당한다. 이에 나폴레옹은 알프스를 직접 넘어 이탈리아 북부로 진격하려 하였다. 과거 한니발 이후 대규모의 군사가 처음으로 알프스를 넘는 일을 당시 그의 부관들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나폴레옹을 극구 만류하였으나 그는 단호히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외쳤다.
나폴레옹은 내정 면에서도 일대 개혁을 실시했다. 전국적으로 세금 제도와 행정 제도를 정비함과 동시에 혁명기에 괴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공업 생산력의 회복을 실시하여 산업 전반의 부흥에 힘을 쏟았다. 1800년에는 프랑스 은행을 설립하여 경제 안정을 도모했다. 1802년에는 유명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창설했다. 또, 교육 개혁에도 힘써 공공 교육법을 제정하였다. 또 국내 법 정비에도 임하여 1804년에는 『프랑스 민법전』, 이른바 ‘나폴레옹 법전’을 제정했다. 이것은 각 지역의 여러 가지 관습법과 봉건법을 하나로 통일한 최초의 민법전으로 ‘만민의 법 앞에의 평등’, ‘국가의 세속성’, ‘종교의 자유’, ‘경제 활동의 자유’ 등 근대적인 가치관을 도입한 획기적인 것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 정부의 탄압을 받던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화해도 모색한 나폴레옹은 1801년에 교황 비오 7세와 정치 및 종교 조약을 맺어, 국내의 종교 간 대립을 완화했다. 또, 왕당파와 자코뱅 파 등의 파벌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여, 국내 정치를 융화로 이끌었다. 한편으로는 현 체제를 뒤집으려고 시도하는 자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고 무자비하게 탄압하였다. 그리고 1802년 8월 2일에 그는 종신통령(종신 집정)이 되어, 자신의 독재권을 한층 더 강화하였다.
나폴레옹의 강력한 내정 개혁 실시로 그의 인기가 나날이 높아지자 측근 인사들은 그에게 황제가 될 것을 권유하였고, 이에 나폴레옹은 그것을 국민 투표로 결정하도록 하였다. 1804년 7월 국민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표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제정을 수락하였다. 그리하여 나폴레옹은 프랑스 제국의 초대 황제인 나폴레옹 1세가 되었다. 프랑스가 루이 16세를 처형하고 공화정으로 전환된 지 10년 만의 일이었다.
나폴레옹의 황제 등극은 다방면으로 충격을 주었다. 그를 공화제와 인민들의 영웅이라고 생각해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으로 나폴레옹에게 헌정할 예정이었던 교향곡 제3번을 작곡하고 있던 베토벤은 그가 황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하여 악보에서 펜을 던지고 한탄했다. 교향곡 제목도 <영웅>으로 변경했다.
프랑스 육군은 오스트리아군을 물리치고 빈을 점령한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를 구원하러 온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의 군대가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1세의 군대와 합류하여, 즉위 1주년인 12월 2일에 프랑스군과 격돌하여 아우스터리츠 전투를 치렀다. 나폴레옹의 교묘한 작전 덕분에 프랑스군은 완승을 거두었으며, 오스트리아는 프레스부르트 조약을 체결하여 항복을 선언했다. 이 전투는 3명의 황제가 한 전장에 모였기 때문에 ‘3황제 회전’이라고도 불린다. 나폴레옹은 이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개선문을 세우도록 명하였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두 나라를 상대로 혼자서 능히 제압한 프랑스 육군의 위광은 곧 전 유럽에 떨치게 되었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하지만 가장 큰 골칫거리는 역시 영국이었다. 영국은 섬나라라는 지형상 장점과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철저하게 굴복시키기 위하여 1806년 대륙봉쇄령을 내려 유럽 국가로 하여금 영국과의 모든 교역을 일제히 금지시켰다. 그러나 영국과의 무역에 의해 경제를 유지하던 러시아는 이 명령으로 생존권에 영향을 받자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만다.
이것은 1812년 나폴레옹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공격하게 될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퇴각하면서 러시아군은 도시와 곡식에 불을 질러, 프랑스군이 손대지 못하게 하고 깊숙이 달아났다. 식량은 얻지 못하였으나 러시아군과 싸우지 않은 프랑스군은 쉽사리 모스크바를 점령하였다. 러시아에서 겨울을 지낼 준비를 하지 않았던 프랑스군은 결국 퇴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순간을 기다린 러시아군은 철수하는 프랑스군의 뒤를 쫓아 공격하여 궤멸시켰다.
프랑스의 대패를 목격한 유럽 각국은 일제히 반(反)나폴레옹의 기치를 내걸었다. 1813년 봄, 변변찮은 군대로도 나폴레옹은 프로이센ㆍ오스트리아ㆍ러시아ㆍ스웨덴 등 동맹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후 휴전을 하였다. 하지만 정세는 악화되어 3월 31일에는 제국의 수도 파리가 함락된다. 나폴레옹은 종전을 목적으로 퇴위를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1814년 4월 16일 퐁텐블로 조약을 체결한 뒤 지중해의 작은 섬인 엘바 섬의 영주로 추방되었다.
1815년 나폴레옹은 엘바 섬을 탈출하여 파리로 돌아와 복위하는데 성공한다. 나폴레옹은 자유주의적인 새로운 헌법을 발표하여 자신에게 비판적인 세력과의 타협을 시도했다. 연합국에게도 강화를 제안했지만 거부당하여 결국 또다시 전쟁을 하게 되었다. 초반에는 승세를 거두었으나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과 프로이센의 연합 공격으로 완패하여 백일천하는 끝났다. (실제로는 95일)
나폴레옹은 다시 퇴위되어 세인트헬레나에 유폐되었다. 그는 극소수의 수행원들과 함께 롱우드의 저택에서 생활하였다. 그 저택 주위에는 많은 보초병들이 지키고 서서 나폴레옹의 행동을 실시간 감시하였다. 또 집밖으로의 외출도 제한되어 실질적으로 감금 생활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는 동안 나폴레옹은 수행원에게 구술 필기시킨 방대한 회상록을 남겼다(에마뉴엘 라스 카즈의 세인트 헬레나의 회상 등). 이것들은 그의 인생 뿐만 아니라 당시 세계관과 역사관, 인생관을 총망라한 것이어서 나폴레옹 전설의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곳에서 나폴레옹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1821년 5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 유해는 1840년 영국의 동의를 얻어 프랑스에 반환되었으며, 현재 파리의 시파리 앵발리드에 안치되어 있다. 나폴레옹의 사인은 독살이라는 견해가 제기되어 있으며 나폴레옹의 모발 등 신체에서 비소 중독자의 증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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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나폴레옹의 키
나폴레옹의 키가 155㎝ 가량의 왜소한 체격이 상식처럼 되었으나, 실제로 나폴레옹의 사망 당시 키는 약 168㎝로 당시 프랑스 군인의 평균 신장인 약 164㎝보다 컸고 전혀 왜소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 나폴레옹의 근위대들 키가 약 190㎝ 정도였으므로 상대적으로 나폴레옹이 작게 보였고, 기록 문헌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도량형의 차이 때문에 나폴레옹은 왜소한 체격의 대명사가 되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의 나폴레옹 키는 약 170㎝ 정도로 당시 유럽에서는 전혀 작은 체구가 아니었고 도리어 체격이 좋은 편에 속했었다. (내용출처: 예스24 작가파일,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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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우리는 다양한 얼굴의 나폴레옹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정치가이자 군인으로서, 유럽의 정복자로서, 세계의 가치를 뒤바꾼 혁명 사상의 전파자로서,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하며 사랑에 빠져 행복해 하고 괴로워하는 남자로서, 개인적 야망에 시달리는 인물로서, 뛰어난 능력과 더불어 개인적 결점과 한계를 지니고 경쟁자나 부하들을 시기하는 인간으로서, 엄격하고 화도 곧잘 내지만 부하들이나 시종, 가족들에게는 선량하기 그지없는 남자로서의 모습까지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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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수많은 사료를 바탕으로 나폴레옹과 나폴레옹 전쟁에 대한 서술과 해석을 상세하게 풀어 낸다. 나폴레옹이 전 유럽 제패를 위해 유럽의 여러 나라를 상대로 벌인 나폴레옹 전쟁을 중심으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비롯해 프랑스 대육군과 그에 맞선 각국의 군대, 각 전투가 벌어진 과정, 대프랑스 동맹을 맺은 각국의 지도자와 군사 지휘자들 간의 복잡 미묘한 관계, 프랑스 제국 점령하의 근대 민족주의의 태동, 젊은 나이에 고속 승진하여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뒤 직접 수많은 전투를 지휘하며 전쟁의 영웅이 된 나폴레옹의 뛰어난 면모, 대프랑스 동맹의 연합군이 결정적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 그리고 전쟁의 종결과 여파 등을 역사적 자료를 근거를 바탕으로 하나하나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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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털루 전투는 산업혁명을 선도하며 경제력에서 당시 이미 세계 최강이었던 영국의 제국적 힘이 프랑스의 힘을 압도한 전투이자, 대영제국의 시대와 현대 유럽의 개막을 알린 역사적 사건이다. 동서고금의 명장들이 승리를 얻기 위해 지혜를 짜내고, 실수를 만회하는 등의 모습은 군인과 군사 마니아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사실과 사건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역사를 바꾼 세계 주요 전쟁과 전투를 다룬 ‘세계의 전쟁’ 시리즈의 10번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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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나오키상과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아토다 다카시의 단편 13편을 수록한 소설집 『나폴레옹광』. 나폴레옹에 관련된 것이면 사소한 물건이라도 무엇이든 긁어모으는 광적인 수집가와 자신이 나폴레옹의 환생이라고 믿으며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남자, 이 둘이 만나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에 대한 상상력 게임을 그린 표제작 「나폴레옹광」을 비롯하여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한 「뻔뻔한 방문자」, 일상과 꿈을 넘나들며 결국에는 무엇이 현실인지 알 수 없게 되는 몽환적인 단편 「뒤틀린 밤」 등 총 13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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