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매부터 자살에 이르기까지 정략결혼의 비극
결혼이 가장 큰 덕목이었던 시대의 결혼 그림들 윌리엄 호가스와 18세기 영국의 결혼풍속도 결혼은 진화하지 않는다
윌리엄 호가스는 당대의 풍속화가로 상류사회의 부도덕한 결혼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 ‘최신식 결혼’이라는 연작 6점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1672년에 초연된 존 드라이덴의 동명의 희극에서 따온 것이다. 호가스는 마치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시간의 흐름을 따라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 귀족은 명예를, 중산층은 부를 맞교환한다는 전제로 맺어진 정략결혼의 현실을 희비극적으로 연출했다.
18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가문과 가문 사이의 정략결혼이 아닌 사랑에 뿌리를 둔 결혼이 자리 잡았다. 사랑에 대한 담론 역시 뜨거워져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영국에서 혼인 윤리는 일종의 ‘뜨거운 감자’였다. 18세기 초, 영국 사회는 신흥부자들과 몰락해가는 귀족 집안 사이의 결혼이 유행했다. 신흥 부자들의 귀족의 칭호와 명예를 얻고, 귀족들은 우아한 생활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으니 서로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이런 식의 정략결혼은 불행한 결혼생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많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이런 세태를 풍자했다.
특히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 1697~1764)는 당대의 풍속화가로 상류사회의 부도덕한 결혼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 ‘최신식 결혼’이라는 연작 6점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1672년에 초연된 존 드라이덴의 동명의 희극에서 따온 것이다. 호가스는 마치 텔레비전 드라마처럼 시간의 흐름을 따라 스토리 라인을 만들어 귀족은 명예를, 중산층은 부를 맞교환한다는 전제로 맺어진 정략결혼의 현실을 희비극적으로 연출했다. 이 연작은 중매쟁이의 방문, 약혼, 결혼식 후, 백작부인의 아침 접견, 백작의 암살, 백작부인의 자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허영을 열쇠 삼아 결혼을 성사시키는 출발한 결혼이 시작되는 중매부터 결국 죽음에 이르는 파국까지가 6장 안에 모두 들어 있다.
「최신식 결혼-약혼」은 계약결혼이 이루지는 순간을 묘사한다. 신분 상승을 꿈꾸는 상인은 상류사회 진출을 위해 막대한 지참금을 지불하고 딸의 혼사를 추진한다. 화면 오른쪽에 앉아 있는 백작은 신랑의 아버지로 화려한 금빛 옷을 차려입고 자신들이 얼마나 뼈대 있는 가문인지를 과시하려는 듯, 복잡한 가계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으스대고 있다. 그와 원형탁자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은 붉은 옷의 남자는 지참금 계약서를 읽는데, 신부의 아버지이자 부유한 자산가임으로 알 수 있다. 계약서와 맞바꾼 대가는 백작 앞에 수북이 쌓인 금화다. 백작 가문은 사실상 도를 넘어선 씀씀이를 견디다 못해 몰락 직전에 처한, 이름만 남은 귀족에 불과하다. 이는 한쪽 발을 붕대로 감고, 목발을 짚어야 하는 절름발이 신세인 백작을 통해 잘 암시되어 있다. 몸에 습관처럼 배어 있는 사치를 절제하기는 어려우니, 해법으로 아들의 정략결혼을 선택한 것이다.
정작 결혼 당사자들은 심드렁한 모양이다. 결혼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는 당시 유행하던 최신 프랑스식 복장으로 화려하게 꾸민 채 왼쪽에 앉아 있다. 신부는 신랑이 아닌 다른 남성과 대화 중이고, 신랑은 예비신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등을 돌리고 앉아 거울을 보며 몸치장에 열중하고 있다. 신랑은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사로잡힌 나르시스와 흡사하다. 반면 신부는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앞으로 자신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조차 못한 채 애꿎은 손수건만 빙빙 돌리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신부의 머리 위에 걸린 메두사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형상인데, 마치 이 결혼의 불길한 행보를 예고하고 있는 듯하다. 신부 옆의 남자는 변호사로, 신부에게 밀어라도 속삭이는지 상기된 표정이다. 변호사는 훗날 여인의 정부가 되어 이 결혼의 비극적 결말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커플의 애정 없는 결혼생활은 앞에 있는 두 마리의 개를 통해서도 다시 한 번 암시된다. 서로 목줄로 연결되어 있는 두 마리의 개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정해준 상대와 결혼해야 하는 남녀의 허망한 운명을 상징한다. 이 작품의 실제 모델은 18세기에 실존했던 백작 가문과 상인 가문이었다고 한다. 신부와 내연관계였던 변호사가 그들의 밀회를 목격한 남편을 살해하고, 이를 비관한 신부가 독약을 먹고 자살하며 비극으로 끝났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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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시각예술과 정신분석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뉴욕 대학교에서 예술행정전문가 과정을 수료했다. 수년간 미술잡지 기자와 큐레이터로 일했으며, 현재는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유경희예술처방연구소’를 운영하며 예술과 인문학을 통한 상상력과 창의력, 힐링과 멘토링에 관한 글쓰기, 상담, 특강 등을 기획ㆍ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예술가의 탄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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