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리즈 시절이 있다
앨런 스미스는 잉글랜드 밀턴케인스 던스 FC에서 뛰고 있는 미남 축구선수다. 앨런은 데뷔했던 이전 리즈 유나이티드 시절,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팀을 4강에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이때가 그의 전성기라고 해서, 사람들은 앨런의 ‘리즈시절’을 누군가의 전성기, 황금기를 지칭하는 관용어로 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나 한 때 리즈시절이 있다. 리즈시절은 나의 어떤 가치가 좋은 시기에 빛을 발하는 것인데, 그것은 내 노력, 능력, 주변 환경, 시대상황 등 여러 가지 요소가 신기하게 딱 들어맞는 행운의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좋은 시절이 한번쯤은 찾아오는 것처럼, 누구의 전성기든 결국은 흘러간다. 우리는 언젠가 올 리즈 시절을 꿈꾸며 살아가고, 리즈 시절을 겪고 난 후에는 내 삶에 있었던 좋은 시절을 추억하며 그 이후를 살아간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삶이 흘러가면 문제가 없겠지만, 때때로 우리는 좋은 시절이 흘러갔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이미 멀찍이 멀어진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 리즈시절을 보내고 있는 에스메라는 여배우가 있다. 그녀는 풍족한 돈과 인기로 우아한 여배우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여자다. 오늘 저녁 그녀의 집에 딸 에이미와 그녀의 남자친구 도미닉이 찾아왔다. 에스메는 무대 위에서처럼 딸에게도 당당하고 똑부러지는 엄마다. 그녀는 에이미의 고민을 듣고는 자기방식대로 쿨하게 해결해준다.
문제는 에이미의 남자친구, 그리고 남편이 되는 도미닉이다. 정통 연극을 하는 에스메와 대중 미디어에 가십 기사와 영화 평론을 쓰는 도미딕은 사사건건 부딪친다. 순수 예술에 대한 에스메의 고고한 프라이드에 도미닉은 열등감을 느낀다. 하지만 서서히 무대를 찾던 사람들이 TV에, 영화에 열광하기 시작하면서, 에스메는 더 이상 설 무대가 없어지고, 도미닉은 승승장구해 미디어 재벌이 된다. 하지만 서로를 전혀 인정해주지 않는 앙숙의 다툼은 여전하다.
여배우, 감독, 이런 호칭 말고 나로서 사는 삶
‘진짜 같은’ 연기를 하는 배우 에스메는 어쩌면 무대 밖에서도 연기를 멈출 수 없었던 게 아닐까? 여배우는 직업일 따름이고, 자기 삶 속에서는 누군가의 엄마이고 장모이고, 에스메라는 여자였는데. 그녀는 어떤 역할이든 줄곧 여배우답게 처신한다. 여배우니까 돈 문제 따위는 모르겠다고 뒷전이고, 그 예술적 고집 앞에서 사위와는 늘 논쟁을 펼친다. 그 사이의 딸은 언제나 주눅 들어 있다.
문제는 에스메가 이런 자신의 실체를 모르고 있다는 거다.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에스메는 여배우의 탈을 쓴 채로, ‘이게 원래 나야.’라고만 말할 뿐이니 말이다. 반면 도미닉은 프로듀서라는 직업인이라기보다, 늘 장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사위로서 에스메에게 꼼짝하지 못한다.
과연 에스메 만의 일일까? 사람들은 다양한 역할을 떠맡고 사느라 종종 혼란을 일으킨다. 선생님은 학교라는 일터에서 불리는 호칭이다. 선생님이 집에서도 선생처럼 굴고,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도 선생님으로 존재하려고 한다면 난감해진다. 우리의 이름을 대신하는 모든 것들- 딸, 학생, 사원, 엄마, 동생, 경찰, 예술가 등등-이 가끔 우리 본래 이름 석 자의 자리를 위협한다.
과연 수많은 호칭을 삭제한, 이름 석 자로서의 내 모습은, 나의 진면목은 어떤 것일까? 호칭이 강요하는 격식에 익숙해져, 원래의 자유로운 모습은 이미 잊은지 오래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에스메와 도미닉의 논쟁은 예술의 진정성에 관한 논쟁이지만, 서로가 시각 차이가 다른 직업인으로서만 목소리를 높이고 있기 때문에 이 논쟁은 끝없이 평행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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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가 널 데려온 첫날, 난 한눈에 알 수 있었지. 니가 내 모든 것을 빼앗아 갈 것을.”
“아니요. 어머니는 처음부터 그냥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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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후반부에 다다라 에스메는 드디어 여배우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목소리를 낸다. 딸을 데려갈 도미닉에게 느꼈던 불안감에서부터 이 모든 불만과 논쟁이 시작됐다고 말이다. 자신의 리즈시절을 좀더 수성하고 싶은 에스메의 행동은 도미닉에게는 이유 없는 경계심으로만 느껴졌던 것이다.
언제나 언성을 높이고, 한 사람이 자리를 박차야만 끝났던 두 사람이었는데, 자신의 시절이 흘러감을 두려워했던 한 여자로, 아직은 불안하기만한 미래를 기다리는 미숙한 한 남자로 돌아가 이야기하니 그제야 말이 통한다. 서로의 마음을 짐작하고, 또 서로에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에이미의 생각,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에이미>는 영국의 3대 희곡작가로 꼽히는 데이비드 헤어의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2010년에 초연했다. 당시 한국연극 베스트7에 선정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명동국립극장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에이미는 극중 도미닉 역할의 배우를 제외하고는 이전 출연진과 스탭이 다시 뭉쳤다. 에스메 역할의 윤소정은 여배우로서, 엄마로서, 장모로서 에스메가 보여주는 다양한 면모를 입체적으로 연기한다. 딸 에이미 역의 서은경, 도미닉 역에 정승길, 프랭크 역의 이호재 등 노련한 배우들의 합도 좋다.
<에이미>라는 이 연극의 원제는 <amy's view>다. 극중 에이미가 ‘에이미의 생각’이라는 노트를 만들어 낙서를 하곤 했다는 얘기를 한다. 그 노트에는 이런 얘기가 적혀있다. “가정은 화목해야 하고, 우리는 항상 화목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게 에이미의 생각이다. 에이미는 늘 두 사람이 잘 지내길 바랐지만, 두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잘 지내기 어려운 사이가 있다고 응수할 뿐이었다.
2010년 공연의 한 장면. 그때의 최용훈 연출, 윤소정, 이호재, 서은경 등 초연 멤버들이 다시 뭉쳤다
“마음을 열고, 이해해줘.” 우리가 쉽게 하는 이 말이, 실상 얼마나 어려운 말인가. 마음은 창문을 열듯, 상자를 열듯 열리지 않는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수학 공식이나 영어의 문법을 이해하는 일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그러했다고 이해했다고 말할 때가 있지만, 그때도 착각일 때가 많다. 우리는 시간처럼 강물처럼 쉽게 흐르지 못해서, 좋았던 것을 쉽게 놓치지 못해서 마음은 잘 열리지 않는다. 내가 불완전해질 까봐 우리는 나와 다른 것을 쉬이 인정하지 못한다.
마음이 닫히는 순간, 시간은 멈추고 세계는 닫힌다.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것이 변해갈 수록, 닫힌 마음은 점점 더 소외될 뿐이다. 그 과정을
<에이미>의 무대에서 봤다. 그리고 아무리 시절이 흐르고,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도
<에이미>는 말해준다.
한 때를 풍미했던 배우, 그 배우의 리즈 시절이 지나갔다고 해서, 이제는 조연의 자리밖에 서지 못한다고 해서, 그 배우의 진정성이, 위대함이 훼손되는 건 아닌 것처럼 말이다. 3월 10일까지 명동 예술극장에서
<에이미>를 만날 수 있다.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사라질까봐 한번쯤 두렵거나 불안했던 적이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애정을 갖고 볼 수 있는 연극이다. 배우들의 명품 연기도 놓치기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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