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에서는 롤링 스톤스의 50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이 연일 화제입니다. 롤링스톤스는 비틀스와 함께 1960년대부터 활동해온 로큰롤의 살아있는 전설이지요. < GRRR! >는 음반 수집가들은 물론, 관심을 갖다가도 방대한 디스코그라피에 놀라 어떤 것부터 접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던 진입자들에게도 추천할만한 앨범입니다. 오늘은 롤링스톤스의 50주년을 기념하며 그들의 대표작 중 하나인 < Some Girls >를 소개합니다. 아마 처음 이들을 접하기로는 가장 수월할 앨범이라 자신합니다.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 < Some Girls > (1978)
< Exile On Main Street > 이후,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의 1970년대는 새로운 사운드를 접목시키는 음악적 실험으로 가득했다. 밴드의 트렌드 친화적인 접근과 여러 국가로의 도피를 통해 습득한 값진 식견(?)들은 다양한 음악을 흡수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작품 곳곳에 자리하는 펑크(funk)와 라틴, 레게 사운드는 이러한 증거로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시기는 밴드의 역사에서 다소 아쉬운 부분에 속한다.
물론 개개의 싱글들은 베스트 앨범에 모두 수록해도 모자람이 없는 결과물들이다. 그러나 디스코그래피라는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판단하자면 (당시의 시각으로는) 물음표가 따르는 부분인데,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본연의 맹렬했던 사운드를 다소 접어두었다는 사실에 존재한다. 록 넘버보다는 발라드 넘버에서 소구력을 발휘했던
< Goats Head Soup >는 그 자체로 연성화의 증거였으며 로큰롤이라는 이름을 걸고 내민
< It's Only Rock 'n Roll >은 예전만한 기세를 보여주지 못했다. 여기에 후속작
< Black And Blue >는 디스코와 라틴 음악 등의 영역에 더 많은 지분을 할애한 작품이었으니 록 팬들의 비난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반응에 아랑곳할 롤링 스톤스던가. 사람들의 비난, 특히 펑크 록을 앞세운 젊은 세대들의 원색적인 공격이 빗발쳤음에도 밴드는 여전히 펑크(funk)나 디스코와 같은 유행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에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맹렬한 리듬 앤 블루스를 혼합해 선 굵은 사운드를 뽑아냈으니 가장 트렌디하면서도 가장 롤링 스톤스다운 작품,
< Some Girls >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음반의 첫 번째 싱글로 공개되었던 「Miss you」는 10곡에 달하는 트랙들 가운데서도 제일 뛰어난 작품이었다. 기민하게 흔드는 디스코 식 전개 위에 블루스 음률을 얹은 이 곡은 댄서블한 로큰롤로 가득 채워진 밴드의 이력에서도 단연 정점에 자리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하이 햇 심벌즈를 적극 활용하며 색다른 사운드를 주조해낸 찰리 와츠(Charlie Watts)의 드럼 연주였다. 두터운 베이스 드럼을 바탕으로 단속적인 연주를 진행했던 이전과는 다른, 경량화한 리듬을 빚어낸 것으로 팝적인 접근을 이루는데 있어 일등공신의 지위를 차지한다.
찰리 와츠와 더불어 베이시스트 빌 와이먼(Bill Wyman)이 전체적인 밑바탕을 그려냈다면 키스 리처드(Keith Richards)와 로니 우드(Ronnie Wood)는 환상적인 기타 사운드를 덧입혔다. 보컬 믹 재거(Mick Jagger)가 기타 배킹을 동시에 담당함으로써 완전히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었던 두 기타리스트는 「Respectable」이나 「Shattered」와 같은 곡들에서 화려한 조합을 자아낸다. 특히 강렬하게 진행하는 리듬 앤 블루스 넘버 「Respectable」은 교대로 날아드는 기타 솔로가 일품인 곡으로 둘의 시너지가 빛을 발휘한 수준급의 트랙이다.
날이 선 사운드와 마찬가지로 태도의 면모에서도 위협적인 이빨을 드러낸다. 특히 길거리를 전전하는 동성애자의 삶을 날카롭게 그린 「When the whip comes down」이나 여성 비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Some Girls」는 다분히 거친 주제를 다루는 문제작이며, 「Lies」는 애인의 거짓말에 진저리를 치는 분노가 담긴 로큰롤 넘버다.
한편으로 밴드의 또 다른 특기인 발라드 라인 또한 앨범 곳곳에 자리하는데 로니 우드의 기타 솔로가 일품인 「Far away eyes」는 컨트리풍의 터치를 가미한 매력적인 곡이다. 여기에 믹 재거가 독백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Beast of burden」과 (비록 로큰롤 트랙이긴 하나) 약물에 빠져 살았던 지난날에 작별을 고하는 키스 리처드의 「Before they make me run」은 밴드의 이력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자전(自傳)들로, 음반에 다채로움을 제공하는 놓칠 수 없는 작품들이다.
앨범은 성공적이었다. 차트 성적과 판매량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대중을 휘어잡았고
< Exile On Main Street > 시절의 전성기로 복귀했다는 평과 함께 평단의 지지도 이끌어냈다. 특히나 기성 록 밴드에 향한 젊은 반감과 디스코에 대한 당대의 비난을 뚫고 만든 트렌드 작품이었기에
< Some Girls >가 지니는 의의는 더욱 부각된다. 혁신을 향한 꾸준한 시도가 거둔 거장들의 승리랄까.
돌이켜보면 1970년대는 갖가지 사운드가 만발하던 시대였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프로그레시브 록이 있었는가 하면 단순함의 미학이 맹위를 떨치던 펑크도 있었고, 남성적인 하드 록과 여성적인 글램 록이 공존했다. 흑인 음악의 영역에서는 펑크(funk)와 디스코가 연달아 일고 있었고 남미에서는 라틴과 레게가 연달아 날아들었으니 실로 다양하고 또 다양했다. 롤링 스톤스는 이 모든 걸 담고자 했다. 시류에 발을 맞추려 부단히 노력했고 그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색깔을 지키고자 끝없이 분전했다. 이러한 결과물의 정상에
< Some Girls >가 자리한다. 트렌드와 본연의 사운드를 모두 획득한 당대의 시대작이자 현재의 명반이다.
글 /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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