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항 뜨면 나오는 검은 피는 모두 더러울까?
한의원이 알려주지 않는 몇 가지 사실 - 2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한의학』의 미덕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추상적인 한의학용어와 개념들을 알기 쉽게 풀어쓴 것이다. 한의학의 기본 원리, 한의원에서 처방해주는 치료법, 한약재가 몸의 기를 되살리는 원리 등 한의학에 대한 궁금증을 A부터 Z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담백하고 보기 좋은 일러스트는 글의 이해를 더욱 쉽게 한다.
Q. 진맥을 하고 어디가 안 좋다고 하는데 믿을 만한가요?
A.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믿을 만합니다. 우리가 흔히 진맥이라고 하는 행위는 의사의 진단 과정에 있어서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진맥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묻고, 손으로 만지는 진단 행위―이것을 망문문절(望聞問切)이라고 표현합니다―에서 손으로 만져서 아는 진단 행위의 일부입니다. 환자의 상태를 눈으로 살피고, 체취나 분비물의 냄새를 맡고, 귀로 음성이나 병증에 따라 나타나는 소리를 듣고, 환자와 함께 묻고 답하는 행위를 하며, 손으로 맥의 박동을 살핍니다. 진단은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여러 반응들을 종합해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지요. 의사는 환자를 통해 얻은 정보를 오랜 시간 축적된 데이터베이스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진단을 내립니다. 여러 매체에서 진맥을 신비한 것으로 다루면서 도리어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뜸을 뜨면 화상을 입기도 하는데 괜찮은 건가요?
A. 가능한 화상을 입지 않게 뜨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뜸을 뜨는 혈자리는 경락을 조절하는 자리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외부의 기운과 소통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의학에서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심한 화상을 입어 혈자리의 피부상태가 변화하면 그 자리는 본래 역할을 100%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득보다 실이 많게 되는 것이지요. 다만 그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중한 병을 고치고자 할 때는 화상을 입을 정도로 강하게 치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화상을 입지 않는 범위에서 뜨는 것이 좋습니다.
Q. 정형외과에서 받는 물리치료와 한의원에서 받는 물리치료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양측의 물리치료에 차이는 없습니다. 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서양의학에서도 처음에는 물리치료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병원에서 할 일이 아니라면서요. 하지만 물리치료를 하는 병원에 대한 환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지자 점차 제도권 의학도 수용하게 되었지요. 그리고 한의학의 역사에도 안마와 같은 치료법이 있었고 도구를 이용한 치료법들도 존재했습니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물리치료 기계들이 선보이고 있는데, 이것 자체에 한방 혹은 양방의 성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자신의 의학적 관점에 맞고 필요하다면 가져다 쓸 뿐이지요.
Q. 부항을 뜨면 검은 피가 나오고 이 피를 더러운 피라고들 하는데요, 이게 정말인가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몸에 나쁜 피나 더러운 피는 없습니다. 다만 타박상 같은 실질적인 외상으로 멍이 든 경우나 혈액의 순환이 정체된 것(정체가 심할수록 그 색이 어두울 수는 있습니다)은 있습니다. 이런 것을 한의학에서는 어혈(瘀血)이라고 표현하지요. 피를 뽑아내는 부항은 이런 어혈의 상태를 풀어내거나 침이나 뜸처럼 특정 경혈을 자극해서 치료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효과가 강한 만큼 우리 몸에 주는 부담도 크므로 가능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Q. 침이나 부항, 뜸 같은 치료는 체질에 관계없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건가요?
A. 네. 말씀하신 치료는 누구나 받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러한 치료의 경우 내 몸의 상태가 불안정할 때는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의서에서는 술에 취했을 때, 크게 화가 났을 때, 일을 과하게 했을 때, 지나치게 배가 부르거나 고프고 목이 마를 때는 침을 놓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한 감정이 불안정할 때는 편안해진 후에, 마차를 타고 온 사람은 누워서 잠시 쉬게 한 후에 침을 놓으라고 했지요. 이외에도 천둥번개가 심하게 치는 등 기후가 매우 불안정할 때도 삼가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항을 지킨다면 침, 부항, 뜸은 누구나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사람마다 침을 놓는 자리가 다 똑같나요?
A. 한의학에서 침을 놓는 방식이나 원칙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증상으로 한의원에 가도 침을 맞는 자리가 다를 수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시소의 한쪽이 내려갔을 때, 균형을 잡기 위해 내려간 쪽을 올릴 수도 있지만 반대쪽을 내릴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또한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혈자리가 여러 곳이 있고, 치료를 받는 환자의 상태가 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시술자마다 혹은 같은 시술자라도 치료 경과에 따라 침을 놓는 자리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Q. 한의원에서는 어떤 식으로 사람의 건강을 검사하나요?
A. 기본적으로 앞서 진맥 부분에서 이야기한 망문문절의 4가지 방식을 기본으로 해서 진단합니다. 그 외에 최근에는 사람의 몸과 정신의 기능적 상태를 검사할 수 있는 진단기들이 있는데 그러한 장비를 필요에 따라 이용하기도 합니다. 혈액이나 소변 검사의 결과를 참고하기도 하고, 엑스레이나 CT 같은 방사선 촬영을 진단하는 데 참고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방법들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는 의사 개인에 따라 다릅니다. 전통적인 방식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고수하는 한의사가 있는가 하면 새로운 장비들이나 서양의학의 진단 결과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한의사도 있습니다.
Q. 요즘은 한방종합병원도 많이 늘어났는데요. 그런 병원을 보면 진료과가 나뉘어 있던데 한방에서도 그렇게 진료과를 나눌 수가 있나요?
A. 질병군에 따라 진료 과목을 나누는 것은 한방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한의학의 역사를 봐도 부인과나 외과, 소아과 등 특정 영역의 환자를 잘 치료한 의사들이 존재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전문의인 셈이지요. 서양의학의 분과에 맞추어 과를 나눈 것은 전체를 다 같이 본다는 한의학의 관점과는 약간 다르지만, 그 운용의 묘를 살린다면 한방병원의 분과제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Q. 아플 때, 이 증상을 고치러 한의원을 가도 되는지 잘 판단이 안 되는데요, 예를 들어 감기, 골절, 암 같은 것들로 아플 때 한의원을 가도 되나요?
A. 제 생각에는 동네 의원 그러니까 내과나 이비인후과 그리고 소아과나 가정의학과에서 진료하는 질환은 한의원에 가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더 효과가 더 좋은지는 병의 종류나 환자의 상태에 따라 변수가 크므로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 기준이 애매하다 싶은 분들은 자신의 병이 수술을 할 수도 있는지 아닌지로 판단하면 조금 간단해질 것입니다. 뇌졸중이나 심장마비처럼 생명유지를 위한 빠른 조치가 필요한 경우 그리고 외과적인 수술이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한의원에 가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잘 아는 주치의가 필요하겠지요.
Q. 한의원도 의료보험 처리가 되나요? 된다면 어느 정도 범위까지 가능한가요?
A. 일반적으로 한의원에서 받는 치료인 침, 뜸, 부항 그리고 상담요법이나 일부 물리치료 같은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적 처치는 의료보험이 보장합니다. 하지만 그밖에 이루어지는 치료의 경우에는 ‘비급여’라고 해서 환자 개인이 부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방제약회사에서 의료보험용으로 나오는 산제(가루약)의 경우에도 보험이 적용됩니다. 이에 반해 한의원에서 다려주는 탕약은 아직 의료보험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통사고나 운동 중 당한 부상처럼 몸을 다쳐서 치료 목적으로 탕약을 복용할 때는 계약조건에 따라 자동차보험과 상해보험 같은 사보험에서 보장해주기도 합니다.
Q. 한의학에는 수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건가요?
A.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는 수술을 했지요.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참 많은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수많은 부상자들이 나왔을 것이고, 그중에는 외과적인 수술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을 누가 치료했을까요? 당연히 당시의 의사들이 치료했을 것이고 그들은 한의사였겠지요. 기록을 봐도 화타나 유부처럼 수술에 능한 의사들이 등장하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침을 이용해서 수술 시 마취를 대신하거나 약의 사용을 줄이는 시도는 있지만 한의사가 실제 수술을 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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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한의학, 부항, 침, 한의원,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한의학
‘진정한 성공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으로 시작하는 에머슨의 시 [무엇이 성공인가]를 읽으면서 하루를 여는 한의사. 병이란 내가 살아온 삶의 결과물이며, 때문에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과 생활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료의 모토는 ‘You can do it, I can help’.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내 아이가 나보다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생활한의학’을 주제 삼아 [프레시안]에서 키워드 가이드로 활동 중이며, 잡지 『큰 글씨 좋은생각』에 ‘건강보감’을 『라이브러리&리브로』에 ‘책 읽는 의사의 북클리닉’을 연재했다.
저서로는 『텃밭 속에 숨은 약초』가 있으며, 역서로는 『간디, 장수의 비결을 말하다』 『공부를 하려면 건강부터 챙겨라』 『건강하게 오래오래』(이하 e-book) 등이 있다. 현재 ‘문화가 있는 건강사랑방’을 꿈꾸며 명륜동에 다연한의원 개원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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