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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주먹다짐’보다 그녀들의 ‘뒷말’이 더 무서운 이유? - 『소녀들의 심리학』

그들은 어떻게 친구가 되고 왜 등을 돌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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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의 심리학』은 따돌림에 희생된 소녀들을 다루지 않는다. 따돌리는 소녀들에게 왜 그랬는지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그 소녀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어쩌다 그 소녀들이 그렇게 됐는지, 소녀들의 적대감이 소녀들이 여자로 성장한 이후에도 어떻게 관계가 생성되는지에 대해 감정을 배제하고 정교하고 차분하게 접근한 이 책은 지금 실제로 십대인 소녀뿐만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악마 같은 소녀가 살아 날뛰는 여자들 모두가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여자들끼리 잘 지내기는 언뜻 쉬워 보이지만, 어렵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오랜 격언은 자매애를 말하려 할 때마다 뛰쳐나와 판을 깬다. 결국, ‘자매애’라는 것도 자매가 될 만한 사람, 핏줄은 아니더라도 한 핏줄이 될 만한 자질을 가진 여자끼리 자매애가 발동하는 것이다.

내가 이상적인 자매애라고 늘 존경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겨레에 계셨던 김선주 선생님과 가수 양희은씨, 한의사 이유명호 선생님과 고은광순 선생님, 올레길로 유명한 서명숙 선생님, 전 씨네21 편집장을 지냈던 서울문화재단 조선희 대표, 역시 한겨레에 계셨던 최보은 선생님 등을 들 수 있는데 생각해 보면 이들이 자매애를 그렇게 끈끈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여자들이 특별한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뭐랄까, 흔한 일에 샘내고 서로 사는 것 비교하고 자식들 성적 비교하고 살림 질투하고 이런 여자들이었다면 그런 특별한 자매애를 나눌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자매애가 특별한 것은 이들이 특별한 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별난 여자들이었기 때문에, DNA가 비슷했기 때문에 이들은 자매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여자들은 틀림없이 『소녀들의 심리학』에 나오는 여자들이 적대하는 그런 소녀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저마다 그런 소녀시절을 이겨내고 서로를 찾아낸 것이다. 자매애는 그래서 귀하다.

왕따를 당해 본 여자라면, 『소녀들의 심리학』은 일독의 가치가 있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 소녀들끼리의 알력도 상당하지만 이 계집애들은 이 소녀들이 어른이 된 다음에도 마음 속에서 도무지 죽지를 않는다. 그래서 여자들끼리 몰려다니며 치사한 짓을 할 때 남자들이 여고생이냐며 비웃는 것이다. 여자들끼리 있는 집단에서 사랑 받으려면, 남자에게 사랑 받기보다 어렵다.

남자에게 사랑 받으려면 그냥 예쁘고 잘 웃어주면 그만이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남자는 그걸로 일단 땡이다. 한예슬이 “어빠~”하고 애교 부리는 동영상에 강호동이 완전히 용해되어 버리는 것처럼, 남자는 여자보다 쉽다. 그러나 여자 비위 맞추기는 좀 과장하자면 그보다 백 배는 어렵다. 예쁘되 섹시해서는 안 된다. 남자들은 화장을 떡칠을 하건 성형을 백 번을 했건 예쁘면 장땡이지만 여자들 사이에서 인정받으려면 존슨즈 베이비 로션만 바른 쌩얼도 예뻐야 하고, 다이알 비누로 머리를 감아도 전지현 못지않게 찰랑거리는 머리칼을 지녀야 한다. 다이어트 같은 걸 절대 하지 않고 팍팍 먹어도 살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야 동경 받는다. 그러면서도 자신 같지 않은 친구들의 장점을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아냐, 난 그래도 엉덩이가 처졌어. 난 사실 옆구리에 살터짐이 엄청나. 나 치아 교정한 거야. 넌 정말 애플 힙이구나. 이런 식으로 정치를 잘하지 못하면, 여자들 사이에서 사는 건 지옥이 된다. 예쁘되 예쁜 척 하지 않아야 하고, 착하되 착한 척하지 않아야 한다.

남자들은 열 받는 일이 있으면 주먹다짐으로 해결하지만, 여자들은 열 받게 하는 여자에 대해 뒷말을 한다. 그걸 두고 남자들은 여자들이 원래 말이 많다며 여자를 저열한 존재로 만드는 근거로 사용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주먹질보다 자연적, 유전적으로 이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정교한 전략이다. 주로 그 뒷말은 그 여자가 ‘걸레’라고,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식으로 흘러가는데, 이런 방식으로 이 여자가 좋은 엄마나 아내가 될 자질이 없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공식 확인된 사실로 만드는 행위다. 즉, 적이 짝짓기에 성공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대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몇 대 때리고 꼬집어서 멍자국 좀 남기느니 이것이 훨씬 더 어마어마한 복수다!

『소녀들의 심리학』은 따돌림에 희생된 소녀들을 다루지 않는다. 따돌리는 소녀들에게 왜 그랬는지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그 소녀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어쩌다 그 소녀들이 그렇게 됐는지, 소녀들의 적대감이 소녀들이 여자로 성장한 이후에도 어떻게 관계가 생성되는지에 대해 감정을 배제하고 정교하고 차분하게 접근한 이 책은 지금 실제로 십대인 소녀뿐만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악마 같은 소녀가 살아 날뛰는 여자들 모두가 읽어 볼 만한 책이다. 특히 왕따를 당해 본 여자라면 두 번 읽어 볼 만하다.

나는 늘 <하나와 앨리스>처럼 소녀들에 대한 일방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판타지로 가득한 영화가 불편했다. 사실 소녀들은 악마다. 우리 모두 그렇듯이. 그리고 특히 소녀들은 악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착한 소녀’의 신화를 깨부수는 첫 번째 작업이다. 그 후에야 우리는 아주 특별한 자매애를, 저 특별한 여자들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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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의 심리학 레이철 시먼스 저/정연희 역 | 양철북
소녀들은 경쟁심ㆍ질투ㆍ분노 같은 욕구와 욕망을 억제하고 억압받는 문화에서 성장한다. 그 문화를 규정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착한 소녀'이다. 여자 축구 선수가 나오고 여자 우주비행사가 나오는 시대에도 여전히 '착한 소녀' 이데올로기는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여자는 착해야 하고, 그래서 쉽게 욕망이나 욕구를 드러내서는 안 되며, 드러내더라도 티 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분출구를 잃은 소녀들의 분노는 가까운 친구들을 은밀하게 공격하는 형태로 왜곡되어 나타나며, 소년들의 몸에 남는 상처보다 마음에 깊고 오래가는 상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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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현진(칼럼니스트)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네 멋대로 해라』, 『뜨겁게 안녕』,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불량 소녀 백서』 등을 썼다.

소녀들의 심리학

<레이철 시먼스> 저/<정연희> 역16,200원(10% + 5%)

따돌림에 관한 소녀들의 심리를 깊게 파헤친 최초의 책! 경쟁심·질투·분노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억누르지 말고 드러내라. 사회가 강요하는 내 안의 ‘착한 소녀’를 버려라. 싸우고 따돌림으로써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은 소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소녀들 또한 은밀한 형태로 경쟁심·질투·분노를 드러낸다는 것은 공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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