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미녀정신과의사의 소곤소곤
미인의 조건
“예쁜 게 좋구나, 무조건 예뻐야 해.”
사람들은 대체 왜 이렇게 미인을 좋아하고 또 잘해주는 걸까? 매스컴의 영향으로 만연한 현대의 외모지상주의 때문일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도나 기준의 차이만 있지 인간은 언제나 그래왔던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더 오래 가고 소중하지만, 그건 정말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인류가 살아온 이래,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가늠하고 알아내려고 뚫어지게 애쓰다 보니, 보기좋은 것을 보면 일단 즐겁고 행복해지게 된 것 아닐까.
“...자, 이제 미녀를 보여주세요...”
내 트위터 멘션창에 지치지도 않고 한번씩 등장하는 농담 겸 진담이다. 처음엔 발끈해서 “어, 저 진짜 예쁜데 모르시겠어요?”라고 항변하기도 했지만, 상황이 거듭되면서 “사실 제 닉네임 자체가 거대한 농담입니다.”라고 살짝 물러서는 것이 더 편해졌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이 우주엔 ‘절대적인 진짜 미인’이라는 존재가 따로 있는 걸까. 미녀라고 불리려면 어떤 특별한 조건이나 자격이 필요한 걸까, 라고.
‘예뻐지고 싶어!’라는 바람과 ‘이왕이면 관심을 끌자’라는 명랑한 기분으로 만든 닉네임으로 트위터에서 활동한 지 1년. 그동안 느낀 점은, 예상은 했지만 사람들은 미인이란 존재에 정말 관심이 많구나, 라는 것이었다. 그저 농담 잘 하는 동양여자처럼 생겼을 뿐인 나를 두고도 예쁘다, 아니다, 미녀다, 아니다, 자신있어 좋다, 자기 입으로 미녀라니 뻔뻔하다, 등등 수많은 말들이 오갔으니 말이다.
내가 미녀의 사회적 가치를 깨달은 것은 인턴 수련을 받던 때였다.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좀비처럼 콜을 받던 그 시절, 여자라고 특별 대우받거나 열외 되고 싶지 않단 마음으로 버티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병원복도에서 두 달 전 내가 가장 힘들게 돌았던 정형외과를 돌고 있는 하늘이(여리여리 곱고 김하늘을 닮았던 그녀)를 만나, “힘들지?”라고 위로차 물어보았다. 의외로 그녀, 화사하게 웃으며 그럭저럭 지낼만 하다는 것이었다. 가만보니 세시간 수면이 기본인 인턴 주제에 피부도 보송보송하고 가벼운 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진상인즉슨 나머지 세 명의 남자인턴들이 연약한 그녀가 불면 날아갈까 걱정되어 주말 당직을 흔쾌히 대신 서주었던 거였다. 우와왕. 거의 생존이 달려 있던 인턴 당직 스케쥴을 자발적으로 바꾸어주다니, 미녀의 파워란 이런 것이구나. 그렇다면 나는 그동안 대체 얼마나 신산한 삶을 살아온 걸까. 생각이 이쯤 이르자 내 입에서는 친절한 금자씨의 대사가 방언처럼 튀어나왔다. “예쁜 게 좋구나, 무조건 예뻐야 해.”
사람들은 대체 왜 이렇게 미인을 좋아하고 또 잘해주는 걸까? 매스컴의 영향으로 만연한 현대의 외모지상주의 때문일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정도나 기준의 차이만 있지 인간은 언제나 그래왔던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더 오래 가고 소중하지만, 그건 정말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말이다. 인류가 살아온 이래,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가늠하고 알아내려고 뚫어지게 애쓰다 보니, 보기좋은 것을 보면 일단 즐겁고 행복해지게 된 것 아닐까.
이렇게 역으로 생각해보면, 외모란-늘 맞는다고 할 순 없지만-그 사람의 내면이나 성향을 판단하고 상상하게 해주는 일종의 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인이란 어떤 기준에 맞는 미모를 갖춘 사람이라기보다는 보는 이로 하여금 사랑스럽거나, 설레거나, 매혹되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무의식적 기대감을 주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우리는 심미적이고 감각적인 본능으로 미인을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지만, 그 밑바닥에는 ‘저런 외모라면 이러이러한 느낌의 사람이고 내가 원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을지 몰라’라는 기대감이 깔려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미녀의 절대적 기준을 교란 및 확장하여 은근슬쩍 끼어들어가려는 흑심도 약간 섞인 가설이다. 하지만 이 가설을 통해서라면 왜 누군가는 도도한 냉미녀를, 누군가는 잘 웃는 친근한 여동생 같은 타입을, 누군가는 단아한 전통미인을 예쁘다 생각하며 좋아하는지 설명된다.
“...(전략)…지금은 호시절이고 모두 영웅호걸 절세가인이며 우리는 꽃보다 아름답게 만나게 됐다. 의심하지 말자.” (김연수 산문집 『지지 않는다는 말』 90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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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한, 밝고 다정한 정신과의사 안주연입니다. 우울증과 불안증, 중독을 주로 보고 삶, 사랑, 가족에 관심이 많아요. 책읽기와 글쓰기, 고양이와 듀공을 좋아합니다. http://twitter.com/mind_ma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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