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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을 넘어선 예술적 가치, 그 경계에 선 영화들: <데미지> 무삭제 재개봉으로 살펴 본 영화와 검열

사랑에 죄가 있다고 감히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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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은 안나를 보자마자 그녀에게 빠져들고, 곧바로 그녀의 집을 찾아가 사랑을 나눈다. 안나는 스티븐 그리고 마틴과의 관계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각각 지속시켜 나간다. 그러던 중 마틴과 안나가 결혼 발표를 하게 되면서 스티븐과 안나의 금기된 사랑은 결국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된다…


1992년 루이 말 감독의 <데미지>는 아들의 연인과의 사랑이라는 파격적인 소재 때문에 폐륜 논란까지 낳고 2년간 국내에는 수입 금지되었었다. 루이 말 감독이 직접 내한하여, <데미지>의 작품에 대한 가치를 피력하여 긍정적인 여론을 불러일으킨 후에도 5분의 장면을 삭제하고, 뿌옇게 화면처리를 한 후에야 겨우 심의에 통과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봉 20주년을 맞이하여, 무삭제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제작된 <데미지> 완전판은 전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개봉되었다.

예술과 외설 사이의 경계라는 뻔하지만 풀기 어려운 논란 앞에서, 무삭제 버전을 보면 루이 말의 <데미지>가 가지고 있는 예술적 가치와 철학적 시선은 더욱 깊고 심오하게 느껴진다. ‘삶은 통제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스티븐(제레미 아이언스)에게 아들 마틴의 연인 안나(줄리엣 비노슈)는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이자 본능’이었다. 그리하여 스티븐은 안나를 보자마자 그녀에게 빠져들고, 곧바로 그녀의 집을 찾아가 사랑을 나눈다. 안나는 스티븐 그리고 마틴과의 관계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각각 지속시켜 나간다. 그러던 중 마틴과 안나가 결혼 발표를 하게 되면서 스티븐과 안나의 금기된 사랑은 결국 파국을 향해 치닫게 된다.


두 사람의 첫 번째 정사를 통해 루이 말 감독은 걷잡을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을 너무나 처연하고 묵도한다. 감독은 육체가 아니라 상처받은 인간 영혼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시대를 초월하는 이 영화의 가치를 높여주는 철학적인 감독의 시선은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전혀 녹슬지 않은 깊이로 드러난다. 중후한 중년의 매력을 발산하는 제레미 아이언스와 치명적인 매력을 간직한 줄리엣 비노슈, 조연 그 이상의 연기로 빛나는 미란다 리차드슨의 20년 전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도 더한다.


검열의 역사, 논란의 역사

영화에 대한 검열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한 행위였으나, 한국사회에서 태연하게 자행되던 일이기도 했다. 1965년 유현목 감독의 <춘몽>은 한국 영화사상 최초 베드신이 등장했고, 동시에 최초로 외설시비에 얽힌 영화였으며, 또한 최초로 음화제조의 사유로 감독이 유죄판결을 받게 된 작품이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소위 3S(Screen, Sports, Sex) 정책을 통해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도록 했는데, 사창가의 공공연한 묵인, 애마부인 류의 에로 영화, 그리고 프로야구가 뜨거웠던 시절이기도 했다. 마구잡이로 수입되어온 영화중에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보디 우먼> (원제 : 여자의 증명),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마타도르>도 있었는데, 에로영화로 둔갑하여 개봉하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베티 블루>


<크라잉 게임>

1988년 장 자끄 베네의 <베티 블루>는 프랑스 문화원과 소규모 아카이브를 통해 무삭제판에 대한 마니아를 양산했던 작품이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롱 테이크로 보여지는 베아트리체 달과 장-위그 앙글라드의 파격적인 정사장면은 파격 그 이상의 충격이었다. 정사가 끝난 후 시트로 몸을 가리고 일어난다거나, 교묘하게 성기를 가리는 행동이 비정상적이라는 듯, 사랑하는 영화 속 두 연인은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노출한다. 2000년에 무삭제판이 재개봉되었지만, 역시 성기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몇 장면은 뿌옇게 가려야만 했다.

1992년 닐 조던 감독의 <크라잉 게임>은 국내 개봉작 중 최초로 성기가 드러난 작품이었다. 영화의 맥락 상 잘라 내거나 가려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장면이라 어쩐 일로 심의위원들이 융통성을 발휘한 덕분에 우리는 그 충격적인 반전의 효과를 고스란히 극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크래쉬>


<감각의 제국>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었던 작품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크래쉬>였다. 국제영화제 출품작을 결국 검열하고야 만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고, 2분의 삭제와 화면 리터칭 이후에 일반 관객에게 공개되었다. 자동차 사고와 망가진 몸을 통해 섹스에 탐닉하는 섬뜩한 인간본성에 깊이 파고든 불온한 실험정신은 지금 봐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1976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은 아이러니 하게도 포르노가 유통되던 방식 그대로 비디오로 은밀하게 유통되었던 작품이다. 2000년 정식 극장 개봉이 되었으나, 제국주의에 대한 존재론적 비판의식을 담은 ‘포르노’적인 영상이 없는 <감각의 제국>은 이미 그 가치가 없었다.

검열위원들이 영화를 마구 잘라내던 심의제도가 관람등급제로 바뀌면서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듯 했으나, 여전히 심의에 통과하지 못한 작품들은 개봉이 불투명해진 상황이 벌어졌다. 이를 위한 대안으로 제한상영관에서 상영 가능한 제한상영등급이 만들어졌지만, 실제 제한상영관이 한 곳도 없어 사실상 상영금지 조치에 해당하는 등급이 되었다.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판정된 작품들은 카트린 브레야의 <로망스>, <팻걸>, <지옥의 체험>,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의 <천국의 전쟁>,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등이 있는데 모두 지적된 장면을 삭제 한 후 재심의를 통해 정식 개봉이라는 수순을 밟았다.


<숏버스>


<은교>

2006년 칸영화제 비경쟁부문에서 상영된 <숏버스>는 공개 당시부터 높은 성적 표현과 노출 수위로 단번에 논쟁에 휩싸였다. 국내에서도 이 논란은 그대로 이어져 2007년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영화의 수입사는 소송을 냈고 2008년 1월 대법원은 ‘제한상영가 등급분류는 위법’이란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수입사는 다시 등급분류 신청을 했고, 2월18일 드디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지만, 주요장면은 리터칭으로 모두 가린 채 개봉되었다. 최근 개봉된 작품 중 박찬욱의 <박쥐>, 정지우의 <은교>, 최위안의 <저녁의 게임>에는 남성 성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장면도 등장하지만, 김경묵 감독의 <줄탁동시>는 성기노출 등의 장면이 문제가 되어 제한상영 등급을 받았고 문제 장면을 삭제 및 모자이크 처리한 후 겨우 개봉할 수 있었는데 성기의 노출이 문제가 아니라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소재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자가당착>

마지막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말 다큐멘터리 < MB의 추억 >은 15세 관람가 등급으로 개봉된 반면,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풍자한 독립영화 <자가당착>이 제한상영등급을 받은 점은 주목해볼만한 일이다. 앞선 작품들이 모두 삭제 후 개봉의 수순을 겪은 후 김곡, 김선 감독의 단편영화 <자가당착>은 현재 국내에서 제한상영등급으로 분류돼 있는 유일한 영화다. 특정 장면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쳤다는 것이 제한상영 판정의 이유였다. 제작사는 이에 맞서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는데, 이미 <자가당착>은 34회 서울독립영화제(2008) 독불장군상 수상, 10회 전주국제영화제(2009) 한국단편 경쟁부문. 14회 인디포럼(2009) 포럼기획전 초청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임기말 대통령을 조롱하는 건 되고, 미래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안 된다는 것, 자기검열 속에서 살아온 기득권의 편향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참 정치적인 판단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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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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