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10년이 평생을 행복하게 한다
잠든 아이의 맑은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부모가 누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행복 가운데 하나이다. 분주했던 오늘과 잠시 후 또 시작되는 정신없을 내일 사이에 모처럼 찾아온 고요한 시간에는 마음이 한결 진실해진다. ‘아이가 어느 대학에 가고 어떤 직업을 갖느냐도 중요하지만 이런 평화로움이 계속되었으면……. 언젠가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도 아이는 계속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지만 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을 보면서 작은 소망은 이내 힘을 잃는다. 몇 해 사이 내로라하는 영재들이 모여 있는 카이스트에서 학생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었다. 하루하루 온갖 유혹과 싸우며 열심히 공부해서 마침내 목표를 이룬 아이들, 대한민국 엄마들의 로망인 아이들이 자살하는 이 시대에 과연 내가 지금 느끼는 평화가 진짜일지, 진짜라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있을지 불안하기만 하다.
정신과에서 20여 년 동안 심리 상담을 해오면서 깨달은 이 땅의 아이들 삶이 와르르 무너지는 원인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행복한 아이가 아니라 실패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최고들이 모인다는 강남을 가리키는 말도 ‘강남 불패’이지 ‘강남 성공’이 아니다. 그저 지지 않을 뿐이지 진정한 성공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두 번째는 뇌의 특성을 무시한 마구잡이식 교육 때문이다. 실패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려다 보니 걷기 시작하고 말문이 터지면 바로 교육 현장에 내보낸다. 하지만 태어나서 10년까지는 무엇보다도 정서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기이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적 자극을 들이붓는 것은 플라스틱 골조 위에 집을 세우는 것과 같다. 여러분이라면 그런 집에 살고 싶을까? 그런데 우리 부모들이 바로 그런 집을 짓고 있다. 비록 알지 못해서 그랬다 해도 교육을 빙자해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을 바닥없는 집으로 만들고 있다.
아이가 스스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지각하는 것은 약 3세부터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은 3세라는 나이를 본격적으로 교육 현장에 내보내라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인다. 2011년 7월자 조간신문 에 발표된 내용을 보더라도 만 3세 이하 아이들의 66%가 보육 시설에 맡겨지고 이 중 84%는 3세 이전부터 보육 시설에 간다고 한다. 영국이나 독일 등의 선진국에서는 3세 이전 아이를 엄마가 직접 키우는 비율이 70%이다. 한국이 3세 이전 아이를 기관에 맡기는 비율이 높은 이유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라면, 선진국으로 진입하면 그 비율이 낮아질까? 언젠가 그날이 온다 해도 아이들이 망가진다면 누가 책임질까?
부모의 온전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어린 시절이 사라진 아이는 천국의 맛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도 않고 행복이라는 감정조차 모르는 아이에게는 자발적으로 미래를 준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대학만 붙으면 행복해진다는 말을 들으며 참았지만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경쟁과 치열한 취업 전쟁에 시달린다. 그들에게 행복은 언제 올까. 한국 청년의 자살률이 세계 1위인 것은 우리가 뿌린 씨앗의 결과이다. 부모의 보호를 받으면서도 행복감을 느껴보지 못했고, 미래의 행복은 모호한데 그것을 위해 노력하라니 짜증이 나고, 성적으로만 평가하는 사회에 제대로 숨 쉬지 못하는 아이들은 내면의 우울감을 반항과 폭력, 가상 세계 중독으로 표출하고 있다. 우울한 아이는 우울한 어른이 되어 불안한 결혼을 하고 또 불안하게 자녀를 키운다. 이러한 대물림의 고리 안에서, 자녀의 입시만을 위해 뼛골 빠지게 일한 우리의 노년은 과연 장밋빛일까? 나중 일을 얘기할 것도 없이 이미 대한민국 노인의 자살률도 세계 1위이다.
3세부터 교육 현장에 내몰리는 우리 아이에게 이제부터라도 행복하고 안전한 어린 시절을 돌려주어 인생의 행복한 주인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 아이는 나의 분신이자 바로 나라는 것을 기억하자.
태어나서 3년, 출산은 계속된다
아기의 뇌는 태어난 후 3년에 걸쳐 완성된다. 왜 아기는 엄마 배 속에서 뇌를 완성해서 태어나지 않을까? 완전한 상태로 태어나려면 뇌가 너무 커져서 엄마의 좁은 자궁을 빠져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구조와 기능만 갖추어 태어난 아기의 뇌는 태어난 후 환경에 맞게 재정렬하면서 급성장한다. 제주도에서 감귤 농장을 하는 고씨 집안에서 태어났느냐, 강원도에서 스키장을 운영하는 황씨 집안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말투도 행동도 다르게 해야 하며, 태어나자마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양부모에게 입양된다면 그 부모에게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 강원도 아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제주도 여행을 갔던 기억이 너무 좋아 태어난 후 제주도 방언을 쓴다면 ‘어느 집 놈이냐’며 아빠의 의심을 받아 밥도 못 얻어먹기 십상이다. 아기가 태어난 후 뇌를 다시 정렬하며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소름이 끼치도록 절묘한, 생존을 위한 필사적인 전략이다.
모든 아기, 즉 인간은 비슷한 뇌 구조를 갖고 태어나지만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믿을 만한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내 그 집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거기에 자신의 뇌를 맞춘다. 엄마를 엄마로 알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며 자기가 어떤 집안의 사람으로 태어났는지 정체감을 갖추기까지 최소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에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의 탄생은 아기가 엄마 배 속에서 나온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완의 상태로 태어나 반은 엄마 배 속에서, 나머지 반은 세상에 태어난 뒤 완성해간다. 출생 후 3년의 시간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 시기에 아기가 부모와 세상에 뇌를 맞추기 위해서는 자신만을 위하고 보호해주는 대상이 필요하다. 따라서 어린이집 같은 공동 양육 시설에 3세 이전 아이를 너무 오래 두어서는 안 된다. 공동 양육 시설은 내 아이에게만 사랑을 주는 곳이 아니라 많은 아이에게 평균적인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아동심리학자 비덜프
Steve Biddulph는 영국과 같은 선진국에서조차 ‘아동교육 기관의 교사들이 하루에 한 명의 아이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은 8분 정도에 불과하다’라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2004년 영국 BBC에서 방영된 <보육 시설 비밀 취재>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어린이집의 일상을 찍은 비디오를 보던 부모들은 처음 10분 정도는 간간이 웃기도 하지만 이후로는 망연자실해진다. 너무도 단조롭고 기계적인 생활, 자신의 아이에게 하루를 통틀어 10분 이상 붙어 있지 않는 보육 교사 등 시설의 열악한 환경에 놀랐기 때문이다.
아이가 9시부터 5시까지 480분 동안 어린이집에 있는데 보육 교사가 내 아이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은 고작 8분이라니. 즉 472분 동안 아이는 혼자다. 혼자 있는 시간에 아이는 무엇을 할까? 집에서 엄마와 같이 있었다면 실제로는 훨씬 더 자주 보겠지만 10분에 한 번씩만 아이를 들여다본다고 가정해도 아이는 하루에만 50번이나 세상과 조우할 터인데, 하루에 한두 번 세상과 만나는 아이는 아무 문제없이 자랄 수 있을까?
미국의 신경공학자 메디나
John J. Medina 박사는 그의 저서
『브레인 룰스Brain Rules』에서 모든 아이는 태어날 때 ‘조립 요망’이라는 쪽지를 붙이고 나와야 한다고 했다. 요즘 엄마들은 그런 쪽지가 붙어 있어야 아이를 품 안에 거둘 만큼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이에게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3세 미만 아이에게 엄마는 절대적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아이가 배 속에서 나온 후에도 출산 기간은 3년 동안 계속된다. 이런 사실을 아는 것이 모든 양육의 기초이다. 짜증나게 왜 그렇게 출산 기간이 기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첫째, 조물주에게 물어보라고. 둘째, 당신의 질을 폭파하고 나오지 않기 위한 아이의 배려라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신 또한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어머니를 힘들게 하고 태어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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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3시간 엄마 냄새 이현수 저 | 김영사
세상의 모든 엄마가 가진 놀라운 능력 ‘엄마 냄새’가 아이의 인생에 기적을 만든다. 엄마 몸속에서 100%의 한 몸으로 살던 아이는 낯선 세상에서 엄마 냄새로 안정을 찾는다. 가장 원시적 감각으로 찾아가는 안전의 신호이자 생명의 필요조건, 엄마 냄새의 본질은 무엇일까? 수많은 아이들에게 제2의 탄생을 선물한 임상심리전문가 이현수 박사가 고려대학병원에서의 20년 연구와 경험으로 완성한 양육의 333법칙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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