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30대 여성들이 그녀에게 공감하는 이유 -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그럭저럭’과 ‘나름대로’ 그거 좋은거야, 나쁜거야?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에는 무척 떫었다는 것을
우리는 요새 너무 ‘보통과 평균’을 높이는 경쟁을 해왔다. ‘이 정도는 되야’라는 그 수준이 너무 높게 보고 있지 않나? 그게 사실 우리 모두를 지치고 힘들고, 결핍감을 느끼게 만든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때다. 난 생각한다. ‘그럭저럭’과 ‘나름대로’도 꼭 격이 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표정이 좋지 않고 한숨을 쉬면, 남들은 뭐가 걱정이냐고 말한다. 집도 있고, 아이도 예쁘고 말 잘 듣고, 남편 직업은 안정적이고 가정적인 편이다. 그러니 뭐가 문제냐고. 움찔하며 대답을 제대로 못하면 사는 것 자체가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고 공세를 퍼붓기 시작한다. 전세금 올려 줄 돈을 구하지 못해 외곽으로 이사를 갈 형편이고, 아이는 “엄마가 나한테 해 준게 뭐있어?”라고 소리를 치고, 친구들과 주고받는 카톡 문자의 ‘미친년’은 맥락을 볼때 엄마를 지칭하는 것 같고, 남편은 월급을 갖다 주지 못한지 몇 달에 희망퇴직 이야기가 나와 매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와 답 없는 부부싸움이 한참인 사람이 부지기인데, 그런 건 아니지 않냐는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말하면 정말 그렇다. 하지만, 그 정도로 어려운 일이 없으면, 그럭저럭 갖출 것 갖췄고, 나름대로 남이 보기에 괜찮게 지내면 행복해야만 하는 걸까? 모두가 ‘와..힘들겠다’싶은 문제가 없으면 힘들다는 느낌도 가져서는 안되는 걸까? 행여 그런 느낌을 가졌다가는 ‘사치스러운 고민’을 한다는 말부터 들어야하는 걸까?
이런 삶의 헛헛함과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아이를 키우며 집에서 지내는 30-40대의 전업주부들에게는 더욱 가슴에 와닿을 고민일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다양한 종류의 반응이 있을 수 있다. 전업주부가 못다한 꿈을 이루기 위해 성인돌 그룹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 엄정화 주연의 영화 <댄싱퀸>같이 풀어볼 수도 있고, 중년 여성의 자아찾기 고전인 <델마와 루이스>에서처럼 훌쩍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렇게 그런 생각만 가지면서 살고 있다. 그러다보면 고민자체도 잊어버리게 된다. 그냥 조금 ,아주 조금 모자란 듯 그렇게 살아가면서 내가 갖고 있는 이 작은 행복같아 보이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내 최선이라고 믿어야한다고 혼자 주문을 한다.
마스다 미리의 작은 만화책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는 아주 조용히 소곤소곤 이런 부분에 대해 얘기한다. 요새 이 사람의 에세이 같은 만화가 장안의 화제다. 세칭 마스다 미리 3종 세트로 불리는 세 권의 책을 모두 읽으면서 그 중에서도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에 눈이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다. 이야기가 공감이 가고, 또 가슴을 건드리는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상담을 하는 많은 수의 비슷한 또래의 한국의 여성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한국의 TV드라마에서 다루듯이 극적으로 과장해서 풀어내기보다 아주 적은 1-2 그램의 소금만 넣고 끓인 맑은 조갯국에서 충분히 간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은 그런 잔잔하고 은근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이 좋았다.
이 책에는 두 명의 여자 어른이 나온다. 주부 미나코는 40세 생일을 맞았고, 남편과 할부가 끝나가는 주택에서 딸 리나와 살고 있다. 그리고 한 명은 미나코의 시누이이자 리나의 고모 다에코인데 회사원이고 독신이다.
미나코의 40세 생일을 맞이하며 조금씩 나이 먹는 게 즐겁지 않다는 말을 한다. 어느새 좋아하던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만화 주인공의 나이를 추월해버린 것이다. 미나코는 꽃꽂이 교실을 다니는데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나름대로’를 절대 넘어서지 않을 것을 안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정도가 가장 안전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리나가 묻는다.
“엄마가 제일 원하는 건 뭐야?”
그러자 미나코가 말한다.
“글쎄, 그렇게 말하면 없는지도.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도 몰라.”
리나가 다시 말했다.
“고모는 보장을 원한대”
“그래? 그럼 나는 존재감을 원해. 엄마는 가끔 바깥세상이랑 혼자만 뒤떨어진 기분이 들기도 해”
그럭저럭 괜찮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지내지만 뭔가 허전하고 결핍되어있고, 뒤떨어진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남들에게 얘기하기도 겁이 난다. 일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주변에 묻는다. 다들 좋아하고 엄마와 남편도 흔쾌히 해보라고 한다. 하지만, 단서가 붙는다.
‘집안일에 지장이 없는 한, 가족에게 소홀하지 않을 범위‘
미나코는 왜 자신에게만 그런 조건이 붙는 것인지, 단서가 붙어야하는 것인지 고민한다. 그리고 자기 고민에 대해서 다에코, 남편, 엄마 모두가 가르치려고 하는 것, 또 ‘넌 지금 행복해’라고 타이르려고 하는 것인지 고민을 한다.
그렇다고 울고불고, 화를 내고, 집을 나가고, 자아를 찾기 위해 황당한 일을 저지르지는 않는다. 이불을 해가 잘 나는 곳에 말리면서 자신이 하는 일의 소중함에 대해, 또 ‘내’가 아니라 ‘우리 집’이라는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한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한 번에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마스다 미리는 미나코를 통해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그림도 심심하고, 얘기도 심심하고 짧다. 그렇지만 가슴을 울리는 힘은 크고 길다. 어떨 때에는 먹먹하고, 살짝 살짝 던지는 화두들은 마치 ‘하이쿠’를 읽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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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마스다 미리> 글,그림/<박정임> 역10,800원(10% + 5%)
일본 30대 싱글 여성들의 정신적 지주인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마스다 미리. 그녀의 대표작들이 출간되었다. 그녀가 2006년 발표한 ‘수짱’은 30대 초반의 독립한 싱글여성들과 깊은 공감을 나누며 수 많은 여성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결혼에 대해 고민하고, 노후를 걱정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몰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