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미녀정신과의사의 소곤소곤
요리 잘하는 남자, 청소 잘하는 여자
요리과 남편과 청소과 부인의 서재 합치기 프로젝트 인간은 요리과와 청소과로 나눌 수 있다
엄마를 만나고 오면서 나는 “요리과와 청소과”의 이야기가 의미심장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인 가사에 대한 취향은 상징적으로 그 사람의 삶 전반에 대한 태도와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고백하건데, 5년 전까지만 해도 집안일이란 재미없고, 반복되어 진을 빼놓으며,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그게 나는 아니었으면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바뀐 것은 ‘저녁이 있는 삶’ 덕분이었다. 수련과정을 마치고 취직을 하자 퇴근 후 여가시간이라는 것이 생긴 것이다. 처음엔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를 만나고 공연을 보았지만, 매일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밀린 설거지를, 빨래 개기를, 반찬 만들기를 하다가 깨달았다. 이렇게 생활을 위한 사소한 일을 해나가는 과정들이 밖에서의 어지럽던 머리와 답답한 속을 가라앉혀 주는구나. 기분을 전환하려고 외출을 하고 사람을 만났지만, 이런 시간도 또 다르게 좋구나. 게다가 집안일은 나라는 존재가 살아가기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이다. 내 손으로 나와 내 건강을, 내 삶을 돌보는 일은 소박하지만 단단한 자부심을 갖게 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밥 짓고 찌개 끓이고, 야채와 과일을 갈아 마시고, 가끔 샐러드와 파스타도 만들고… 요리실력은 일취월장하는데 청소는 늘질 않았다. 정리를 한다고 하는데 집은 늘 뭔가 어지러웠고 침대 정돈이나 티셔츠를 접어 포개는 일은 쉬운 것 같지만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절대 각이 맞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가사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자칭 타칭 “한국의 마샤 스튜어트” 우리 엄마였다. 엄마에게 요리는 할만한데-배운 적 없는데 제법 잘한다-청소는 아무리 해도 힘들고 늘지 않는다고 호소하자, 엄마는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너 나 닮아 요리과구나?”
“요리과?”
가사전문가 임여사에겐 나름의 철학이 있었으니 인간은 요리과와 청소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상상하고 만드는 요리과와, 버리고 정돈하는 청소과. 일을 벌이는 유형과 마무리하는 유형. 물론 모든 인간유형론이 그렇듯이 반반 해당하거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예외도 있고, 둘 다 싫어하지만 잘 하거나 둘 다 좋아하지만 못하는 타입도 있다. 하지만 엄마의 관찰에 따르면, 둘 다 해본 적 없거나 잘 못하더라도 하다 보면 마음이 끌리거나 소질이 있는 쪽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향도 유전이 되는데, 엄마 본인은 완벽주의자라 요리도 청소도 빈틈없이 하지만 실은 요리가 훨씬 재미나다는 것이다.
집안일은 그 종류와 성격이 다양하고 여러 단계로 되어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서 순서를 정하고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단다. 계획능력과 함께 체력과 손재주, 부지런함도 필요하다. 그러나 집안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완벽주의와 적절한 낙관성이라고 했다. 너무 잘하려 하지 말고 지속 가능하게 해나라가는, 엄마의 가사일 강의 또한 편안하고 적절했다.
엄마를 만나고 오면서 나는 “요리과와 청소과”의 이야기가 의미심장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인 가사에 대한 취향은 상징적으로 그 사람의 삶 전반에 대한 태도와 성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워지고 싶을 때 청소를 하게 된다. 청소는 필요 없는 것을 버리고 늘어놓은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며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는 일이다. 원상복구, 엔트로피를 줄이는 일. 청소를 하고 나면 차 한 잔 끓여 쾌적한 공간의 즐거움을 느끼며 사색하고 싶어진다. 청소는 어쩌면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흔적을 가다듬는 일, 혼자가 되는 일이다.
마음이 허하거나 기분이 우울할 때, 반대로 기분이 좋거나 의욕이 넘칠 때 요리를 하게 된다. 요리는 창조적인 일이다. 주제를 정하고 재료를 준비하고 맛을 상상하고 간을 맞추고 담음새까지 고민하며 한 그릇의 뭔가를 만들어낸다. 요리는 할 때마다 맛있는지 양은 적당한지 자신이나 타인의 평가가 따르는 일, 세상에 뭔가를 발표하는 일이다. 냄비요리가 완성되거나 반찬 여러 개를 만들어두면 부자가 된 것처럼 든든하고, 우연히 맛있게 된 음식이 있으면 친구를 불러 함께 먹고 싶기도 하다. 요리는 자신을 표현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사람을 모으는 매개체가 된다.
나의 자투리 책꽂이에는 극지방 탐험에 대한 책 64권이 꽂혀있다. 탐험 이야기, 정기간행물, 사진집, 자연사, 해군 교본(“젖은 손으로 차가운 금속을 만지지 말 것. 부주의로 차가운 금속에 손이 붙었을 경우 금속에 오줌을 누어 따뜻하게 해 주면 피부를 조금이라도 살릴 수 있음. 두 손이 다 붙을 경우에 대비해 친구를 데리고 다닐 것”)등. 꼭 책이 바다사자의 기름에 얼룩이 졌거나 웨들 해의 물살에 젖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 책들을 보면 금방 감정이 움직인다. 그러나 그런 내 관심은 나만의 것이다. 칵테일 파티에서 그것을 자랑스럽게 내보일 수는 없는 일이다. 가끔 주위의 누구도 알지 못하는 죽은 언어를 배우며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나는 침대에서 그 책들을 읽으며 남편 조지에게 말한다. “스콧이 처음 남극 탐험을 했을 때 말야. 에드워드 위슨이 매일 새벽 1시와 5시에 일어나 바다표범 고기를 씹은 다음 대보빙(大堡氷)에서 잡아 애완용으로 기르던 황제펭귄 새끼의 목구멍에 넣어 주었다는 거 알아?” 그러면 조지는 끙 하고 신음을 토한다. 그는 또 그 나름으로 열대 우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열대의 거대한 나무 밑에 앉아 어깨에는 썩어가는 덩굴과 움이 트는 브로밀리아드가 치렁치렁 늘어지고 위에서는 5백 종이 넘는 색색깔의 민달팽이가 맨머리 위로 떨어지는 꿈을 꾸곤 한다. 나는 그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풍경이 지저분하고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 너무 넘치지. 반면 그는 내가 상상하는 이상적인 풍경, 흰색에 흰색이 겹치는 세락과 그레바스의 모노크롬 색조를 배경으로 저 멀리 북극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썰렁하고 빈약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모자란다는 것이다. 나는 조지에게 극지방의 분위기에서는 캐서린 헵번의 몸(나는 조지가 이것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과 같은 매력이 있다고 설명하려 했다. 스펜서 트레이시는 <펫과 마이크>에서 그녀의 몸을 이렇게 규정했다. “ 저 여자 몸에 고기는 많지 않지만, 있는 것은 모두 일등급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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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미녀 정신과 의사, 안주연
늘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한, 밝고 다정한 정신과의사 안주연입니다. 우울증과 불안증, 중독을 주로 보고 삶, 사랑, 가족에 관심이 많아요. 책읽기와 글쓰기, 고양이와 듀공을 좋아합니다. http://twitter.com/mind_mansion
<앤 패디먼> 저/<정영목> 역8,820원(10% + 1%)
책을 너무 좋아하는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미국의회도서관 발행지 『시빌리제이션』에 "평범한 독자의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칼럼을 모았다. 길지 않은 한편한편의 수필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풍요롭고 행복한 일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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