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다이야~”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한 번쯤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들어봤을 말이죠. 영화 <보디가드>의 메인 테마곡인 「I Will Always Love You」의 후렴구를 ‘우리 식’으로 코믹하게 발음했을 때입니다. 지난 1992년 국내에서도 크게 인기를 얻었던 영화 <보디가드>. 1980~90년대 팝계를 주름 잡았던 디바 휘트니 휴스턴과 당시 처자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했던 훈남 배우 케빈 코스트너가 싱그러운 모습으로 스크린을 채웠던 영화입니다. 당시 영화는 물론이고 OST 앨범도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렸는데요. 「I Will Always Love You」는 14주 동안 빌보드 차트 1위를 지키기도 했습니다.
무대는 영화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내용 이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팝스타 레이첼과 그녀를 경호하게 된 프랭크가 아웅다웅하다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지요. 팝스타의 화려함과 스토커가 주는 팽팽한 긴장감, 거기에 경호원의 절제된 멋이 빠른 무대 전환과 더해져 150분이 무척 흥미롭게 흘러갑니다. 특히 이 작품의 절대 무기인 휘트니 휴스턴의 수많은 히트곡은 객석의 모든 관객들을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데요. 「Queen Of The Night」으로 시작된 무대는 「Saving All My Love」 「Run To You」 「I Have Nothing」 「So Emotional」 등을 거쳐 「I Will Always Love You」 그리고 「I Wanna Dance With Somebody」로 커튼콜을 마칠 때까지 많은 관객들을 함께 춤추고 노래하게 만듭니다. 그녀가 없는 그곳에서 모두가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음미하는 모습은 참 인상적입니다.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auce Multi Use)’의 장점은 기존에 있던 작품을 재활용하는 만큼 흥행 여부가 어느 정도 검증됐고, 내용 전달에 대한 부담도 적다는 것이죠. 하지만 원작의 모든 것이 또 다른 부담이기도 합니다. <보디가드>를 볼까요? 원작인 영화는 잘 생기고 잰틀하기로 소문난 캐빈 코스트너와 패션모델 출신의 디바 휘트니 휴스턴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노래를 ‘정말’ 잘합니다. 그래서 공연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어떤 배우가 용감하게 그녀의 노래를 불러 제낄 수 있을지, 어떤 배우가 그의 멋을 흉내라도 낼 수 있을지 자못 궁금했는데요. 그러나 진정한 배우라면 저마다 ‘나름의 멋과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법이지요. 무대에 선 배우들에게서는 스크린 속의 배우들과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멋이 있었습니다.
우선 휘트니 휴스턴이 연기한 레이첼 역은 바다 건너 브로드웨이에서 공수해온 헤더 헤들리(Heather Headley)가 맡았는데요(그래서 그녀는 ‘바디갈드~’라고 발음합니다^^). 지난 1997년 뮤지컬 <라이온킹>의 날라 역으로 데뷔해, 2000년 <아이다>로 토니상 여우주연상을 받는 등 짱짱한 가창력과 빼어난 몸매로 무대를 장악해온 배우입니다. 그래서 ‘과연 어떤 배우가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명확하게 기우였습니다. 헤더 헤들리는 그녀 만의 색깔로 정말 멋진 무대를 선사합니다. 특히 훤칠한 키에 학다리를 연상케 하는 쭉 뻗은 다리, 거기에 화려한 무대 의상과 조명, 파워풀한 가창력이 더해지니, 무대가 이어지는 내내 마냥 흐뭇했답니다.
캐빈 코스트너가 연기했던 프랭크는 로이드 오웬(Lloyd Owen)이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웨스트엔드의 연극무대를 지켜온 관록을 살려 묵직한 연기를 선보이는데요. 뮤지컬이지만 주인공인 그가 노래를 부르지도 춤을 추지도 않는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충분히 위험요소가 될 수 있는데요. 하지만 보디가드라는, 또 무뚝뚝하다는 캐릭터와 잘 맞물려 무난히 넘어갑니다. 게다가 목소리와 움직임이 어찌나 근사한지요. 오웬은 힘 있는 연극배우만이 풍길 수 있는 카리스마로 자칫 특색 없을 수 있는 역할을 멋지게 지탱합니다.
런던의 대다수 공연장들은 지은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그 무대에서 100년 넘게 공연이 진행됐다는 말이겠죠. 그래서 시설이 열악한 곳도 많습니다. 하지만 무대 연출과 조명, 의상을 보고 있으면 고개가 끄덕끄덕 저도 모르게 감탄을 하게 됩니다. 100년 이상 쌓아온 노하우겠지요. <보디가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무대 장치는 바로 ‘이동하는 막’입니다. 장면이 바뀔 때 막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거나 중간에서 양 옆으로 사라지는 획일성을 집어 던진 것이죠. 보통 막 어딘가에 작은 창문 크기의 프레임이 있는데요. 그 프레임이 점점 크기를 키우며 무대에 자리 잡은 다음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마치 영상화면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데요. 신기함 때문인지 무대에 전혀 다른 분위기를 선합니다. 그야말로 ‘장면 전환’인 것이죠. 그런데 이 무대 장치가 쉽지 않은 도전인지 가끔 기술적인 문제를 보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제가 뮤지컬을 본 날도 중간에 무대전환이 잘 되지 않아서 공연이 잠시 중단됐습니다.
스토커가 레이첼을 겨냥해서 시도하는 일들, 프랭크가 그 미묘함을 감지하고 막아내는 일은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스크린에서 카메라가 따라가는 역할을 무대에서는 조명과 배우들의 느린 동작으로 멋들어지게 표현합니다. ‘이야!’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대목이었습니다. 항상 무대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데 제약이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핀 조명 하나가 카메라의 클로즈업을 완벽하게 대신한 것이죠. 배우들은 그 장면을 강조하기 위해 느리게 움직이고요. 21세기에 이렇게 단순한 표현이 신기할 정도로 멋지니 이상한 일입니다.
그리움이라는 게 어떤 걸까요? 아주 좋아하는데, 무척 간절하지만, 다시는 손에 닿지 않는 어떤 애달픔 아닐까요? 헤더 헤들리는 마지막 「I Will Always Love You」까지 최고의 가창력을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저는 딱 그 무대에서 휘트니 휴스턴이 무척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그녀의 노래를 사랑하는데 다시는 라이브로 그 음색을 들을 수 없다니, 얼마나 애달픈 일인가요. 우리가 이 정도인데, 그녀 자신은 과거의 스스로가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문득? 2010년 2월 내한공연이 생각났습니다. 힘겹게 무대에 서 있던 그녀. 재기하려던 그 무대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독이 될까 걱정했는데, 그녀는 그로부터 꼭 2년 뒤에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참 안타까운 모습으로요. 커튼콜 무대에서 모든 배우와 관객들이 「I Wanna Dance With Somebody」에 맞춰 노래하고 춤출 때도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자신의 노래를 이렇게 멋지게 불러 제낄 수 있는데 정작 자신은 다시는 그 노래를 부를 수 없으니 얼마나 그리웠을까 하고요.
뮤지컬 <보디가드>는 간결한 스토리와 빠른 무대 전환, 그리고 배우의 힘과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로 웨스트엔드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갈 또 하나의 롱런 무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네, 그녀의 노래를 좋아한다면, 그녀가 그립다면 주저하지 말고 공연장으로 달려가세요. 하지만 공연장을 나설 때는 재밌는 공연을 보고 난 뒤의 벅찬 마음과 함께 아련한 쓸쓸함도 있는 건, 비단 저만의 느낌일까요?! 그러고 보니 그 누군가는 그녀를 지켜내지 못했네요.
사진출처 : 뮤지컬 <보디가드> 공식 홈페이지
//thebodyguardmusic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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