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책은 언제나 내 편이었어
연애할 수 있는 인간의 자격 -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어라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는…
지금껏 어떤 책에서도 진실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인간의 자격에 대해서는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연애를 할 수 있는 자격이라니? 조금 생뚱맞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연애에 도대체 어떤 자격이 필요한 걸까 고민해본 적은 결단코 한 번도 없었으니까.
이렇게 태어났으니, 애써 홀로 고독하게 태어났으니, 알고 싶지 않습니까?
둘이 어떤 것인지.
-다자이 오사무 『사양』 중에서
진실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인간의 자격
-무라카미 류, 『사랑에 관한 달콤한 거짓말들』
문정희 시인은 젊음의 최상의 꽃이 바로 ‘연애’라고 말했다. 헛되고 헛된 유한(有限), 유일(唯一)의 삶 속에서 그래도 가장 가슴 뛰는 일이 연애라고 콕 집어 말했다. 세상에는 분명 선천적으로 연애를 잘하도록 태어난 사람이 있다. 그것은 바이올린이나 외국어, 바둑이나 수학을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듯이 일종의 타고난 재능일 것이다. 반면에 백날 연애 지침서를 들여다보고, 박사 학위를 써낼 만큼 이론에 빠삭해도 실전에는 백전백패하는 가련한 사람도 있다.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보는(더 정확하게는 이성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능력과 센스, 세련된 매너나 자신감 넘치는 성격, 섹시한 뒤태나 눈웃음 등이 연애 선수들의 조건인 걸까? 수많은 연애 지침서에는 이런 외형적인 조건들을 변화시키기를 제시함으로서 연애의 달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지금껏 어떤 책에서도 진실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인간의 자격에 대해서는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연애를 할 수 있는 자격이라니? 조금 생뚱맞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연애에 도대체 어떤 자격이 필요한 걸까 고민해본 적은 결단코 한 번도 없었으니까.
오랫동안 내가 꿈꾸는 사랑의 판타지는 모든 것을 함께하는 것이었다. 한 침대에서 일어나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외출을 하고, 함께 쇼핑을 하고 취미 생활을 공유하고. 함께 유학을 가고, 그렇게 삶의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나란히 한 길을 걷는 것.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미치도록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사랑이었고, 나는 늘 그런 사랑을 해왔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연애를 할 수 있는 자격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릴케의 말처럼 사랑은 그렇게 무턱대고 덤벼들어 하나됨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미완성인 내가 역시 미완성인 그와 무원칙적으로 하나가 된다 해서 그것이 곧 진실한 사랑을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카롤린 봉그랑의 소설 속의 한 구절처럼, 음수(-) 더하기 음수(-)는 여전히 음수일 뿐, 두 개의 고독이 합쳐진다 해서 하나의 행복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그와 내가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스스로가 온전히 행복한 사람으로 우뚝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작정 시간을 공유하며 표면적으로 둘이 하나처럼 보인다 해서 그것이 진정한 하나는 아닌 것이다.
앞서 말한 스캇 펙은 상대방에게 의존함으로서 행복에 이르려는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가장 잘못된 일을 하는 것이다. 차라리 헤로인에 의존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 약물은 항상 당신을 행복하게는 만들어줄 테니까. 그러나 타인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를 기대한다면 끊임없는 실망과 절망을 감당해야만 한다’고.
한 가지 분명한 일이 있다. 그것은 연애란 자립한 사람에게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립이라는 것은 정신적인 것이지만, 사실은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면 성립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돈 많은 노인이 여고생하고 사랑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관계는 결코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유희 같은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또는 한쪽이 자립하지 못한 사람들이 맺어지면, 반드시 어느 한쪽인가가 기대게 된다. 어느 쪽인가가 다른 쪽에 기대지 않으면 관계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 ||
당신이 말하는 것은 기생충의 생활이지 사랑이 아니에요. 당신의 생존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요구할 때, 당신은 그 사람에게 의존하여 기생하는 식객입니다. 거기에는 선택도 자유도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이기보다는 오히려 필요성 때문이지요. 사랑이란 선택의 자유로운 실행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서로가 없어도 잘 살 수 있지만 더 잘 살기 위해 상대방과 함께 살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 ||
해와 달이 혹은 바다와 육지가 서로 접근할 수 없듯, 서로 접근하지 않는 게 우리의 과업이야. 우리 두 사람은 말하자면 해와 달이며, 바다와 육지란 말이지. 우리의 목표는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인식하고, 서로를 통찰하고 존경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상반되는 것이 무엇이며, 서로 보완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이지. | ||
사랑은 눈이 멀게 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사랑만큼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눈이 멀게 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 ||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요구가 없고, 기대가 없으며, 의존이 없습니다. 나를 행복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내 행복이 너에게 있지 않습니다. | ||
당신의 행복이 외부의 어떤 것이나 사람으로부터 오거나 그것들에 의해 유지되는 한, 당신은 여전히 죽음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 ||
관련태그: 무라카미 류, 앤소니 드 멜로, 사랑, 연애
천 권의 책에 인생의 길을 물었던 김애리. 그녀는 거창한 결심을 이루기 위해서라기보다, 견디기 위해 책을 읽었다. 우울증에 시달릴 만큼 예민하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에서 안정된 생활을 쫓던 그녀에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이놈의 ‘삶’을 견디는 일은 다 커서 젓가락질을 다시 배우는 일마냥 멋쩍고 창피했다. 이토록 소심한 여자가 청춘을 견디고, 서른을 견디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 독서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며불며 책을 읽었고, 사랑 역시 책으로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이 되기 전에 천 권의 책을 읽었다. 청춘이라는 악몽 같은 시간을 오직 책으로 버텨낸 그녀의 열정은 2009년 겨울 서정문학상에 단편소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이 당선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으며 이후 『책에 미친 청춘』, 『십대, 책에서 길을 묻다』, 『아까운 책 2012』(공저) 등을 펴냈다. 현재 언론진흥재단, 김영사 웹진 등에 칼럼을 연재하며 독서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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