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느니 차라리 온라인 게임이 낫다고? - 『누구나 게임을 한다』
인간 본연의 행복에만 충실했던 게임의 이유 있는 항변!
현실에서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장애물이 열중할 대상이 된다. 낙관적 유능감과 활발한 활동을 증대시켜주고, 일을 하는 데에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경험을 한다. 장애물에 맞서며 무력감에 빠지고 좌절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 감정이 최고조가 되는 낙관적 열중이라는 흔치 않은 경험을 맛보게 해준다. 게다가 게임의 세계는 현실세계보다 명확하다. 해야 할 일이 정확하고,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 분명한 피드백이 있다. 현실의 삶에 그런 일이 얼마나 있던가?
언론에서 심심치 않게 게임중독/인터넷 중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소년을 위험한 게임에서 보호하기 위해 일정 시간 이후에는 접속을 할 수 없게 하는 셧다운 제도를 실시하겠다고 한다. 가끔 나오는 실태조사에서 게임중독 비율이 10-15%라는 보고도 있다. “와… 대단하다”, “정말 위험한 세상이구나”라 감탄과 두려움을 갖게 되다가도 동시에 그렇다면 학생들 한 반에 30명 안팎이라고 치면 최소한 서너 명은 심각한 게임중독이라는 말인데 그게 맞는 말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내 주변에서 보는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게임을 좋아한다 해도 게임을 중독이 될 정도로 할 시간을 내기도 어렵게 바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게임중독에 대한 실체는 어느 수준이상으로 과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하게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분명히 게임이 문제다. 게임을 하느라 학교를 안가고,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만 확실하게 있다. 이들을 만나 상담을 하고 평가를 해보면 게임의 세상에 머무르는 이유를 막연하게나마 알 수 있다. 게임 자체가 중독성이 강해서라기보다 ‘게임이라도 하는 게 낫기’때문이고, ‘할 게 없어서 게임을 한다’는 보고도 많이 한다. 즉, 게임에 중독되었고, 지나치게 몰두해있는 상태로 표면적으로 보이지만, 게임자체가 이들을 현실에서 벗어나게 했다기보다, 현실에서 벗어날 만한 사정이 있어 튕겨져 나온 것이고, 게임은 그들이 현실로 돌아가지 않기에 머무르고 있는 일종의 ‘중간계’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 고민에 대해 제인 맥고니걸의 『누구나 게임을 한다』는 흥미로운 답을 들려준다. 저자는 게임이 현실보다 나을 수 있다고 받아들일만한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게임은 목표, 규칙, 피드백 시스템, 자발적 참여라는 네 가지 구성요소로 만들어져 있다. 현실에서는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장애물이 열중할 대상이 된다. 낙관적 유능감과 활발한 활동을 증대시켜주고, 일을 하는 데에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경험을 한다. 장애물에 맞서며 무력감에 빠지고 좌절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 감정이 최고조가 되는 낙관적 열중이라는 흔치 않은 경험을 맛보게 해준다. 게다가 게임의 세계는 현실세계보다 명확하다. 해야 할 일이 정확하고,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 분명한 피드백이 있다. 현실의 삶에 그런 일이 얼마나 있던가? 현실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이고 열심히 한다고 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보잘것없다고 느껴온 사람들에게 평소 느껴온 반복적 좌절을 게임은 단숨에 해결해준다. 얼마나 놀라운 세상이겠는가.
훨씬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이다. 그러니 현실에서 몰입을 할 대상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결국 게임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을 이해할 만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말하길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것보다 현실에서 몰입을 통한 '완전히 살아있는 경험'을 할 것을 찾는 것이 최선의 해결법이라고 역설한다.
두번 째 게임의 역설은 실패가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현실에서의 삶은 한 번의 실패로도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 내신 관리가 조금만 소홀해도 상위권 대학은 바라보지 못하는 십대, 조직사회에서 경쟁에서 밀리면 다시 끼어들어 선두로 나가기 어려운 회사원, 장사를 시작했는데 경험부족으로 실패를 하는 경우 새로 시작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자영업자,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해 가혹한 징벌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게임에서는 실패가 즐겁다. 사실 게임은 실패의 연속이다. 결국은 괴물에게 지고, 미션을 클리어하지 못하고 끝이 난다. 그런데도 재미있고, 또 하고 싶어진다.
저자는 말하기를 다음엔 잘 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고, 실패가 재미있게 묘사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번의 실패로 완전히 게임에서 아웃이 되지 않고 'Continue? Yes or No’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 아주 지쳐버리기 전에 결국 레벨 업이 가능하다는 경험적 희망은 무엇보다 강력한 동기가 된다. 우리 삶도 그렇게 디자인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실패하고도 유쾌해하며, 긍정적이고 주체성을 인식하면 낙관적 태도가 생기게 된다. 실패하면 할수록 더 잘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적절한 유형과 스타일의 실패는 긍정적 피드백이고 보상이 될 수 있다. 실패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은 긴박한 낙관의 상태에 오래 머물게 된다.
더 나아가 게임을 통해 세상에 대해 영향력을 미치고 관계의 폭이 넓어진다. 타인의 독려와 도움을 통해 능력치가 올라가는 것을 경험하고, 내가 경험을 많이 쌓고 나면 내 조언과 도움으로 확 레벨이 올라가는 것은 자신이 직접 할 때 이상의 즐거움을 준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게임 공략법’을 작성해서 배포하고, 블로그에 올려놓는 것이다. 현실의 삶에서는 보잘것없는 존재이고 “네가 뭘 알겠어”라는 시선의 대상일지 모르지만 게임에서만은 누구를 도와주고, 가르쳐주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으니 나를 다른 더 나은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니 게임의 세계에 머무르는 것이 이성적으로 훨씬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오고 가는 상호 작용 속에 현대인이 갖는 본질적 고립감과 외로움도 많이 해소된다. 저자는 이를 타인과 같은 공간을 공유했을 때 느끼는 기분인 ‘사회적 현존감’이라고 하면서 이를 통해 세상에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강화되고, 이는 실제로도 현실에서 친구, 가족, 낯선 이를 돕는 행동을 더 많이 하는 긍정적 피드백이 되기도 한다고 했다.
게임 자체가 위험하기보다 현실에서 만족하기 어려웠던,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여러 요인들이 게임을 통해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이 게임이라는 중간계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고, 나도 거기에 동의를 한다. 중요한 것은 현실세계에서 몰입하고 즐거움을 얻고, 실패를 즐길 수 있는 낙관적 자세를 취해도 되고, 고립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게임이라는 세상에 심취해서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은 게임의 중독성이 강해졌다는 것보다는 현실의 삶에 머무르는 것에 별다른 미련이 없는, 또는 머무르고 싶지만 튕겨져 나가버린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반영하는 지표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게임을 때려잡는다고 그들이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더 심하고 위험한 곳으로 도피하도록 몰아붙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떨 때에는 ‘차라리 게임을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도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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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제인 맥고니걸> 저/<김고명> 역16,200원(10% + 5%)
미래를 보는 게임 전문가이자, 게임 디자이너인 제인 맥고니걸 교수는『누구나 게임을 한다』를 통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가상 세계로 대이주를 감행하는 까닭은 게임이 인간의 진정한 욕구를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게임의 진정한 힘을 이해한다면 완전히 망가져버린 현실 세계를 바로 잡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