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톱 덤핑 뮤직’이라는 운동이 있습니다. 음악 생산자에게 정당한 권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현 음원 서비스에 반대하며 온라인 음원 유통을 거부하는 뮤지션들의 움직임이지요. 공연마다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는 밴드인 갤럭시 익스프레스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이들의 이번 앨범을 온라인으로 들을 수 없는 이유죠.
그런데 이 앨범, 이 정도라면 굳이 CD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지갑 여는 것을 고민할 만한 음반으로 들리네요.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 Galaxy Express >는 밴드의 최고작일 뿐 아니라 2012년 록 음반의 최고작이기도 합니다. 작렬하는 로큰롤의 기운, 지금 바로 갤럭시 익스프레스를 통해 만나보세요. ‘낯선 사람들’에서 솔로로 전향한 고찬용의 신보와, 과거 나얼과 함께 브라운 아이즈를 꾸렸던 윤건의 신보도 함께 소개해 드립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Galaxy Express) < Galaxy Express >
TV라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소비되는 아이돌 중심의 ‘기형적 시장구조’는 탈자본을 주창하는 인디 음악의 기지개를 가로막는다. 인디와 오버의 경계선에서 갈피를 못 잡고 기억 속으로 희미해져 간 밴드 또한 적지 않다. 이런 괴(怪)구조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여전히 떳떳하게, 혹은 연명(?)하며 자신의 음악을 하고 있다. 이쯤 하면 대한민국이라는 음악의 불모지에서 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 아니면 도’의 외줄 타기라는 것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주의 태초 대폭발을 로큰롤로 구현해낸다는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시장의 틀’에 얽매어있기를 거부한다. 지난봄 무모할 것 같았던 북미투어 중 뜻밖의 행운이 있었다. “한국에서 온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록밴드 MC5를 연상시키는 종횡무진의 프로토 펑크(Proto punk), 사이키델릭 록으로 확신을 가진 엄청난 연주를 들려주었다.”라는 내용으로 뉴욕타임스에 기재된 것이다. 이는 비영어권 밴드로는 이례적인 일로 ‘맨땅에 헤딩’ 식의 미국 투어에서 이뤄낸 쾌거였으며 새로운 시장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작지만 기분 좋은 사건이었다.
사실 정상적인 스튜디오 앨범은 이번
< Galaxy Express >가 처음이다. 데뷔 작품
< Noise On Fire >는 더블 앨범이었고,
< Wild Dayz >는 한 달 동안 MP3로 녹음하며 ‘무에서 유’를 창조해냈다. 무모함에서 시작했지만, 그 결과는 지금의 그들을 낳았고 이제야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결정판이 나온 것이다. 우주를 향한 쾌속질주는 이제 막 본 궤도에 올라섰다. 10곡의 신곡은 붉은 표범의 이미지와 상충하는 맹렬한 기백의 로큰롤이다. 「Riding the galaxy」는 슬라이드 기타 연주와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대망의 시작을 알린다. 「Cha! cha! cha! cha!」는 스투지스(The Stooges)와 엠씨파이브(MC5), 텔레비전(Television) 등이 유행시켰던 프로토 펑크의 원색적인 야만성을 그대로 담아낸, 이른바 ‘록왕’의 낙관이 새겨진 가장 그들다운 작품이다. 이어지는 트랙 「너와 나」는 우리 모두 우주로 날아가자는 희망가다. 간결한 인트로 리프와 명료한 멜로디라인, 싱어롱의 장치가 탑재된 코러스는 이상적으로 결합한다.
「호롱불」은 폭렬의 에너지로 달아오른다. ‘밤새 놀아나보자!’는 날카로운 외침은 곧장 청각의 쾌감으로 전해지며, 작은 호롱에 타는 불보다는 거대한 용광로 속의 화염이 느껴지는 정열의 ‘청춘 찬가’다. 「How does it feel?」은 드럼과 베이스의 그루브감이 생명으로 스페이스 록의 사이키델릭적 무드를 극적으로 끌어낸다. 「그날처럼」의 비트감은 하드록의 위대한 그림자 AC/DC를 떠올리게 한다. 이 하드 록 퍼레이드는 「또 다른 세계로」로 이어진다. 굵직하고 선명한 리프와 거대한 소리의 폭발, 극적인 곡의 전개는 앨범의 백미다.
「첫 느낌으로」는 이전에는 없던 낭만을 품은 로맨스다. 쉼 없이 달려만 왔던 그들을 잠시 내려앉아 읊조리듯 노래한다. 「언제까지나」는 멜로디 마에스트로 노엘 갤리거의 유려한 선율 못지않은 중독성이 느껴진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품은 놀라운 발라드다. 「언제까지나」의 후렴구를 그대로 잇는 「Forever more」는 만감이 교차하는 묘한 여운이 남는 피날레다.
비틀즈는 무자비한 고성으로 가득했던 공연에 질려 팬들 앞에 서길 거부했다. “라이브에서 연주할 수 없는 곡을 만들자!”라는 포부로 소리의 실험에 돌입한다. 스튜디오로 향했던 그들은 팝 음악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끊임 내놓았고 ‘대중음악사 최고봉’에 올라섰다. 반면 롤링 스톤즈는 이런 광적인 팬들의 환호를 즐기기라도 하듯 쉼 없이 길 위를 달렸고, 팬들 앞에 섰다. 그러는 와중에도 변함없이 순도 높은 로큰롤 명반을 잇달아 발표하며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로큰롤 밴드’라는 위치를 선점했다. 이 명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대 위의 지칠 줄 모르는 파워였다.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완벽하게 후자에 해당하며, 우리가 이들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기 ‘정의와 젊음’으로 대두하였던 인디신의 펑크록과 하드코어라는 강성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랑과 일상’을 매개로 하는 연성화에 빠졌다. ‘태도의 차이’보다는 ‘다른 취향’이 그 밑바탕에 깔리며 변질한 것이다. 그들은 이런 시들어가는 기조를 순전히 에너지만으로 깨부순 팀이다. 마일즈 데이비즈의
< Kind Of Blue >를 향한 찬사 중 ‘이 음반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이 표현을 그대로 빌려보고자 한다.
이 음반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록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 Galaxy Express >는 최고의 록 밴드가 만들어낸 최고의 록 앨범이다.
글 / 신현태 (rockershin@gmail.com)
고찬용 < Look Back >1990년대를 빛냈던 뮤지션들은 텔레비전에서 방황하고 있고, 최신 유행을 이끈 신진 작곡가들은 너도나도 ‘웰메이드’란 목적으로 뭉쳐 다니며 곡을 쓴다. 자기만의 세계를 뚜렷이 펼치고, 그 정신을 온전히 담아내어 ‘작가’의 냄새가 가득한 앨범을 만나는 건 이제 쉬운 일이 아닌 세상이다.
< 제2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대상 >을 시작으로 1993년 ‘낯선사람들’의 리더로 활약하다 돌연 자취를 감췄던 그는 딱 10년 만에
< After 10 Years Absence >(2006)로 돌아왔다. 별다른 홍보 없이 보내버린 이 앨범은 비록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진 못했지만, 그 해 가요계에서 놓치면 안 되는 소중한 음반이었다.
6년의 세월을 보내서야 인사하게 된
< Look Back >의 평가는 2006년 때의 긍정적인 반응과는 조금 다르다. 잘 만든 작품이라는 것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1집과의 무게감을 놓고 봤을 땐 동일하지 않다는 분위기다. 적어도 「꿈꾸는 아이」로 시작하여 「오늘 하루는」으로 마치는 감동을 이번엔 찾기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 After 10 Years Absence >에서 들었던 익숙한 코드 전개가 이어지고, 타이틀 곡 「화이팅」에서의 사운드도 ‘변화’란 단어를 쉽게 떠올리지 못하게 한다. 분명 입장하자마자 마주치는 첫인상만 놓고 봤을 땐 새롭지 못한, 살짝 식상한 느낌이 든다.
감흥을 불러내는 건 「바다」부터다. 두 번째 트랙을 맞이해서야 고찬용은
< Look Back >에서 해야 할 음악과 들려주고 싶은 선율을 쏟아 낸다. 신시사이저가 완성했던 1집의 뼈대는 순식간에 재즈로 변모하며 고상한 자태를 멋지게 뽐낸다. 2집이 다른 건 이러한 재즈 터치다. 전자 건반의 소스를 크게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도 편곡의 힘으로 아우라를 완성한다.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음에도 비슷하지 않게, 익숙한듯하면서도 신선한 사운드를 제공한 것이 이번 음반이다. 노래에 접근한 악기의 태도를 바꿈과 동시에 1집에서 펼쳐낸 세계를 지켜낸 점이 소모포어 징크스가 존재할 시점에서 위기를 극복한 그만의 해법인 것이다.
대중에게 설득력 높은 음악은 반드시 자신의 단점을 보완만 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좋은 선율과 더불어 머릿속에 담긴 생각을 뚜렷이 펼쳤을 때, 그 마음은 더 강하게 전달된다. 20년 전 같이 활동했던 이들 중 현재 이토록 굳건한 자세를 가진 이가 몇이나 있을까. 고찬용은 2006년은 물론이고 2012년에도 솔로 뮤지션으로서는 누구나 욕심내고 싶은, ‘작가’의 음악을 냈다.
글 / 이종민(1stplanet@gmail.com)
윤건 < Far East 2 Bricklane >앨범의 이름에 맞게 브릿팝의 느낌이 앨범 전반에 깔려있다. 영국 런던의 예술가 거리인 브릭레인(Bricklane)과 극동(Far East), 즉 한국이 만나 개성 있는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팀(Team)’ 시절의 힙합으로부터 ‘브라운 아이즈’ 시절의 미드 템포 알앤비로 이어진 흑인 음악적 색채는 확실히 옅어졌다.
‘싱어송라이터’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게, 이번 앨범에서도 리메이크 곡인 「차우차우」를 제외한 전 곡을 직접 작곡했다. 과거의 음악 스타일과 완전히 다른 느낌의 곡들인데도 어설프거나 과장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그의 음악적 감각을 증명한다. 화려하게 꾸며지지 않은 덤덤한 보컬 스타일은 건반 사운드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이 앨범에서 오히려 빛을 발휘한다. 전곡을 작사한 김상현의 감성적인 가사 또한 매력적이다.
경쾌한 리듬의 건반 소리가 두드러지는 타이틀 곡 「걷다」는 윤건 자신이 ‘건반록’이라 지칭한 이 앨범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낸다. < 슈퍼스타 K > 시즌 4에서 ‘로이 킴’이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던 「힐링이 필요해」에서는 건반과 색다른 조화를 이루는 기타 선율과 잔잔한 그의 목소리를 통하여 「October rain」이라는 부제에 맞는 가을의 쓸쓸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With you」에서는 강한 드럼 비트와 건반 사운드, 그리고 이에 맞게 다른 곡에서보다 다소 힘있는 윤건의 보컬을 들을 수 있다. ‘델리스파이스’의 동명의 곡을 리메이크 한 「차우차우」에서도 역시 건반 사운드가 주를 이룬다. ‘Bizzy’의 피처링은 앨범의 전체적인 색깔을 생각할 때 다소 낯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원곡과 다른 매력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한다. 처음과 끝의 첼로 소리와 박진감 있는 리듬이 인상적인 마지막 트랙 「Go」에는 ‘Go. 어둠을 벗고 이젠 일어나봐.’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담았다.
브릿팝이 각 뮤지션의 ‘개성’을 중심으로 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이 앨범은 트렌드를 따르기 보다는 개성 있는 음악을 하겠다는 일종의 선언으로 보인다. 트렌드에 맞게 만들어진 음악들이 쏟아져 나오고 또한 쉽게 잊히는 요즘, 건반을 중심으로 다양하면서도 분명한 색채를 드러낸 이 앨범을 통해 윤건은 자신만의 음악적 지평을 확보했다.
글 / 위수지(sujiis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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