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초대박 변수가 돌출되지 않는 한 차기 18대 대통령은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인물 중에 나오게 될 전망이다. 선거일이 하루 이틀 다가오면서 판세를 관전하는 재미도 높아지고 있다. 단일화 시점은 과연 언제일지. 정수장학회, NLL 밀담, 박근혜의 이명박 선 긋기 등. 매일 TV 뉴스와 신문에서 전달하는 단독보도가 유권자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야말로 선거의 계절이다.
음악 애호가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사실은 유력 후보 중에 다수가 대중음악 쪽에 문외한일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우려다. 솔리드의 「천생연분」과 거북이의 「빙고」가 애창곡이라는 박근혜는 인디 음악 씬을 ‘음악계의 2군’으로 인식하는 한계를 보여줬고, 안철수는 모 TV 프로그램에서 밝혔다시피 이효리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범생 기질을 노출했다. 작곡가 김형석을 멘토단으로 영입한 문재인의 문화관이 궁금할 따름이다.
자연스레 해외로 눈을 돌려보게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해외 지도자들의 상당수는 음악을 좋아했고 국민 앞에서 스스럼없이 한 곡조 뽑아낼 줄 아는 무대기질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서 대중음악에 대한 식견이 높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만이라도 권위를 내려놓으며 민낯으로 국민들과 교감을 나누고 때로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꼰대’스럽지 않은 매력을 발산하는 것도 미래 대통령에게도 플러스 요인이 되지 않을까. 흥미로운 외국 지도자들의 사례를 간추려 나름의 평가기준으로 순위를 선정해보았다.
7위 :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가창력 : ★☆ 쇼맨십 : ★★★
고이즈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팬이다. 생일도 1월 8일로 같다. 2001년에는 엘비스 사후 24주년을 맞아 그가 좋아하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곡을 선정해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매했다. 게다가 엘비스 프레슬리 팬클럽 동경지부의 회원인 동생(고이즈미 마사야)과 함께 동경 하라주쿠 거리에 엘비스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엘비스 사랑을 알고 있었던 ‘절친’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은 2006년 6월 고이즈미가 미국을 방문하자 생전 엘비스의 저택이었던 그레이스랜드(Graceland)로 초청했다.
스타를 사랑하는 마음은 10대 청소년이나 환갑을 넘긴 고이즈미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엘비스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인 커다란 선글라스를 끼고 그레이스랜드를 방문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급기야는 취재진들 앞에서 시키지도 않은 과장된 엘비스 댄스를 선보이는가 하면 수줍은 목소리로 「Love me tender」의 일부 소절을 부르기도 했다. 우리에게는 우익의 시각을 대변한 과거사 발언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국수적인 이미지로 인식된 터라 의외의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훌륭한 가수라기보다는 훌륭한 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케이스.
6위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가창력 : ★★★ 쇼맨십 : ★★
건설회사에서 시작한 사업수완으로 미디어 제국을 건설하고 결국 권력의 정점까지 맛보았지만 부적절한 처신으로 말로가 좋지 않았던 대표적인 마초맨이다. < 대부 >나 < 좋은 친구들 > 같은 이탈리아 마피아 영화에서 볼만한 뚱뚱한 중년 아저씨 인상을 지닌 그도 음악을 사랑했다. 그는 오랜 음악 동반자인 마리아노 아피첼라(Mariano Apicella)와 함께한 듀오 앨범을 네 장이나 발매한 베테랑 뮤지션이다. 노래는 물론이며 작사까지 전담하는 싱어송라이터다.
푸근한 인상과 끊임없이 터져 나온 여성편력으로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가 구사하는 장르는 재즈를 살짝 얹은 낭만적인 발라드다. 20대에 크루즈 선에서 전속가수로 활약한 경험을 토대로 그의 보컬은 크루닝 창법을 계승한다. 하지만 바다에도 물때가 있듯이 시원찮은 국내 여론 때문인지 앨범 판매는 저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파탄도 문제였지만 주된 타겟층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의 여성들이 이른바 ‘붕가붕가 파티’ 등 무분별한 총리의 성생활에 이미 등을 돌렸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2011년 작 앨범의 타이틀은 < True Love >(Il Vero Amore)였다고 한다.
5위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가창력 : ★★ 쇼맨십 : ★★★☆
독재에 가까운 정치를 제외한다면 남자가 봤을 때 멋진 호인이 푸틴이다. 신뢰성에 의심이 가지만 러시아 언론보도에 따르면 자선 모금행사에 참석한 푸틴이 「Blueberry hill」을 직접 부르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러시아 가요를 부른 것이 아니라 팻츠 도미노(Fats Domino) 버전으로 유명한 미국 로큰롤 송을 재즈로 편곡해서 불렀다는 것이다. 행사의 성격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냉혈한 KGB 요원 출신이라는 딱딱한 이미지를 해소하려는 심중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푸틴은 그동안 러시아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남성미를 과시하는 홍보 전략을 고수해왔다. 2007년에는 상의를 탈의한 채 말을 타는 설정샷을 공개했고, 2008년에는 뜬금없이 극동지역으로 날아가 시베리아 호랑이를 마취 총으로 제압하는 위엄을 과시했다. 이에 대해 일부 반체제 인사들이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일부 국정홍보영상에서 조작이 있었음을 실토하는 증언들이 속출했다. 푸틴과 함께 찍힌 백표범은 사실 장시간 우리에 갖혀 탈진한 상태였다거나, 직접 해저에서 발굴한 유물도 미리 꼼꼼하게 준비된 연출이었다는 식이다. 우리로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한뉘우스’급 홍보지만 지난 8월 러시아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6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며 프로파간다가 충분히 통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중이다.
4위 :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가창력 : ★★☆ 쇼맨십 : ★★★☆
지난 10월 7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차베스는 54.4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무려 4선에 성공했다. 앞으로 6년 동안 임기가 보장되는 터라 처음 대통령에 취임한 1999년부터 따지면 20년 동안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는 셈이 됐다. 일부에서 제기하는 ‘포퓰리즘에 기댄 급진좌파 독재자’라는 비난이 따라붙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차베스를 선택했고 그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동맹의 반(反) 신자유주의 정책은 지속되고 있다.
차베스는 특히 빈곤층 중심의 정책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차베스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대중에게 자주 노출했다. 스페인어 국가에서 자주 애창되는 「Cuando yo quiera has de volver」(내가 다시 돌아가고플 때) 같은 곡들을 부르며 친근한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다가갔다. 풍채에서 우러나오는 마이크가 필요 없는 풍부한 성량은 단연 일품이다.
3위 :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가창력 : ★★ 쇼맨십 : ★★★★☆
1991년 8월 의회의사당 앞에 놓인 탱크 위에 올라가 보수파 공산주의자의 쿠데타를 규탄할 때의 모습은 20세기 세계사에서 손에 꼽히는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만 해도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 지도자로 역사에 남을 것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집권기에는 유머가 가득한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록 콘서트 장에서 권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듯한 막춤으로 폭소를 자아내는 모습은 공연장에서나 탱크 위에서나 그가 확실한 ‘무대체질’임을 깨닫게 도와준다. 보드카를 시원하게 원 샷 때리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모양새는 마치 동네잔치에서 물 만난 옆집 아저씨 같다. 옐친의 건전한 음주가무에 러시아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많은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같은 음주가무더라도 베를루스코니와는 격이 달랐던 것이다.
2위 :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가창력 : ★★★★ 쇼맨십 : ★★★★
스티븐 하퍼는 피아노 치는 대통령이다. 영상에서처럼 요요마와 깜짝 협연을 하기도 했으며, 캐나다를 방문한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와 즉석 잼을 벌이기도 했다. 비틀즈와 에이씨디씨(AC/DC)를 좋아하는 총리는
“음악 연주가 가족의 평안을 가져다주는 길”이라는 음악관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눈썰미 있는 독자들은 이미 눈치를 채 “별점은 제일 높은데 왜 2등이냐?”라는 지적을 할 수도 있겠다. 순위가 2위로 밀려난 이유는 그의 음악관이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임기 중인 2008년에 예술문화 지원금 중 4500만 캐나다 달러(약 50억원)를 삭감해 아티스트들의 맹비난을 받은 사례가 있다. 야당에서 하퍼 총리의 연주를 ‘정치쇼’라고 조롱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1위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가창력 : ★★★ 쇼맨십 : ★★★★
오바마와 흑인 아티스트와의 끈끈한 연대야 4년 전 유세 캠페인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는 정작 백악관에 입성하더니 팝 레전드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사실 미국에서는 뮤지션이 자유롭게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기도하고, 특정 후보의 선거 유세장에 참석해 지지 공연을 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에 정치인과 뮤지션의 악수가 어색하지 않다. 게다가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이 어딘가. 블루스의 메카, 성지, 요람 시카고가 아니던가.
<풀 버전>영상은 지난 2월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을 맞아 비비킹, 믹 재거, 제프 벡 등 블루스 거장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열린 퍼포먼스를 담고 있다. 말 그대로 올스타 밴드가 강림한 가운데 화룡점정은 오바마 대통령이 완성했다. 흥이 정점에 다다르자 버디 가이(Buddy Guy)는 오바마가 아폴로 시어터에서 알 그린의 「Let's stay together」를 부른 사실을 지적하며 「Sweet home chicago」를 불러줄 것을 요청했고 대통령은 쑥스러운 기색을 보였지만 곧장 능숙하게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품위 있으면서도 문화를 자연스럽게 즐길 줄 아는 오바마의 매력을 응축한 단면. 그래서인지 오바마는 흑인 최초 대통령의 재임기간을 4년 더 연장하는데 성공했다.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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