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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사람들은 복고에 열광하나

<락 오브 에이지>와 뮤지컬 영화들: 춤과 음악, 북적이는 삶의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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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하이스쿨 뮤지컬> 등의 하이틴 영화가 인기를 끌었지만, 국내에서는 큰 반향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오랜만에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가 개봉된다. 톰 크루즈와 케서린 제타 존스의 출연으로 주목받고 있는 <락 오브 에이지>는 로큰롤 음악에 대한 무한 애정을 담아내는 뮤지컬 영화이다. 영화는 1980년대 말 할리우드로 돌아가, 락 스타의 산실이었던 클럽 ‘버번 룸’으로 관객을 이끈다.


<헤드윅>


<김종욱 찾기>


1991년 월트 디즈니의 <인어공주>는 디즈니 만화를 보고자란 키덜트 세대의 감수성을 자극하면서 세계적인 흥행작이 되었고,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은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역동적인 이야기, 복고적인 감수성, 해피 엔딩으로 변형된 이야기 등 흥행의 많은 요소 중 가장 큰 특징은 스펙터클한 군무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노래에 있다. 즉,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바로 ‘뮤지컬’ 그 자체인 것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뮤지컬이란 장르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음악을 통해 우리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브로드웨이에서만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뮤지컬은 한국 사회에도 정착되어, 고정 팬을 거느린 장르가 되었다. <에비타>, <헤드윅>이나 <시카고>, <드림걸즈>, <맘마미아>처럼 영화가 뮤지컬이, 뮤지컬이 영화가 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고, <김종욱 찾기>처럼 대학로의 흥행 뮤지컬이 일반 극영화가 되는 경우도 있다.


<다세포 소녀>


한국 뮤지컬은 수많은 각색 작품과 소규모의 창작 작품들이 솜씨를 겨루며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이루어 튼튼하게 정착하고 있지만, 몇 차례 시도된 한국 뮤지컬 영화는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1988년 최민수 주연의 <그녀와의 마지막 춤을>은 시기상조였고, <삼거리 극장>, <구미호 가족>을 비롯하여 뮤지컬적인 요소가 들어갔던 <다세포 소녀>는 즐길만한 요소가 충분했지만, 뮤지컬적인 요소가 가지고 있는 정서를 담아내는데 역부족이었다.

우리나라 전통 악극을 말할 때, 한국 고유의 문화적 정서를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뮤지컬 장르는 미국 영사 속에서 뿌리 깊은 문화적 함의를 담고 있다. 수많은 뮤지컬 대작들이 한국에서 큰 흥행성공을 이뤄내고 있긴 하지만,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라면 곰곰이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담긴 복고적인 감수성이 여전히 미국인의 역사에 뿌리깊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복고, 추억, 정서의 환기


<사운드 오브 뮤직>


<그리스>


미국사회에 있어서 뮤지컬과 뮤지컬 영화는 역사적으로 꽤 뿌리가 깊다.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 주었던 것은 스펙터클하고 경쾌한 뮤지컬 영화였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Show must go on)”이란 명제를 낳았던 1920년대를 지나 1930년대에 뮤지컬 영화는 빛나는 황금기를 누렸다. 60년대 줄리 앤드류스는 <사운드 오브 뮤직>, <매리 포핀스> 등으로 뮤지컬 스타로서의 계보를 이었고,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화니 걸>, <마이 페어 레이디> 등이 인기를 끌었다. 70년대는 컬트 열풍의 주역 <록키 호러 픽쳐쇼>, 올리비아 뉴튼존의 <그리스> 등이 인기를 끌었다.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는 앞서 말한 것처럼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변형된 형태로 관객들의 정서를 자극했다. 또한 세기말을 준비하는 90년대는, 우울한 현실을 잊게 만드는 로맨틱 코미디와 우울한 미래를 전망하는 SF 영화들이 대세를 이루던 때였다. 90년대는 과거를 이야기할 틈이 없이 미래를 향해 벅차게 흘러갔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된 21세기는 낙관적 전망을 무색하게 할 만큼 보잘것없이 시작되었다. 달나라 여행도 없고, 질병 정복도 없고, 인류의 멸망도 없이 우리의 일상은 그저 그렇게 또 흘러가게 되었다.

경기는 나쁘고, 미래는 불투명하다. 사람들은 과거가 좋았다며 말하기 시작했다. 얼핏 지나간 과거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징그럽게 주위를 떠돌았던 가난과 무지와 소통 불능의 기억은 매끄럽게 걸러낸 과거의 기억 속에는 낭만이 미소 짓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려운 현실을 낭만으로 묻어버리려는 집단 무의식이 이끌어 가는 복고적 정서는 다시 한 번 할리우드에 뮤지컬 영화 장르를 불러오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물랑 루즈>


<시카고>


그런 점에서 2001년 바즈 루어만의 <물랑 루즈>는 관객들이 원하는 복고적 정서와 영화 매체만이 보여줄 수 있는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영화로만 표현 가능한 입체적 정서를 스크린에 투영했다. 스토리는 단조롭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포장은 새롭고 현란하고, 황홀했다. 19세기 프랑스 사교계가 배경인데, 마돈나의 노래가 나온다. 시대와 장소의 한정된 배경을 거부하는 듯한 노래들은 숨 가쁜 비트로 쿵쾅거린다. 바즈 루어만은 낡은 줄 알았던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가 여전히 신선하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알렸고, 관객들이 기대하는 스펙터클한 볼거리를 영화적 테크놀로지를 통해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어 성공한 작품은 <시카고>였다. 브로드웨이 장수 뮤지컬이란 점은 큰 매력이면서 동시에 뛰어넘어야 할 산이었다. 잘 알려진 이야기를 브로드웨이보다 더 화려하게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영화적 매력을 잃지 않아야 했다. <시카고>는 재바르게 테크닉 보다는 이야기로 승부수를 걸었다. 빌 콘돈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시나리오는 영화적 구성에 적합하게 손질되었고, 리처드 기어, 르네 젤위거, 케서린 제타 존스와 퀸 라티파까지 가세한 <시카고>는 그야말로 호사스러운 뮤지컬 영화로 재탄생했다. 춤과 노래를 보여줄 때는 최대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가깝게 표현하고, 현란한 카메라 워크와 감각적인 편집으로 영화적 매력은 극대화하는 전략은 주효했다. <시카고>는 <올리버> 이후 35년 만에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뮤지컬 영화가 되었다.


<렌트>


<프로듀서스>


하지만, 모든 뮤지컬 영화가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다소 지루하다는 평과 함께 흥행에 실패한 <드 러블리>와 함께 2004년 조엘 슈마허 감독의 <오페라의 유령>도 브로드웨이의 영광을 재현해내진 못했다. 슈마허 감독은 무대 위에서는 그토록 신비하고 아름답게 보였던 유령의 세계를, 영화적 변용 없이 그대로 가져오면서 지루하고 밋밋한 영화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뮤지컬 영화 제작은 끊이질 않았다.

<렌트>와 <프로듀서스>는 선배작의 성공비법과 또 선배작의 실패 요인을 제대로 찾아, 원작 뮤지컬에 충실하면서도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현란하면서도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한다. 오페라 <라 보엠>을 각색해 만든 <렌트>는 탱고에서 가스펠까지 아우른 곡 구성으로 비교적 충실하게 뮤지컬 고유의 화법을 따른다. <시카고>가 할리우드 스타를 기용한 것과 달리, 영화 <렌트>는 브로드웨이에서 실력을 갈고 닦은 배우들의 재능을 믿고, 그 기량을 펼친다.

<프로듀서스>의 경우는 좀 다르다. 패러디 영화의 대부 멜 브룩스는 1968년 제작된 자신의 동명 영화를 각색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통해 2001년 토니상 12개 부문을 석권했다. 그리고 그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로 만들었다. 멜 브룩스가 제작자로 빠지고, 새롭게 투입된 감독 수잔 스트로먼은 영화에 걸맞은 풍자와 위트, 그리고 스펙터클 대신 뮤지컬다운 춤과 노래를 지나치게 브로드웨이 식으로 보존하려는 데 주력한 결과, 매체의 차이를 고민하지 않고 손쉽게 원작의 명성에 기대는 그저 그런 작품이 되는 데 그치고 말았다.


<드림걸즈>


2007년 제작된 <드림걸즈>는 그런 점에서 꽤 영리한 영화다. <드림걸즈>는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가 지향해야 하는 지점과, 영화로서 관객들에게 이야기해야 할 거리를 정확히 짚고 있다. <물랑 루즈>, <시카고>로 이어지는 쇼걸, 혹은 여가수의 계보를 이어, 무대 위에서 명멸하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화려해 보이는 동시에, 어둡고 짧지만 강렬한 우리의 인생을 닮은 ‘쇼’야 말로 뮤지컬 영화가 당연히 답보해야 할 최대의 볼거리다.

주인공이 가수인 <드림걸즈>는 자연스럽게 뮤지컬로서의 쇼를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쇼 비즈니스의 스토리에, 감동을 담아 현란한 테크놀로지와 연출력을 동원해, 이야기와 볼거리가 튼튼한 하나의 뮤직 스토리를 그려낸다. 귀를 황홀하게 하는 명곡들과, 눈을 즐겁게 하는 볼거리, 그리고 감동적인 스토리까지 어느 하나 치우침 없이 조화를 이룬다. 게다가 1960년대 복고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인종차별 문제부터, 여성의 문제까지 영화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준다.


간지러운 미국산 뮤지컬, <락 오브 에이지>


최근 <하이스쿨 뮤지컬> 등의 하이틴 영화가 인기를 끌었지만, 국내에서는 큰 반향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오랜만에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가 개봉된다. 톰 크루즈와 케서린 제타 존스의 출연으로 주목받고 있는 <락 오브 에이지>는 로큰롤 음악에 대한 무한 애정을 담아내는 뮤지컬 영화이다.

영화는 1980년대 말 할리우드로 돌아가, 락 스타의 산실이었던 클럽 ‘버번 룸’으로 관객을 이끈다. 1980년대 음악계에서는 비디오 시대를 맞이하여 현란한 의상과 사운드로 무장한 다양한 음악들이 경합하던 시기였다. 마돈나, 마이클 잭슨, 신디 로퍼, 프린스 등이 이 시대를 풍미했던 팝스타였다. 영화 <락 오브 에이지>는 바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1962년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헤어스프레이, 2007년>를 연출했던 아담 쉥크만 감독은 이번에는 1987년 LA를 배경으로 한 뮤지컬 <락 오브 에이지>를 영상화했다.


할리우드 선셋 거리에 위치한 버번 룸은 많은 록 스타와 밴드를 배출한 최고의 로큰롤 클럽이었다. 그러나 로큰롤의 정신보다는 자본의 논리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스타들은 돈을 찾아 떠나가고 클럽은 왕년의 빛을 잃은 채 세금조차 내지 못해 도산 위기에 처한다. 설상가상으로 시장 부인(캐서린 제타 존스)은 로큰롤이 악마의 음악이라며 버번 룸부터 몰아내서 선셋 스트리트를 청소하겠다고 공포한다. 이제 버번 룸이 살기 위해서는 버번 룸이 배출한 최고 스타 스테이시 잭스(톰 크루즈)의 공연을 성사시켜 왕년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 영화는 공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버번 룸과 LA 시장 부인 간의 갈등을 큰 축으로 하여 전개된다.

여기에 당연하게도 스타가 되겠다는 푸른 꿈을 품고 버번 룸에서 일하고 있는 청춘남녀 드류(디에고 보네타)와 쉐리(줄리앤 허프)의 사랑 이야기가 끼어든다. 너무나 단선적인 대립구도와 결말이 예측되는 줄거리를 참고 본다면 1980년대의 히트곡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본 조비, 익스트림, 애로우스, 저니, REO 스피드 왜건, 포이즌 등 그야말로 1980년대를 풍미했던 밴드들의 히트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귀를 즐겁게 해준다. 여기에 톰 크루즈를 비롯해 캐서린 제타 존스, 알렉 볼드윈 등 화려한 스타들이 이야기의 틈새를 메워준다. 또한 198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배경과 액세서리, 의상 등은 복고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21세기 초부터 계속된 복고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영화, 뮤지컬은 지금도 이어져 <롤리 폴리>처럼 영화 <써니>를 쏙 빼닮음 뮤지컬이 인기를 끌고 있는 건 미래를 꿈꾸기보다 과거의 향수에 빠져 퍽퍽한 현실을 잊고 싶어서가 아닐까?

실제로 1920년대 미국 사람들은 춤과 노래가 있어서 어려웠던 시절을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흑인들의 소울 음악이나, 춤은 노예로 살던 시절을 위안하는 절실한 수단이었다. 보다 즐겁고 다양한 볼거리들이 많은 현대인에게 뮤지컬 영화는 그저 하나의 즐길 거리 중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이 열리는 순간부터 막이 닫히는 순간까지, 우리네 인생을 그대로 닮은 쇼. 그런 쇼를 보여주는 뮤지컬 영화야 말로, 충분히 즐길만한 오락거리가 된다. 우리 오늘은 뮤지컬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잊기 위해 춤추고, 지우기 위해 노래하자. 그렇게 인생에는 위안의 순간이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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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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