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의 추억이라고 하면 끝내주는 게 하나 있지. 나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소. 이름하여 ‘베이컨의 추억’.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친구 도시락에 베이컨이 들어 있었던 거요. 그 전까지 베이컨이라고 하면 고래 고기였는데, 친구 녀석의 베이컨은 얇고 짭짤하고 흐물흐물했어. 그런 게 아스파라거스를 돌돌 말고 있었지.
처음에는 이게 뭐냐고 생각했지만 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엄마, 고래가 아닌 베이컨이 있어! 돼지고기 베이컨이라는 게 있는데 나도 먹고 싶어.”라고 말하며 보챘지. 그때부터 내 도시락에도 돼지고기 베이컨이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거야. 보통 돼지고기라면 그 전에도 먹었지. 하지만 베이컨이라니, 참으로 새로웠어.
이렇게 보여도 고등학교 때는 로큰롤 소년이었어. 도어즈에 롤링스톤에……. 도쿄에 있는 전파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친구들 거의 대다수가 통신계 회사에 취직이 결정되어 있었지만, 나는 자위대에 간다고 선언을 했지. 어쨌든 난 록커였으니까 뭔가 특별하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거기에 뭔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자위대에는 내가 원하던 정신성이 없었어. 그래서 그냥 돌아왔어. 할 일 없이 그냥 세월아 네월아 한 거지, 뭐. 시쳇말로 하자면 프리터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젊은 세대-옮긴이) 생활을 한 거야. 그때는 참 막막하더군. 결국 나는 국철의 기관구에 들어가게 되었어.
처음으로 운전한 것이 전기기관차였지. 침대차라든지 화물차 말이야. 뒤에 이어진 차량이 동력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선두열차가 끌고 가는 거였지. 처음에는 손에 땀이 나도록 핸들을 꽉 쥐고는 아주 필사적이었어. 전기기관차는 브레이크 잡기가 무척 어렵거든. 모든 차량에 브레이크가 걸리기까지 1분 이상 걸리지. 자고 있는 손님을 자주 깨웠을 거야, 아마.
‘침대열차’를 운전했을 때 커브 지점에서 뒤를 본 적이 있는데, 차량이 다 보이는 게 아니겠소? 그때 나는 내가 엄청난 걸 운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지.
남 아소철도로는 올 4월에 왔소. 도시락은 늘 두 개 가지고 다니지. 점심 때 하나 먹고, 저녁은 근처에 라면집에서 짬뽕을 먹지.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남은 도시락 하나를 먹고. 주중 절반은 회사 숙직이니까 도시락은 늘 두 개를 싸야 해. 오늘은 아들 녀석 운동회라서 좀 거창할 것 같은데, 어떨지 모르겠군. 아들은 중학교 3학년인데 나와 마찬가지로 말은 잘하지만 달리기는 별로야.
다음에 만날 때는 베이컨을 대접하지. 베이컨에는 특별한 추억이 있으니까 내가 만들어야겠지? 소금과 허브로 절인 다음 물에서 소금을 빼야 해.
“그런 쓸데없는…….”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 소금빼기가 중요한 작업이지. 그 다음 냉장고에서 건조시킨 후에 훈제를 해. 이 공정이 일주일이나 걸려. 허브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스카보로 페어> 가사에 나오는 파슬리, 세이지, 로즈마리 등을 다 넣고. 그래서 난 이 베이컨을 ‘스카보로 페어 베이컨’이라고 부르지. 완성되면 그날 저녁은 구워서 맥주 한잔이랑 같이 맛을 봐. 수프에 넣어도 좋고 볶음밥에 넣어도 좋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어서 좋아. 일주일 걸리니까 미리 예약하는 거 잊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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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락의 시간 아베 나오미 저/아베 사토루 사진/이은정 역 | 인디고
정성 담긴 소박한 도시락 그리고 그 도시락을 꼭 닮은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일본에서 출간되었을 당시 큰 시련에 빠져 피폐해져 있던 일본 독자들의 마음을 ‘평범한 사람들의 깊이 있는 감동’으로 위로했다는 반응을 얻었던 에세이로 연이어 두 번째 책이 출간되며 감동을 전하고 있는 책이다. 책에 담긴 도시락의 주인공은 해녀부터 역무원, 고등학생, 원숭이 재주꾼, 항공기 정비사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다. 도시락을 앞에 두고 나눈 이야기에는 평범한 이웃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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