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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자녀의 말에 상처 받는다
나는 아이 편에 섰다 벌과 칭찬 사이에서 외줄 타기
이 아이에겐 다른 방식의 해결책이 필요했다. 문제가 되는 행동을 지적하고 언급하면서 주의를 주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런 행동들은 단지 관심을 받고 싶어 했던 것에 불과했다. 즉, 그 행동의 옳고 그름은 민규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그저 어떻게 하면 선생님이, 그리고 엄마가 나에게 관심을 더 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다른 아이들로부터 시선을 한 번 더 받고 아이들 사이에서 우뚝 설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민규는 나를 보면서 엄마를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침 일찍 잠깐 얼굴 보고 자기 전에 잠깐 보는 엄마가 아닌, 하루 종일 함께 있고 같이 놀고 느긋하게 점심도 먹고 칭찬도 해주고 야단도 치는 그럼 엄마를 원했을 것이다.” |
“죗값을 치르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그전에 그 아이가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벌을 다 받고 나서는 어떻게 안아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그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몫이다.” |
편집자의 말 아이는 자신의 말에 어른이 상처 받는다는 걸 모른다. 사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고통도 크지만, 아이로부터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도 엄마에겐 큰 상처이다. 그러나 아이의 부정적인 말, 과장된 행동의 목적은 어른들을 기분 나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나를 봐달라’는 표현을 그렇게 할 뿐이다. 따라서 괘씸하다고 생각하며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아이의 말에 상처 받기보단 ‘이 아이가 사랑이 부족하다고 떼를 쓰고 있구나, 관심을 받고 싶어 그렇구나’라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나쁜 행동에 대한 죗값은 반드시 치르게 하되 왜 아이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벌을 받은 이후로는 어떻게 안아줘야 할지 고민하는 것, 옆에서 지켜보며 다독여주고 맛있는 반찬에 밥 먹여줄 수 있는 엄마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어른들의 몫이다. 엄마의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한때 우리도 기존의 질서에 대항하고 반항하던 소녀였음을 인지하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자 할 때, 아이들이 비로소 손을 내미는 기적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
<김영란> 저11,700원(10% + 1%)
좋은 엄마란 무엇인가? 누구나 엄마가 될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딸로 살다가 아내란 이름을 얻고 얼떨결에 엄마가 된다. 또 엄마는 가족들과 지지고 볶으며 살면서 완성되는 미완의 존재이기도 하다. 즉, 엄마는 그렇게 아이들과 ‘살아내려고’ 부단히 애써야 한다. 따라서 좋은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