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에 고기와 김치를 먹을 수 없게 된 남자의 보통 이야기 - 『보통의 존재』
누군가와 속내를 나눌 수 있으리라 믿는 건, 그래서다.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국에는 보통의 존재로밖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삶을 특별히 아름답거나 비루한 것으로 포장하지 않는 그의 얘기는 정확히 나의 삶에도 통용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얘기도 털어놓고 싶어졌다. 마음이 들떴고, 가라앉아 있던 얘기들이 함께 둥실거렸다. 아직도 그 얘기들이 채 가라앉지 않는다…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속을 털어놓고 싶어졌다. 내가 그의 얘기에 귀 기울이듯 누군가 내 얘기에 관심을 가질 것만 같다. 친구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진지한 얘기를 좋아한다. 여러 사람이 왁자하게 웃고 떠드는 자리는 불편할 때가 많다. 딱 둘에서 넷 정도. 진지하게 사는 고민을 나누고 싶다. 내게 그런 자리는 학생회관 계단이기도 했고, 김광석 노래가 흘러나오던 호프집 ‘가인’이기도 했다. 동대문에서 심야영화를 보고 학교로 걸어오는 청계천이기도 했고, 벤치를 뜯어 불을 피운 민주광장 한가운데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활이 즐거웠다.
그런 자리를 가져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 나의 베스트들과는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 이젠 그런 얘길 잘 하지 않는다. 항상 반갑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는 순간엔 나의 결핍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홀로 TV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혼자 늦게까지 야근을 할 때. 조용히 나는 추억들을 떠올린다. 나는 자주 과거를 떠올리는 것 같다.
『보통의 존재』는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만난다면 아마도 친하게 지내지는 못할 저자는 책으로 만나니 내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공연 전 말 한 마디 못 붙이게 하고 호텔방의 온도와 습도까지 통제해야 하는 것은 직업적 특성이라 여기더라도, 여행을 가서도 집에서 쓰던 치약-비누-스킨… 심지어 베개까지 챙겨가야‘만’하는 스타일이 나와 친할 확률은 아마도 낮을 것이다. 나는 그의 습관을 인정하고 용인할 수는 있겠지만 약간의 껄끄러움을 느낄 확률이 높다. 나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이 편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무탈한 듯 편협하다.
하지만 담담하게 털어놓는 그의 얘기들은 조용히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항상 ‘끝’이라는 단어와 나란히 놓으면서도 여전히 사랑을 화두로 삼는 그. 가족에 대한 애정을 내비치면서도 엄마가 말만 걸면 짜증을 내는 그. 정신병원에 들어갔던 얘기와 이혼한 얘기, 어린 시절 성북동에서의 추억들, 공연을 준비하는 얘기와 컴퓨터를 사는 방법, 사랑과 친구와 인생에 대한 혼잣말들… 상처와 추억과 생활과 상념을 아우르는 얘기들을 담담히 털어놓는 그는 초면인 나의 경계심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나는 조용히 그의 얘기에 귀기울였다.
삶을 특별히 아름답거나 비루한 것으로 포장하지 않는 그의 얘기는 정확히 나의 삶에도 통용되는 것이었다. 나는 내 얘기도 털어놓고 싶어졌다. 마음이 들떴고, 가라앉아 있던 얘기들이 함께 둥실거렸다. 아직도 그 얘기들이 채 가라앉지 않는다.
보통의 존재. ‘보통’이라는 말을 ‘일반적인’, ‘평균적인’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사실 그는 전혀 보통이지 않을 것이다. 온 가족이 정신병력을 지니고 있고, 나이 마흔에 고기는 커녕 빵과 김치도 먹을 수 없게 된 그. 얼마 전까지는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는 그는 전혀 평균적이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그의 글 앞에서 모두 보통의 존재다. 삶에 대한 특별한 의미부여를 걷어내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관조한다면 그의 얘기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저마다의 환상과 저마다의 과장을 걷어낸다면, 우리는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와 속내를 나눌 수 있으리라 믿는 건, 그래서다.
‘보통의 존재’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일상의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적은 글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국에는 보통의 존재로 밖에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면서 현대인들을 위로한다. 사람이 아무리 뛰어난들 자연과 우주 속에서, 신 앞에서는 미약하고 보통의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보통의 존재가 쏟아내는 이야기들은 수많은 ‘보통의 존재’들에 공감이 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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