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인의 사회>는 위선이다!
1980년대 초반, 영국 북부지방 셰필드의 공립고등학교의 한 교실.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같은 명문대를 지망하는 특별반에 8명의 남학생이 모여 입학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어느 지방의 평범한 고등학교에 서울대를 목표로 한 성적 우수 반쯤 된다.
학생들을 명문대에 입학시켜, 명문 고등학교로 발돋움하려는 교장과 수업방식이며 교육철학이 극명하게 다른 두 명의 교사가 등장한다. 막이 오르면, 문학 교사 헥터의 수업이 시작된다.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가만히 들어보면 희곡 오셀로의 대사나 미국의 유명한 시인 오든의 시구가 아이들의 입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아이들의 심장을 채워주는 문학을 가르치는 헥터는 “시험 따위가 뭐냐! 시험이 끝나도 인생은 계속 된다”며, 일상을 시어로, 은유로 표현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문학을 읽힌다. 아이들은 영화의 한 대목을 흉내 내며 선생님과 퀴즈 게임을 하기도 한다. 인간적인 스승, 낭만적인 교육! 흡사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허나 이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의 카피를 기억하는가? “<죽은 시인의 사회>는 위선이다!”
서울에서 철저한 입시교육을 받으며 서울대를 지망하는 수백 명의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 이들에게, 심장에 채워지는 경구가 모든 것을 대신해줄 수 있을까? 이 가차 없는 경쟁사회 속에서 나만 따뜻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연극은 냉철하게 질문한다. 헥터가 완벽한 선생님일까? 이 낭만주의자 선생님은 고대 철학자들이 흔히 그랬듯 소년들의 성기를 탐닉하는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쟤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요.”
그리고 또 한 명, 서울대 정복을 위해 특별히 투입된 역사 선생님 어윈이 있다. 어윈은 교사의 역할이란, 학생들이 좀 더 가치 있는 상품처럼 포장되고 보일 수 있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역사에 있어 사실과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새로운 관점으로 답안지를 작성해서 면접관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모두가 욕하는 스탈린을 변호하는 관점에서 이야기해본다면? 2차 세계대전은 영국이 원해서 일으킨 전쟁이라면? 홀로코스트에서 조부모를 잃은 유대인 학생에게 ‘다른 관점’으로 그 사건을 해석해보자고 제시하는 선생이다.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라.” 어윈에게 역사란 오락이고, 퍼포먼스고, 시험은 게임이다. 어윈 선생님의 전략적 포장술에 학생들은 반항하지만, 무조건 위대하고 대단하다고만 여겼던 문학, 철학,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게 하는 어윈의 관점 훈련에 흥미를 느낀다.
문학이 고통스러운 삶 속에 단열재가 되어 주길 바란다는 헥터 선생님. 그는 진정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그 역시 자신의 삶 속에서 고통이 찾아올 때면 문학 속으로, 경구 뒤로 숨어버리는 사람일 뿐이다. 그 문학적 경구를 그저 답안지를 돋보이게 할 양념쯤으로 생각하는 어윈은 헥터가 문까지 잠가놓고 아이들과 낄낄대며 벌이는 미스터리한 문학 수업을 궁금해한다. 아이들에게 ‘특별한 선생님, 남다른 선생님’이라고 인정받는 헥터의 독특한 권위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이 둘 모두 학생들에게 필요한 선생님이다. 연극은 이 두 사람이 좋은 교사인 동시에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직시한다. 소년들은 이 둘에게 지식을 전달받고, 저마다의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영향을 받는다. 이때 극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선생님 린톳은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그런데 그거 아세요? 쟤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있어요.”
매학기 교실 속에서 벌어진 애정의 대전투
돌이켜보면, 40여 명이 꽉꽉 들어차 있던 학창시절의 교실은 그야말로 애정의 전투장이었다. 매년 3월 2일, 개학을 기점으로 전투는 시작됐다. 낯선 친구들과 새로운 선생님은 서로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은밀하게, 때론 과감하게 작전을 수행했다. 눈치를 보거나 호의를 베풀고, 기선제압을 하기도 했다. 그때 우리는 내보일 것도, 이뤄놓은 것도 딱히 없는 그냥 중학생,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내 존재감 하나로 우정을 맺고 사랑받아야 하는 나이라 그랬다.
개학날마다 교실에 묘하게 흐르던 긴장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일 년 동안 짝이 될 친구를 물색해야 했고, 나의 평가자인 선생님에게 호의적으로 보이길 원했다. 이건 선생님 역시 마찬가지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길 원한다. 틀에 짜인 교육 시스템 안에서 누구라도 희망사항을 발현하기 어렵다는 게 함정일 뿐. 키팅 선생님을 희망하던 수많은 교사 지망생들은 대부분 익명의 수학선생, 과학선생으로 학생들에게 잊힌다.
애정의 전투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40여명의 친구들 속에서도, 되는 애(!)는 일찌감치 좋은 단짝을 찾았고, 지독한 짝사랑을 하거나, 삼각관계 속에서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었다. 질투와 배신이 있었다. 누군가는 따돌림을 당했고, 상처를 받았다. 우리는 선생님이 가르쳐준 수업내용보다, 선생님과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일, 그건 어떤 수업시간에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노력한 일들도 새삼 돌아보니 모두 사랑받고 싶어서 한 일은 아니었을까. 공부를 잘하고 싶었던 것도, 좋은 대학에 가고 싶었던 것도, 선생님한테 대들었던 일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일도 모두 다 관계에서 비롯된 욕망이었다.
<히스토리 보이즈> 소년들을 보고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통에도 성적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헥터의 낭만적인 수업방식이 아니라, 낭만적이지만, 때론 나약했던 헥터라는 한 인간. 어윈의 포장술보다는 그 속에 감추려고 하는 진심과 진실. 아이들은 그런 것에 영향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아이들은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더 빨리 배웠다.
이 교실이, 내 친구들이 전부고, 내 세계였다. 지나보면 별것도 아닌 문제였지만, 그땐 그렇게 괴로워했다. 수학공식, 영어단어를 외우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받아야 할 이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야했다. 배우고 있는 것과 배워야 할 것 사이에 괴리가 너무 커서. 하고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의 괴리가 너무 커서 그 시절은 그렇게 고민이 많았나보다.
동성 친구를 사랑하는 포스너의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어느 과목도 헤아려주지 못했다. “이 고통도 결국 지나갈까? 고통에도 성적이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포스너의 그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교실의 크기가 넓어지고 친구들과 선생님의 숫자가 조금 늘어난 것일 뿐, 지금 내가 속한 이곳은 학창시절의 그 세계가 확장된 것뿐이라는 것도 느낀다. 다만, 지금은 내가 무엇을 더 배워야 하고, 어떤 일에 더 많이 시간을 쏟아야 하는지 조금 분별할 수 있을 따름이다.
작가 엘런 베넷이 칠순의 나이에 쓴 이 연극은 2006년 토니어워즈 6개 부분에서 수상했다. 노 작가가 살면서 쌓은 내공을 이 한편의 연극 안에 고스란히 발산한 듯하다. 역사, 문학, 교육, 철학, 삶의 문제에 직구를 던져대는 대사의 에너지가 굉장하다. 동명의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히스토리 보이즈> 지적, 미적으로 훈훈한 여덟 소년과 헥터, 어윈 선생님이 함께했던 그 수업, 다시 한 번 듣고 싶다. 헥터의 수업에서 쏟아지는 셰익스피어, 필립 라킨, 오든, 하우스만의 시, 어윈의 수업에서 이야기되는 역사의 여러 장면들을 알고 본다면, 극이 더욱 풍성해지겠지만, 몰라도 전혀 문제없다. 심금을 울리는 경구들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므로 들리는 그대로 즐길 법하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이 그러했듯, 다 이해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지나온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공부하고 성취하고 사랑하고 고민하는 일은 앞으로도 그치지 않을 일이므로 이 수업은 유효하다. 대사 한마디, 작은 손짓 하나로 때때로 전율케 하는
<히스토리 보이즈>, 이 지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섹시하기까지 한 연극을 당신도 놓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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