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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외설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 - 십센치(10cm)
가수, 아이돌, 혹은 엔터테이너 ‘4차원’ 속의 유치함과 과도함이 어우러지다 - 오렌지 캬라멜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돌풍을 일으키다 - 멈포드 앤 선즈
데뷔 때만 해도 왜색과 유치한 가사로 지탄받는 듯하더니, 이젠 어엿하게 확실한 색깔을 갖춘 독보적 그룹으로 자리매김했죠. 오렌지 캬라멜의 현재를 신보를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여심공략에 나선 십센치의 정규 2집과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돌풍을 일으킨 바 있는 블루그래스 취향의 밴드 멈포드 앤 선즈의 앨범도 함께 짚어봅니다.
데뷔 때만 해도 왜색과 유치한 가사로 지탄받는 듯하더니, 이젠 어엿하게 확실한 색깔을 갖춘 독보적 그룹으로 자리매김했죠. 오렌지 캬라멜의 현재를 신보를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여심공략에 나선 십센치의 정규 2집과 빌보드 앨범차트에서 돌풍을 일으킨 바 있는 블루그래스 취향의 밴드 멈포드 앤 선즈의 앨범도 함께 짚어봅니다.
오렌지 캬라멜(Orange Caramel) < Lipstick >
※ This is 아이돌
아이돌 그룹의 인기요인 중 실력의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의 신인들은 전문 댄서 못지않은 퍼포먼스와 손색없는 가창력으로 무장해 포화 상태로 갇혀버린 가두리의 물길을 조금이나마 열어보려 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치 더 잘 추고 더 잘 부를수록 뜰 확률이 조금은 커질 것이라 믿는 것처럼. 이러한 역량에 대한 집착은 아이돌을 가수의 군집에 포함시키길 거부했던 무리로부터의 비난에서 어느 정도의 합의점을 찾고자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생각해보면 에이치오티(H.O.T) 때부터 ‘뮤지션’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자작곡을 넣기 시작했고, 동방신기 이후로는 데뷔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한 연습기간도 가히 비교가 안 되게 늘어났다. 이처럼 극대화된 상업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실력이라는 채무를 지우게 되었지만, 오히려 이 빚이 아이돌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오렌지 캬라멜은 그 ‘예의’를 배제함으로써 정확히 중심을 잡은 케이스였다. 애프터스쿨에서의 그녀들이 끼와 재능을 최대한 발휘하려 애썼다면, 이 곳에서의 리지와 나나, 레이나는 그저 자신들의 역할에 맞게 안무를 하고 노래할 뿐이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겠다던가, 엄청난 고음을 들려주겠다던가 하는 욕심은 없다. ‘아이돌’이라는 것의 기본 명제가 엔터테인먼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자신들만의 독특함으로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는 것, 이 점이 단순한 서브유닛에서 시작해 ‘본체’를 위협할 만큼의 독특한 스탠스를 가지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최근의 보이그룹이나 걸그룹들이 ‘아티스트적 강박’에 갇혀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과 정확히 대치되는 지점에 있다. 애초에 이들이 생산하는 콘텐츠는 철저히 오렌지 캬라멜이라 규정지어진 세계 안에서 만들어진다. 그 ‘4차원’ 속의 유치함과 과도함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매력은 철저히 아이돌만이 할 수 있는 것에 몰두함으로서 얻어진 결과물이다. 초창기 「마법소녀」나 「아잉♡」 당시 이들의 반응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 등의 프리틴에게 집중되었던 것은 이와 같은 콘셉트를 줄 정도로 아티스트적 측면을 내려놓을 용기가 없었던 타 소속사들과, 아직 이러한 노골적인 전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대중들이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러니 하게도 「방콕시티」와 「샹하이 로맨스」를 거쳐 이 낯설음이 익숙해진 지금은 이 정규작이 조금 심심할 수 있다. 싱글로 선보였던 곡을 제외하면, 이들의 성격을 제대로 구현해낸 곡들은 정작 부재중인 탓이다. 의성어와 의태어를 섞은 가사와 일그러뜨린 색소폰 소리를 기반으로 연기하듯 흘러가는 타이틀 트랙 「립스틱」과 다이시댄스의 서정성을 재미있게 해석한 「밀크쉐이크」가 그나마 이들의 커리어를 갱신하고 있을 뿐, 나머지 부분에서 평범함을 자처하며 쇄신의 빌미를 제공하지 못한다. 디스토션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운 「Superwoman」이나 신스 루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One love」는 그간의 상큼함을 귀 끝에 되살리기엔 당도가 부족하고, 「아직」이나 「클라라의 꿈」과 같은 전형적인 발라드는 그저 진부할 뿐이다. 굳이 무리해서까지 13곡을 꽉 채워 낼 필요가 있었나하는 생각마저 든다.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잘 찾아왔지만, 결정적인 순간 그것을 확장시키지 못하고 늘어난 시간에 대한 부담에 지레 뒷걸음질 친 인상이다. 일관성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순간순간 비치는 애프터스쿨 멤버로서의 모습은 프로듀싱에 대한 아쉬움을 유발한다. 다만 이 신에 있어서 본질에 대한 물음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다각도적인 시각은 충분히 되짚어 볼 만 하다. 더불어 이에 깊게 개입되어 있는 것은 모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멤버 개개인의 능력이 인기를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그저 부수적 요인일 수 있다는 왠지 인정하기 싫은 모순이다. 즉, ‘가수는 실력이 좋아야해’라는 인식이 전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 그렇게 오렌지 캬라멜의 탄생과 정착은 팝가수와 아이돌의 경계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짚어냈다. 즐거움 이상의 의의라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십센치(10cm) < 2.0 >
슬금슬금 피어올라 20~30대 여성들에게서 메말랐던 보호본능마저 끄집어내는 권정열의 목소리는 참으로 섹시하다. 잔잔한 윤철종의 연주는 얄미울 만큼 설렘을 북돋는다. 10센치는 이것저것 대놓고 바라지 않는다. 툭툭 던지면서 다 아는 듯 보이지만 은근한 흘림을 보이며 자극한다. 적당히 고삐를 풀고 당길 줄 아는 능력은 그들만의 청춘 가득한 연애에서 나오는 것인가.
‘세련된 찌질함’은 십센치만의 개성을 충분히 드러낸다. 「Fine thank you and you?」에서 남자는 이미 지나간 연인에게 소식을 전해 듣지만 헤어지던 날 이전의 시공간에서 아직도 한참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나는 여기에 머물지만 잘 지낸다며 재차 말함이 이별 후 더욱 애틋하고 공허한 심정을 표현해낸다. 그럼에도 철부지 같던 연애시절을 돌아보며 이제는 싱겁게 웃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노래는 온기를 담은 올드 팝 사운드 위에서 씁쓸한 공감을 자아낸다.
찌질함 가운데 엉큼함까지 내비치는 대범함도 있다. 「냄새나는 여자」에서는 간지러운 사운드에 졸릴 듯 말듯 섬세한 가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결국 풀썩 쓰러지고, 덥석 입 맞춘다. 전에 없던 댄스 리듬을 담아낸 「오늘밤에」는 십센치하면 떠오르는 고정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변화다. 아쉬움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윤철종의 내레이션은 특히 유머러스하다.
이어서 조심스런 연애에 촉촉한 단비를 내리는 「나의 꽃」이 달콤한 어법과 아름다움과 감성을 전한다. 흠모하는 누군가에게 수줍은 꽃잎을 떨어뜨리는 순수함을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권정렬의 고적한 보컬이 구슬픈 소야곡을 떠올리게 하는 「한강의 작별」이 아코디언 선율로써 탱고풍 감성을 실어낸다.
예전과 사뭇 다른 다채로움으로 완숙미를 꾀하며 「아메리카노」의 그림자를 탈피하려한 의도를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예술과 외설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는 특유의 농염함도 그대로다. 예상 밖의 돌풍에서 벗어나 거리를 두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회에 나섰다.
멈포드 앤 선즈(Mumford & Sons) < Babel >
소리에 있어서든, 연주 스타일에 있어서든. 누가 들어도 정체 파악이 가능한 고유의 사운드를 갖고 있다는 것은 창작자에게 있어 커다란 강점이다. 로드 스튜어트의 걸걸함을 마주하는 누구든 그 노래의 주인공이 로드 스튜어트임을 눈치 챌 수 있고, 산타나의 기타 플레이를 접하는 누구라도 그 연주가 산타나의 솜씨임을 대번에 알 수 있지 않던가. 대중음악이 자기표현의 한 방법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자기 음계(音界)를 확실하게 구축한 음악가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가’로 칭송받을 자격을 확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멈포드 앤 선즈는 경력이 그리 오래지 않은 그룹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경쟁력을 갖춘 밴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밴조와 만돌린, 아코디언을 통해 펼치는 질주감은 메인스트림에서 희소한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감성을 잇는’ 가교로 작용하고, 성대를 인위적으로 죄는 프런트 맨 마커스 멈포드의 개성 강한 보컬 역시 밴드의 트레이드마크로 기능하는 덕분이다. 서두의 두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이 경우 또한 ‘누가 들어도 멈포드 앤 선즈’라는 대답이 돌아올 수밖에 없다.
< Babel >은 이들의 그런 특장점이 잘 녹아나는 앨범이다. 이제 2집을 낸 밴드에게 이런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분명 그들은 현재 메인스트림 록 신에서 비슷하게 출발한 그 누구보다도 자기 음악세계를 확실하게 구축해 나가고 있다. 첫 싱글 커트 곡인 「Babel」부터가 그렇다. 민속 악기들로 그려내는 질주감은 다른 누군가의 음악으로 대체 가능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I will wait」도 마찬가지, 비감 가득한 가사를 그리 슬프지 않은 분위기로 바꾸며 명암을 교차시키는 그들의 묘한 능력을 엿볼 수 있다.
여기까지는 ‘내정되어 있던’ 칭찬이다. 밴드의 희소가치에 따라 언급될 수밖에 없는 장점인 것이다. 앨범의 완성도는 그러나, 그룹의 이런 독보적인 존재감에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인상이 짙다. 한 곡 한 곡 찬찬히 살폈을 때는 분명 블루그래스 안의 다양한 구성미를 엿볼 수 있지만, 앨범 전체를 들으며 트랙들을 감상했을 때는 하나같이 비슷한 곡으로 들린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주목할 곡은 많아도, 대번에 주의를 환기시킬 만한 킬링 트랙이 부재한다.
신보가 앨범차트에서 엄청난 강세를 보이는 와중에 싱글차트에서는 약세를 보이는 것 또한 이런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빌보드 싱글차트 기준으로 「Babel」은 최고 60위에 그치고 있고, 가장 높은 성적을 기록한 「I will wait」는 겨우 23위에서 멈추고 말았다. 인디 신에서 출발한 밴드로서 그 또한 괄목할 성과 아닌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 정도면 < Babel >이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는 물론 그 외의 기타 앨범 차트 7가지 부문에서 모조리 1위를 싹쓸이한 것과는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의 차이다.
국내에서는 무명한 미국의 음악웹진 ‘아메리칸송라이터’(www.americansongwriter.com)는 최근 이 음반을 리뷰하며 ‘It's not perfect, but it's perfectly Mumford & Sons.’라는 활자를 마지막에 박아 넣었다. 앨범을 설명하는 최고의 압축어라 생각한다. < Babel >은 멈포드 앤 선즈의 존재감은 확실히 입증한, 그러나 ‘그 감각에 촉이 살아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기는 ‘절반의 성공’과도 같은 앨범이다.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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