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처가 도시락이네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정정해.
“공처가 도시락이지.”
매일은 아니지만 벌써 30년 가까이 부인님께서 싸주시고 계시지. 이 사무실에서 도시락 싸오는 사람은 아마 나뿐일걸. 요즘은 다들 밖에서 사 먹잖아. 그래서 늘 혼자서 고독하게 책상에 펴놓고 먹고 있지. 아니면 영업 뛰다가 차 안에서 먹든가.
도시락에 대해서는 감히 무슨 말을 하겠어. 아니다, 아무 말도 안 하겠다고 나름 맹세를 했지. 만일 부인님한테 싫은 소리 했다가 도시락 안 싸주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 도시락은 둘이서 먹는 거잖소. 싸주는 사람과 그걸 먹는 사람 둘이서 말이오. 만들어 주는 사람의 기분이 전해지기 때문에 늘 고맙게 생각해. 아마 그래서 좀 맘에 안 들어도 아무 말도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군, 허허.
잎채소는 늘 들어 있지. 오늘 싸준 모로헤이야
(시금치와 비슷하게 생긴 녹황색 채소-옮긴이)는 집 정원에서 부인님이 키우는 거요. 좋아하냐고? 좋다 싫다 말을 못한다니까, 자꾸 그러네. 초절임은 별로 안 좋아했는데, 늘 들어 있어서 먹다 보니까 이제는 거의 대부분 다 먹을 수 있게 됐지. 다 우리 부인님 덕분이지.
실은 라면을 엄청 좋아하거든. 지금까지 한 1,500그릇은 족히 먹었을 거야. 먹고 싶은 거 먹으라고 하면 라면을 먹을 거야. 그래서 부인님이 도시락을 준비해 주는 거라고 봐. 영양을 생각해서 ‘골고루 드세요.’ 하는 마음으로.
일을 위해서라면 일본 어디라도 한 걸음에 달려가. 10박 정도의 일정으로 규슈까지도 가버린다니까. 고속도로가 아니라 일반도로로 가지. 덕분에 호기심이 왕성하다는 말을 듣곤 하지. 일반도로로 가면 뭐가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거든.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에 전국의 라면집을 하도 많이 설정해 놔서 늘 메모리 오버 상태야. 아침부터 라면……. 이거 우리 부인님이 알면 큰일 나는데.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내가 평소에 도시락을 열심히 먹기 때문이야. 지금 ‘도시락이 있기 때문에 라면을 먹을 수 있다? 이게 뭐야?’ 하고 생각하지?
그러고 보니 결혼 생활 내내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네. 둘이서 사이좋게 하이킹을 하기도 하는데 둘이서 같은 풍경을 보고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아.그래, 맞아! 이거, 늘 책상 위에 있는 이 코케시 인형
(동그란 머리와 원통형 몸통을 가진 일본 전통 목각 인형-옮긴이)이 우리 부인님을 꼭 닮았다는 거 아냐. 100엔 숍에서 우연히 발견했어. 회사 사람들한테 이거 부서지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말해 뒀지. 하하하, 공처가 맞지?
아내도 라면을 좋아해서 둘이서 라면 먹으러 가면 아내는 미소 라면, 나는 간장 라면을 주문하지. 아내는 수육을 안 먹으니까 수육은 늘 내 차지야.
아, 오늘은 도시락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내가 이렇다니까, 허참. 라면 먹고 싶지 않아? 요 근처에 괜찮은 라면집이 있는데, 내가 알려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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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락의 시간 아베 나오미 저/아베 사토루 사진/이은정 역 | 인디고
정성 담긴 소박한 도시락 그리고 그 도시락을 꼭 닮은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일본에서 출간되었을 당시 큰 시련에 빠져 피폐해져 있던 일본 독자들의 마음을 ‘평범한 사람들의 깊이 있는 감동’으로 위로했다는 반응을 얻었던 에세이로 연이어 두 번째 책이 출간되며 감동을 전하고 있는 책이다. 책에 담긴 도시락의 주인공은 해녀부터 역무원, 고등학생, 원숭이 재주꾼, 항공기 정비사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다. 도시락을 앞에 두고 나눈 이야기에는 평범한 이웃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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