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곁에서 우정을 쌓고 지낼 줄 알았던 친구가 느닷없이 사라져버렸다.
장희빈의 탕약이 그와 ‘밥 한 끼’ 못 먹은 비애감과 같을까.
해마다 이별한 날이 돌아오면 ‘밥’ 생각이 난다.
밥 한 끼 먹여 보내야 했는데!
그가 떠났다. 나는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저 “밥 한 끼 먹자”는 소리가 이별을 고하는 소리인지 몰랐다. ㅇ은 한국을 떠나는 자신의 선택을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가 떠났다는 소리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평생 곁에서 우정을 쌓고 지낼 줄 알았던 친구가 느닷없이 사라져버렸다. 장희빈의 탕약이 그와 ‘밥 한 끼’ 못 먹은 비애감과 같을까. 그는 차가운 껍질을 벗기고 나면 따스한 감촉을 선물하는 멍게와도 같다. 차가운 머리, 따스한 심장을 가진 이다. 나 같은 사람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인간성을 가진 그! 인생의 고비 때마다 그의 선택은 언제나 놀라웠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그는 결혼할 때 아내와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아내가 언젠가 자신의 일에 매진해야 할 때가 오면 자신이 가정살림을 하고, 아이들을 키워주기로. 그때가 오고 만 것이다. 그는 그럴싸한 회사를 그만두었다. 친구들은 ㅇ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아내는 싱가포르에서 일을 시작했다.
벌써 두 해 전 일이다. 들리는 소식에 그는 캐나다로 옮겼고 아내는 그곳에서 대학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아이들을 돌보면서 MBA 과정을 마쳤고 새로운 일을 구상 중이란다.
해마다 그와 이별한 날이 돌아오면 ‘밥’ 생각이 난다. 밥 한 끼 먹여 보내야 했는데! 거창한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온갖 기교로 포장한 섬세한 ‘밥’, 밥 사이에 틈을 만들어 부드러움을 더하고 큰 생선조각을 얹은 초밥장인의 ‘밥’이 아니다. 돈만 있으면 선물할 수 있는 ‘밥’은 안 된다.
성북구의 작은 암자에 있는 비구니 스님의 사찰음식이라면 모를까. 집된장으로 무친 나물은 신혼집의 안방처럼 고소한 향을 내고, 배와 갯나물을 함께 버무린 무침은 알싸하니 봄날 낭만을 안겨주는 음식.
사찰음식이 ‘핫(hot)한 요리 아이템’으로 떠오른 지는 꽤 되었다. 그런데도 인기는 사그라질 줄 모른다. 당연하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담백한 사찰음식은 빛을 뿜는다. 사찰음식으로 유명한 스님들은 스타 못지않게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이런 스님들의 활약상은 대단하다. 하지만 암자의 ㅎ스님은 나서기를 싫어한다. 공양간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불자들이 한마디씩 한다.
“스님 솜씨가 너무 아깝습니다. 책도 내고 방송도 하세요.”
그는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ㅇ과 닮았다. 그분의 맛을 ㅇ에게 선물하고 싶다. ㅎ스님의 손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작은 그릇에 담긴 반찬들과 밥을 남김없이 비웠다. 제사상이라고 받아본 적 없는 귀신마냥 게걸스럽게 말이다. 스님은 세속에 몸도 마음도 허기진 나를 애처롭게 바라봤었다. 스님의 시선 따위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담백한 맛이 온몸을 거머쥐고 흔들었다.
우리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 사찰음식이다. 오신채(파, 마늘, 달래, 부추, 흥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상식이다. 양념은 주로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낸다. 짠맛은 장으로, 단맛은 꿀이나 홍시로 낸다. 그저 소박하기만 할 것 같은 사찰음식도 엄청난 전성기가 있었다. 불교가 흥했던 고려시대 중반에는 임금도 고기를 먹지 않았다. 사찰음식은 일반음식보다 더 화려했다. 사찰마다 소문난 맛 솜씨가 있다. 지리산 대원사는 초피잎장아찌와 머위장아찌, 문경 김룡사는 가죽장아찌 등.
그가 돌아올까? 그가 돌아오면 그와 그의 아내를 차에 태워 전국 사찰음식을 여행해 볼 생각이다. 우리 가족도 함께. 하지만 손에서 떨어뜨린 공을 다시 잡을 수 있던가, 떠나보낸 첫사랑을 다시 찾을 있던가, 쏟아버린 밥을 주워 담을 수 있던가, 우리 모두 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결국 ‘지금’을 꼭 부여잡고 놓치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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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 있는 식탁 박미향 저 | 글담
이 책은 누구보다 많은 음식을 맛보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본 ‘맛 기자’의 특별한 에세이다. 『인생이 있는 식탁』이라는 제목은 이 책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오랜 시간 수많은 맛집을 순례하며 다양한 음식을 맛본 저자는 편안한 친구와 한바탕 수다를 떨듯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눈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야기 속에는 맛있는 음식들만큼이나 다양한 저자의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그들과의 추억담을 풀어놓으며 음식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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