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나는 무작정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
혼수 필요 없다던 시어머니, 결혼한 뒤에는?
TV는 못 사도 시어머니 선물은 하라, 고부 관계는 내실보다 겉치레
혼수니 예단이니 필요 없다고 말해주는 쿨한 시어머니들도 “어머, 네 며느리는 이런 것도 안 해줬어? 좀 심했다”라는 말 한 마디면 와르르 무너진다. 눈치 없고 배려 없는 다른 집 시어머니들이 한두 마디씩 던지는 말에 지속적으로 상처받는 시어머니가 새 며느리에게 나쁜 꼬리표를 붙이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국의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에게 바라는 예물은 비싼 물건 자체라기보다는 그 물건이 상징하는 자존심인 것이다.
TV는 못 사도 시어머니 선물은 하라
Y는 시부모님을 잘 만나서 시집간다고 내심 좋아하던 참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시댁에서 예단이나 혼수 같은 건 모두 필요없다며 그녀 자신이 살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사라고 말해주었다. 시어머니는 예단에 신경 쓰지 말라고 특별히 그녀를 따로 불러 당부까지 했다. 그녀가 신나서 가구를 보러 다니고 근사한 신혼 여행지를 알아보고 있던 차에 결혼한 친구를 만나 식사하게 되었다. 그녀가 사려 깊은 예비 시어머니를 자랑하자 친구는 심각한 얼굴로 충
고했다.
“너 시어머니가 하지 말란다고 진짜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이야? 하지 말라셨으면 친척들 선물은 준비 안 해도 되겠지만 시어머니 선물은 꼭 사드려.”
“진짜 안 해도 된다니까. 그리고 그럴 돈도 없어.”
“그럼 텔레비전이나 김치냉장고 같은 거 사지 말고 그 돈으로 선물해드려. 그런 건 살면서 차차 장만하면 되지만, 결혼할 때 시어머니 기분을 흡족하게 해드리지 않으면 그거 평생 피곤해진다.”
Y는 친구의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다른 비용을 아껴 그냥 시어머니 선물을 사기로 했다. 혼수 예단 다 필요 없다던 시어머니는 그녀가 모피 코트를 내밀자 깜짝 놀랄 정도로 기뻐했다. 입으로는 “얘는……아무것도 하지 말라니까”하고 말하면서도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 후로도 Y는 시어머니가 보는 사람마다 “며느리가 그렇게 하지 말라는데도 모피 코트를 선물했다”고 자랑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녀는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긴 그것은 꼭 시어머니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었다. 시어머니 선물을 사면서 마음이 찔려 친정어머니 선물로 금팔찌도 같이 샀는데 친정어머니 역시 “우리 사위가 해준 것”이라며 여기저기 자랑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시댁과의 갈등 없이 신혼을 잘 보낸 이유 중에는 그 선물도 포함되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당신은 세계적으로 뒷말 많기로 유명한 한국의 시어머니들이 나가면 며느리 욕을 줄기차게 해댈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시어머니들은 밖에 나가서는 며느리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 그건 남에게 지기 싫기 때문이다.
당신은 잘 이해할 수 없겠지만, 나이 들어서의 가장 큰 낙은 자식 자랑하는 것이다. 그녀들의 하루 계획표에 하루에 한두 시간씩 ‘자식 자랑하기’라는 항목이 들어 있다고 해도 믿길 정도다. 그런데 여기에는 묘하게 경쟁이 붙기 때문에 남들 다 자랑하기에 바쁜데 나 혼자만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웬만큼 못마땅한 점이 있어도 밖에서만은 거짓말과 과장을 섞어서라도 자식의 좋은 점만을 이야기하게 된다. 여기서의 ‘자식’은 당연히 며느리도 포함된다. 중년 여성들 사이의 이 고질적인 습관은 초연하던 시어머니도 울화병이 나게 만든다.
Y의 시어머니처럼 혼수니 예단이니 필요 없다고 말해주는 쿨한 시어머니들도 그 그룹에 끼면 별수 없다. “어머, 네 며느리는 이런 것도 안 해줬어? 좀 심했다”라는 말 한 마디면 와르르 무너진다. 눈치 없고 배려 없는 다른 집 시어머니들이 한두 마디씩 던지는 말에 지속적으로 상처받는 시어머니가 새 며느리에게 나쁜 꼬리표를 붙이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국의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에게 바라는 예물은 비싼 물건 자체라기보다는 그 물건이 상징하는 자존심인 것이다.
오늘날의 혼수나 예단 같은 것은 전통이 와전된 허례허식임에는 분명하다. 언제고 없어져야 하는 악습이 맞다. 그러나 그런 겉치레를 무시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이라도 사회적인 분위기가 먼저 조성되어 있어야 한다. 유럽의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비싼 학용품을 갖고 다니면 “필요 없는 곳에 돈을 쓰는 멍청이”라고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부모에게 비싼 물건을 사달라고 조를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 예단이나 예물에 물 쓰듯 돈 쓰는 것을 ‘골 빈 짓’이라며 손가락질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누구도 과한 혼수 따위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직’이다. 변화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영원히’일 수도 있다.
그동안 혼수나 예단을 속물들이나 주고받는 불필요한 것이라며 우습게 봤던 여자들이 그것 때문에 갈등을 겪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혼수하려고 마련해두었던 돈을 집 얻는 데 몽땅 보탰던 한 여자는 혼수를 안 했다며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시하는 시어머니의 행태가 기가 막혔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집 장만을 여자가 같이 했다면, ‘일반적으로’ 여자가 하는 혼수도 면제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일 테니 말이다. 그러나 시어머니라는 목성인들은 대개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한다.
‘집은 어차피 저희들끼리 같이 사는 거고 나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건데, 왜 그것 때문에 내가 예단을 못 받아야 하는 거지?’
사실 혼수를 허례허식이라고 하며 없애자고 하는 것은 받는 입장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이지 주는 입장인 당신이 꺼낼 수 있는 말은 아니다. 경험자들 중에는 “혼수 잘해봐야 약발 몇 달 안 간다. 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꽤 있지만, 그녀들은 혼수를 하지 않은 여자들이 당하는 일을 겪어보지 못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혼수로 빚어지는 갈등은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관계가 형성되기 이전에 일어나는 일이라서 결혼생활을 하는 중에 생기는 각종 갈등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야말로 평생의 관계를 좌우할 수도 있는 일이다.
혼수든 예단이든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남들 하는 만큼을 기쁜 마음으로 하라. 형편이 못 된다면 Y처럼 시어머니 선물만이라도 해서 그녀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라. 결혼 문화의 악습을 뿌리 뽑고 싶다면 30년쯤 후 시어머니가 될 당신들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늙어야 한다. ‘나도 내가 한 만큼 뽑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지금의 상황을 불평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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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에세이스트. 1974년 서울 출생. 숙명여대 국문학과 재학 시절부터 방송작가, 자유기고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출간 이후 80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여성 에세이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한 베스트셀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2004)를 비롯하여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 실천편』(2006), 『여자, 거침없이 떠나라』(2008), 『여자의 인생은 결혼으로 완성된다』(2009), 『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2010) 등 2030 여성을 위한 에세이를 펴내어 독자들의 뜨거운 지지와 공감을 얻었다. 또한 그녀의 여성 에세이는 중국과 대만, 베트남, 몽골에 번역 출간되었고 특히 중국에서는 150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보이며 자국 위주의 중국 출판계에서는 드물게 비소설 분야의 베스트셀러 1위 기록을 세우는 등 여자에게 솔직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전해주는 멘토의 지침서로서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시대 아시아 여성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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