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책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
47살까지 인간관계가 50대 이후 삶 좌우
행복한 사람들의 5가지 공통점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행복하지 않다고? 그렇다면 먼저 ‘언제나 행복해야 한다’는 그릇된 강박증을 발로 차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내 불행을 바닥까지 들여다보자. 우리에겐 엉망인 과거를 바꿀 수 있는 능력도, 불행한 기억을 삭제하는 기능도 없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프로이트의 말처럼 사람이 반드시 행복해져야 한다는 생각은 창조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불행하면 불행한 대로, 행복하면 또 행복한 대로 마음껏 살아가련다. 나는 이토록 생생히 살아 있으니.
몸 안에서 손톱으로 할퀴며 울부짖던 여자아이가 울음을 그친 것처럼 조용해.
-전경린, 『풀밭 위의 식사』 중에서
한 남자의 기나긴 행복탐닉기
-에릭 와이너, 『행복의 지도』
고백하자면, 나는 10년차 조울증 환자다. 조울증. 그러니까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사이를 무수히 오가며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누구나 행복과 불행 사이를 오가며 살겠지만 내가 그 간격을 오가는 시간은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 안에 든다고 자부한다. 음, 물론 자랑은 아니다. 소설가 공지영은 남들보다 예민하고 격렬한 자신의 감정의 폭을 한때 못 견뎌 했으나 말하자면 자신은 남들이 잘 안 쓰는 피아노 건반의 가장 낮은 옥타브부터 높은 옥타브까지 모두 두드리며 사는 부류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내 경우는 얘기가 조금 달랐다. 나는 내가 불행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 느낌과 기분마저도 좀처럼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 사실을 타인과 스스로에게 들키는 것은 가장 은밀하며 치욕스러운 비밀 파일을 ‘전체 공개’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나는 아무 근거도 이유도 없이 그냥 행복해야 했다. 게다가 나날이 더 행복해져야만 했다.
행복에 관한 편집증이 생긴 것은 그때부터이다. 내가 별로 행복하지도, 즐겁거나 유쾌하지도, 그렇다고 일상에 감사하거나 삶을 긍정하지도 않는다는 이 기막힌 진실을 더 이상 숨길 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극적인’ 행복을 오래 찾아 헤맸다. 행복이란 것이 선물보따리를 풀듯 ‘짠!’ 하고 나타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저 모퉁이만 돌면, 저 계단만 오르면, 저 문만 열면 내가 그토록 기다리고 고대하던 행복이란 놈이 먹음직스런 치즈케이크처럼 나를 맞이할 것 같았다. 그 순간을 그리며 나는 행복을 탐닉했다. 행복이라는 두 글자가 들어간 책을 지칠 만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야 행복하다’라는 각기 다른 지침들 속을 바삐 표류하며 충실히 따랐다. 조깅이 행복을 가져다준다. 녹색 식물을 집안 가득 들여라. 친구와 대화하듯 일기를 써라. 종교에 충실해라. 명상 서적을 읽어라. 심지어 한때 나는 그것이 내 행복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전혀 모른 채 시키는 대로 예쁜 속옷을 모으기도 했다. 물론 카드 값만 뒤집어썼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헛다리를 제대로 짚은 셈이다. 그는 말했다. 행복은 불행하게도 그것을 찾아나서는 순간부터 사라진다고.
우습고도 아이러니한 것은 행복과 동시에 꼭 같은 양의 불행에도 열광했다는 사실이다. 내 심리 밑바닥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뒤틀리고 꼬여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불행한 타인들을 보며 묘한 공감(다른 말로 하자면 싸구려 연대감)과 진한 위안(잔인한 안도감)을 받기도 했다. 나는 클라이스트가 자신의 인생을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삶”이라 부른 것과 슈베르트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인간”이라 칭한 것, 세잔의 “지상에서 나보다 더 불행한 인간은 없을 것”이란 외침과 로베르트 발저의 “다른 어떤 사람도 내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나만이 나를 견뎌낼 수 있을 뿐”이란 고백 등에서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볼프 슈나이더, 『만들어진 승리자들』에서 인용)
‘아! 전 인류가 열광하고 심지어 숭배해 마지않는 그들도 지고의 고통과 슬픔을 겪었던 한 인간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은 내 불행을 단번에 축소시키는 탁월한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그 효과는 지극히 일시적이었지만.
각설하고, 이렇듯 나는 행복에 관해서라면 2박 3일을 혼자 떠들 수 있을 만큼 쌓인 게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블록을 쌓듯 마음 한 곳에 행복에 관한 지식들을 조심스레 저장해두었다. (젠장, 돌아보면 그게 가장 큰 문제다. 행복을 글에서 찾을 시간에 운동장을 한 바퀴 뛰는 게 나를 더 행복하게 했을 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일련의 책들을 읽으며 짜증을 넘어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가 다 그 밥에 그 나물인 원칙들에 다른 조미료를 첨가해 설교하듯, 행복과 관련된 책들도 하품이 날 만큼 비슷한 이야기들뿐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일상 그 자체에서 행복을 찾으십시오.” 지금 그 자리에서 행복해지십시오. 고개를 끄덕이고 밑줄을 박박 긋고 심지어 달달 외우던 몇 해 전과 달리 이제 나는 그런 글들 앞에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딴 건 다 알고 있으니까 어떻게 해야 진짜로 행복해지는지를 알려달라고! 이런 사기꾼들 같으니!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주 흥미로운 미국 남자를 만났다. 스스로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남자. 그리하여 (나와 마찬가지로) 약발이 다한 자기 계발서와 명상서의 충고에 지쳐 스스로 진짜 행복을 찾아 길을 떠난 남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그 여행을 대하는 그의 태도였다. 그는 행복 탐색이라는 여행이 얼마나 바보 같고, 어리석고, 헛수고가 될지 잘 알고 있다며 아주 쿨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괜찮아, 난 이미 불행하니까. 밑져야 본전이야.”
그리하여 이 괴짜 투덜이는 행복을 찾아 1년간의 여행길에 오른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놓이면 과연 행복할까’라는, 내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품는 의문을 가슴 깊이 간직한 채.
지상 최고의 행복 국가를 찾아
『행복의 지도』는 콘셉트 자체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일단 그 점에서 별 하나를 추가할 만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개똥 같은 일상을 걷어차고 이 나라 저 나라를 자유롭게 떠도는 상상에 빠져봤을 거다. 그런데 그 ‘이 나라 저 나라’가 지구상에서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들이라면? 와우,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서 발끝이 간지러울 지경이다. 게다가 저자는 전직 <뉴욕타임스> 기자다. 그 말인즉슨 주로 전쟁, 질병, 테러, 살인 사건 등 불행한 소식을 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런 그가 반대로 행복의 소식을 전하고 그 정체를 파헤치고자 떠났다. 그래서 그는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이 여행의 목적은 어떤 장소가 아니었다. 헨리 밀러의 말처럼 진정한 목적지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었다. 저자 에릭 와이너는 주어진 1년의 시간 동안 지구상 10개의 나라, 수만 킬로의 거리를 종횡무진한다. 마리화나와 성매매쯤은 합법적으로 당당히 할 수 있는 네덜란드, 평화롭고 안락한 질서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원칙주의자들의 나라 스위스, 경제적인 대차대조표 대신 국민의 행복지수로 나라의 발전도를 측정하는 부탄, 돈으로 문화까지 살 수 있는 세계 최고 부국 카타르, 모든 것이 신의 섭리에 따라 태어나고 죽어간다 믿는 진리와 성찰의 나라 인도…….
행복은 미꾸라지 같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일들을 많이 만났다. 스위스인들은 틀에 박힌 삶을 사는데도 행복하다. 태국인들은 느긋한 성격이며 행복하다. 아이슬란드인들은 흥청망청 술을 마시는 데서 기쁨을 찾고, 몰도바인들은 오로지 불행밖에 보지 못한다.……(중략)……나는 속이 상해서 유명한 행복학자 중 하나인 존 헬리웰에게 전화를 건다. ……(중략)……“간단합니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에요.” 물론 그렇겠지. 내가 왜 그걸 몰랐을까? 톨스토이의 말은 거꾸로다. 불행한 나라들은 모두 똑같지만, 행복한 나라들은 각각 자기만의 방식으로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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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지 않다면 행복에 관한 걱정을 그만두고 자신의 불행에서 뽑아낼 수 있는 보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편이 더 낫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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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판단하기에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숫자로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진단을 내리기에는 너무나 애잔하고, 학술지에만 실리기에는 영구 불멸의 존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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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행복, 행복의 지도, 행복의 조건, 에릭 와이너, 조지 베일런트
천 권의 책에 인생의 길을 물었던 김애리. 그녀는 거창한 결심을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 견디기 위해 책을 읽었다. 우울증에 시달릴 만큼 예민하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쫓던 그녀에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이놈의 ‘삶’을 견디는 일은 다 커서 젓가락질을 다시 배우는 일마냥 멋쩍고 창피했다. 이토록 소심한 여자가 청춘을 견디고, 서른을 견디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독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며불며 책을 읽었고, 사랑 역시 책으로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이 되기 전에 천 권의 책을 읽었다. 청춘이라는 악몽 같은 시간을 오직 책으로 버텨낸 그녀의 열정은 2009년 겨울 서정문학상에 단편소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이 당선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으며 이후 『책에 미친 청춘』, 『십대, 책에서 길을 묻다』, 『아까운 책 2012』(공저) 등을 펴냈다. 현재 언론진흥재단, 김영사 웹진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독서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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