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고 산뜻한 산미가 느껴지는 고등어초절임회>
내가 자신하는 요리 중에 하나가 고등어초절임이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요리로 그들 말로는 ‘시메사바’라고 한다. 싱싱한 고등어를 소금과 식초에 절여서 먹는다. 쉽게 부패하는 고등어의 특성을 고려해서 보존성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졌다.
몇 해 전 삼성동의 ‘남가스시’에서 맛을 본 후 그 독특한 맛에 매료되고 말았다. 남가스시의 남춘화 선생이 지은 요리책에서 레시피까지 터득한 이후에는 직접 만들어서 먹는 단계까지 진화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웬만한 이자카야나 초밥집의 고등어초절임은 성에 차지 않는다. 하긴 공장에서 만든 제품을 가져다가 썰어서 내기만 하는 고등어초절임이 정성을 다해서 만든 수작요리를 뛰어 넘는다는 게 비정상이긴 하다.
직접 만든 고등어초절임을 블로그에 올리자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인다. 비록 짧은 댓글이지만 칭찬도 보인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맛을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시각적으로 먹음직스러워도 직접 맛을 보면 ‘아니올시다’인 경우가 허다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과연 내가 만든 고등어초절임은 어떤 맛일까? 내 입에 맞는다고 다수의 미각도 만족시킬 수 있을까? 그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분을 모시고 검증을 받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미식쇼의 주제는 고등어초절임이 된 셈이다.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지고 있다>
고등어초절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3시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몇 가지만 주의하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다. 첫째는 가을 고등어여야 한다. 이 시기의 고등어는 지방이 풍부하게 올라, 부드럽게 녹는 농후함과 고기 씹는 듯한 식감이 절대적이다. 그리고 고등어를 절일 때 사용했던 소금과 식촛물은 재활용을 하지 말아야 한다. 공장이나 업소의 고등어초절임이 다소 비린 건 이 소금과 식촛물을 재활용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생강이나 양파, 쪽파가 적절하게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고등어의 비린내는 잡고 풍미는 살릴 수 있다. 그리고 이왕이면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자.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맛객의 고등어초절임이 완성된다.
미식쇼에서 선보일 고등어초절임은 기존의 경험과 노하우에 특별히 더 신경을 썼다. 미식쇼 전날 완성해서 하루 동안 더 숙성시켰다. 갓 만들어진 고등어초절임이 붉은빛이 돌아 시각적으로 더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경험상 냉장고에서 하룻밤을 재우고 난 고등어초절임이 더 안정적이고 깊은 맛이 났다.
본격적인 미식쇼에 앞서 먼저 고등어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고 넘어가자. 아무리 조리법이 완벽하다고 해도 재료가 지닌 특성을 모른다면 혼이 빠진 요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특성을 파악하고 있다면 레시피는 그리 중요하지 않기도 하다.
고등어는 예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식용물고기이다. 실제 내 어린 시절 밥상에는 고등어가 오르지 않은 날이 없었다. 바닷가로 시집간 누나가 자주 보내준 탓도 있지만 값도 싸고 어획량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맛과 영양까지 겸비했으니 우리들의 사랑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 없는 생선이다.
<한국인이 즐겨먹는 고등어>
고등어는 우리 연근해에서 연중 잡힌다. 하지만 어획량이 많고 지방도 풍부해지는 철은 가을이다. 즉 이미 말한 대로 가을 고등어가 가장 맛이 좋다는 얘기이다. 고등어는 먹이를 찾아 북상하다가 9~10월 산란철이 되면 남하한다. 이 시기의 고등어는 지방함유량이 높아 맛도 좋다. 그렇다고 지방이 최절정 상태는 아니다. 지방함유량만 놓고 보자면 8월 고등어가 더 높다. 문제는 지방이 지나치게 많다보니 맛은 오히려 반감된다는 사실이다. 반면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 사이의 고등어는 지방이 일부 빠져 미각의 환대를 받는다.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동안 내 주변사람들하고만 먹었던 고등어초절임이 대중을 상대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미식쇼 공지를 내보내자마자 신청이 몰렸다. 그만큼 고등어초절임에 관심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어쨌거나 일은 저질러졌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드디어 블로그에서 보던 그 고등어초절임회를 맛보는 순간. 이날 고등어초절임회를 처음 접한다는 분도 다수 있었다. 난생 처음 맛보는 미지의 맛은 어땠을까?
<고등어초절임을 써는 맛객>
고등어초절임회 접시를 내려놓자마자 순식간에 빈 접시가 되고 만다. 이때부터는 열심히 썰고 또 썰었다. 내 경험에 비춰 회 한 접시면 못해도 30분은 갈 거라는 생각은 보기 좋게 오판이었다. 몇몇 분들은 낯선 음식이었을 텐데 정말 거부감 없이 잘 먹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맛있는 안주에 술병도 늘어가자 어색했던 처음의 분위기는 어디로 가고 어느새 대화의 꽃이 피기 시작한다. 그때서야 나도 겨우 숨 돌릴 틈이 생긴다.
이번에는 고등어초절임을 불에 살짝 구워서 냈다. 고등어초절임회는 시원하고 산뜻한 산미와 뱃살의 농후함, 등살의 식감을 느낀다. 불에 구운 고등어초절임은 불이 스며든 지방의 풍미와 함께 구이와 회 두 가지 맛이 느껴진다. 고등어초절임은 회 자체로도 좋지만 초밥으로 먹으면 맛이 배가 된다.
<고등어초절임초밥>
정신 차릴 틈 없이 2시간이 흘렀다. 돌아가는 사람들 표정에 만족감이 엿보인다. 정성껏 준비한 보람은 그들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족하다. 마지막까지 남은 몇 사람과는 인근에 있는 선술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건배하는 막걸리잔 아래에는 파전이 놓여 있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고독이 스며들만 하건만 우리들 마음은 그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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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객 미식쇼 김용철 저,사진 | 엠비씨씨앤아이
예약 대기자 1000여 명, 맛객 미식쇼! 이 생경한 이름의 쇼는 무엇이길래 이렇게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지 궁금증이 일 것이다. '맛객 미식쇼'는 한 달에 두 세 번, 맛객 김용철이 제철 자연에서 찾은 재료들로 소소하지만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다. 『맛객 미식쇼』에는 그의 요리 철학과 미식 담론이 담겨있다. 사람들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주는 맛, 인생에서 찾은 맛을 나누며 행복을 느낀다고 믿는다. 그래서 맛객의 요리를 접한 사람들은, 맛은 몰론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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