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때론 맘, 때론 쌤, 그리고 나
사랑 받고 싶다…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엄마도 사랑에 목마르다 맘과 쌤, 그리고 나로 산다는 것
“사랑! 사랑하고 싶었다. 다시 가슴 뛰게 살아 있음을 느낄 정도로 사랑하고 싶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딸아이들을, 남편을, 또 내가 만나는 많은 아이들을, 아직 만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을 가슴 절절하게 사랑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길로 인도하옵소서.
-J.코르작
여행 5일째! 영국의 장엄한 역사적 유물을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며 말로만 듣던 그 테제베(프랑스의 고속 철도)를 타고 프랑스로 넘어왔다. 그러나, 오늘 나는 낭만적인 광경은 뒤로한 채 딸아이와 기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다녀야 했다.
어젯밤 훈계 아닌 훈계를 하고나서-친밀함과 버릇없음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구별해야 할 것 아니겠냐며 너와 엄마 사이는 친구 같이 가깝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잊지 말자고 주절주절-서로 좀 더 조심스러워졌다. 유럽까지 와서 열다섯 살 딸내미와 이렇게 티격태격해야 하다니.
여기서도 나는 내가 선생이기 때문인지 자존심이 바닥을 친 엄마이기 때문인지 딸내미의 발랄함이 도를 지나쳐 무례해 보이기 시작했다. 예낭이에겐 그저 낯선 이국땅에서의 흥분이겠지만, 엄마 눈에는 아이의 태도가 영 마땅찮다.
난 오랫동안 벼르던 내 여행을 왔는데, 이게 뭐야? 딸내미의 사소한 행동에 신경이나 곤두세우고 있고…. 이런 내 모습에 실망스럽기도 하고, 화가 난다고 또 딸아이한테 그 화를 내버리는 게 한심스럽기도 하고…. 마냥 즐거울 줄 알았던 여행이 딸과의 심리전에 시차 적응과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과 같은 문제, 피곤까지 더해지니 짜증이 복받쳐 올랐다.
아침식사를 하는 테이블에 앉아서도 예낭이는 엄마보다 일행 중 이미 자기와 마음이 맞아버린 대학생 미현이와 수능을 막 마친 소현이 자매를 더 반기고 수다를 떤다. 이게 웬 질투? 자기네들끼리 통하는 언어로 수다를 떨고, 스마트폰을 가운데 두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즐기는 건 십 대들에겐 너무 당연한 일상일 뿐인데. 게다가 사람을 만나 금세 친하게 지내는 게 예낭이의 특기인지라 이 넓은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서 소심한 엄마만 찬밥 신세다.
물론 나도 주변에 같이 다니는 팀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농담 따먹기도 하고 다니지만, 나는 딸을 나 몰라라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니진 않는데, 이놈은 그냥 내가 자기랑 같이 파리에 있다는 사실마저 까먹은 듯 그 언니들하고만 몰려다닌다.
그냥 서글펐다. 아니, 내가 왜 서글플까? 내가 예낭이 때문에 여기 왔나? 난 나 때문에 여기 왔는데 이 감정은 뭐지? 센 강을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타고 아름다운 조명에 눈부시게 빛나는 에펠탑을 보지 못했다면 내 감정의 소용돌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졌을 것이다.
센 강에서 올려다보는 에펠탑은 정말 황홀했다. 그 순간 나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고 싶었다.
“그냥, 선생님도 엄마도 아내도 아닌 나와 만나고 싶었다. 무언가를 꼭 해야겠다고 전전긍긍하지도 않는 나. 내 나이도, 성별도 다 잊은 그냥 나. 동그마니 유람선 벽에 기대어 파리의 밤바람을 맞으며 삼십여 분을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다.” |
“사랑! 사랑하고 싶었다. 다시 가슴 뛰게 살아 있음을 느낄 정도로 사랑하고 싶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딸아이들을, 남편을, 또 내가 만나는 많은 아이들을, 아직 만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을 가슴 절절하게 사랑하고 싶었다.” |
“내 딸뿐만 아니라,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사랑받고 싶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만큼 사랑하고 싶으면서도 그들의 따스한 사랑 역시 받고 싶어 하는 나를 본다.” |
편집자의 말 광복절을 맞이하여 식품회사 천호식품에서 5일간 홈페이지를 통해 주부를 대상으로 ‘가장 해방되고 싶은 대상’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1위는 시댁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3040 엄마들도 한때는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자신만의 미래를 꿈꾸던 여자였다. 여자라면 누구나 엄마가 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딸로 살다가 어느 순간 아내란 이름을 얻고 ‘얼떨결에’ 엄마가 된다. 그 이후로는 모두가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 엄마. 엄마로 사는 데 온 힘을 다하다 어느 순간 정작 ‘나’는 사라졌음을 깨닫고 서글프다가도 엄마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현실에 숨 막힌다. 따라서 3040 엄마들이 가장 찾고 싶은 대상은 ‘나’일 것이다. 그런데 왜 주부들은 가장 해방되고 싶은 자신을 나 자신으로 꼽았을까? 그 말은 달리하면 현재의 나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피하고 싶은 대상은 정확히 ‘나’라기보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저 타인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는 나'일 것이다. 엄마로 사는 동안 잃어버린 나를 되찾는 일이 중요하지만 엄마가 된 이상 나로서만 살 수는 없다. ‘엄마’인 동시에 ‘나’로 살아야 한다. 나만의 꿈을 갖고 사는 엄마가 행복하고, 그런 엄마와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자녀 역시 행복할 수밖에 없다. | ||
<김영란> 저11,700원(10% + 1%)
좋은 엄마란 무엇인가? 누구나 엄마가 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딸로 살다가 아내란 이름을 얻고 얼떨결에 엄마가 된다. 또 엄마는 가족들과 지지고 볶으며 살면서 완성되는 미완의 존재이기도 하다. 즉, 엄마는 그렇게 아이들과 ‘살아내려고’ 부단히 애써야 한다. 따라서 좋은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