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유명인사가 되기도 한다. 소피아 코폴라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시대를 대표하는 명작인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과 <대부The Godfather> 시리즈를 만든 거장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무남독녀 외동딸이기에 그녀는 태어나는 그날부터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고 뉴스거리가 되곤 했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으니 그녀의 성장 과정은 코폴라 감독의 새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만큼이나 지속적으로 보도되었다.
코폴라 감독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쁜 딸을 종종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키기도 했다. 소피아는 <대부>에도 출연했는데, 시칠리아의 성 입구 계단에서 주인공 알 파치노를 대신해 총에 맞아 드레스가 점점 피에 물들어가는 신의 소녀가 바로 소피아 코폴라였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덕을 톡톡히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지 모르지만, 정작 그녀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한다.
“아버지 덕분에 어릴 적부터 정말 유명하고 대단한 연기자들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지만, 저렇게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저런 연기자들과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했어요. 특히 대부의 그 계단 신은 정말 제가 원해서 한 게 아니에요. 위노나 라이더가 그 역에 내정돼 있었지만 갑자기 아프게 돼서 급하게 대신한 거예요. 사람들은 아버지 덕을 봐서 유명해지려 애를 쓴다고 수군댔지만 사실은 전혀 달라요.” 그녀는 유쾌하지만은 않은 뒷얘기를 해주었다.
소피아 코폴라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 어느 정도 달관한 듯 보였다. 아버지가 그냥 감독도 아닌, 정말 영화사에 손꼽히는 거장이기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게 주목받는다는 점에 대해선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는 편이었다.
“어차피 모든 사람을 단 한 번에, 그것도 동시에 설득시키고 감동을 준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한 생각이잖아요. 그저 묵묵히 내 길을 가다 보면 알게 되는 사람은 아는 거고 또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모를 수도 있으니 조바심내진 않으려고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더니 낮은 톤으로 웃었다.
사실 굳이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소피아 코폴라는 바로 자신이 성공한 영화감독이다. 그녀가 연출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는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작에 오르며 각광을 받았고, 비교적 근작인 <썸웨어
Somewhere>는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녀의 연출작들엔 그녀만의 독특한 감수성과 정서가 묻어 있다.
소피아 코폴라는 그녀만의 유니크한 감성을 높이 산 패션 브랜드들이 협업을 제안해 와 몇몇 브랜드와 작업을 하기도 했다. 디오르의 향수, ‘미스 디오르’의 유명한 TV 광고를 비롯해 최근엔 2012년 3월 초 론칭한 스웨덴의 SPA 브랜드 H&M과 이탈리아의 감성적인 디자이너 브랜드 ‘마르니
Marni’와의 콜레보레이션을 위한 영상 작업을 마쳐서 사전공개 한 바 있다.
특히 H&M과 마르니를 위한 영상 작업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정확하면서도 독특한 무드로 표현해낸 한 편의 잘 만들어진 패션 필름으로, 벌써부터 찬사가 대단하다. 특히 평소에 마르니 의상을 즐겨 입는 그녀이기에 이번 작업에 더욱 애정을 쏟았다는 후문도 들린다.
소피아 코폴라가 패션에 남다른 애정이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그녀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마크 제이콥스의 패션 뮤즈라는 사실은 유명하다. 마크 제이콥스가 소피아 코폴라에게 영감을 받아 만든 백은 ‘소피아’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고, 발매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매장에 내놓기 무섭게 품절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또한 마크 제이콥스가 수석 디자이너를 맡고 있는 루이뷔통과도 콜레보레이션 작업을 해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소피아 백을 발매할 당시 마크 제이콥스는
“그녀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패션의 완성체”라고 말했을 정도로 소피아 코폴라의 남다른 감각을 일찍 알아보았고, 그녀를 자신의 뮤즈라고 칭하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소피아 코폴라는 애초 연기보다는 패션에 훨씬 관심이 많았다. 젊은 시절 하기 싫었던 연기보다는 밀크페드
Milkfed라는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는 방식으로 커리어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패션에 대한 깊은 관심과 뛰어난 감각은 그녀가 직접 연출한 영화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많은 장면에는 일본 패션과 디자인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이 표현돼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도 중세 프랑스의 복식과 문화, 양식에 관한 소양과 전통의 재해석이 오마주의 형태로 장면마다 스며들어 있다.
소피아 코폴라의 패션에 관한 관심은 그녀를 한 디자이너의 뮤즈, 자기 브랜드를 론칭한 경험이 있는 디자이너, 그리고 유명 브랜드와 콜레보레션 작업을 진행한 게스트 디자이너, 브랜드의 광고 영상을 연출하는 감독과 같은 다양한 활동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소피아 코폴라는 패션 포토그래퍼로서 활약하기도 한다. 그녀가 촬영한 패션 화보나 광고사진을 보면 그녀만의 감성이 진하게 배어 있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다재다능한 그녀가, 또 다른 타이틀 하나를 자신의 이름 뒤에 붙였다. 바로 ‘와인 메이커’이다. 아버지 코폴라 감독은 와인업계에 종사하거나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대로 미국 와인계의 큰손이다. 캘리포니아 주 소노마
Sonoma에 있는 대규모 와인 양조장에서 ‘디렉터스 컷’를 포함한 ‘다이아몬드’ ‘리저브’ ‘로소 & 비앙코’ ‘소피아’ ‘인사이크로피디아’ 등 여섯 개 라벨을 생산, 와인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코폴라 감독이 와인 사업을 운영하는 건 일부 미국 상류층들이 과시용이나 투자 명목으로 나파 밸리
Napa Valley 지역을 중심으로 투자하는 붐을 따라한 것이 아니라, 조부 때부터 내려오는 와인 사업을 이어받아 번창시켰을 뿐이다. 코폴라 감독은 영화감독으로 커리어를 쌓기 전부터 와인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사업인지라 딸 소피아의 이름을 딴 스파클링 와인을 론칭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소피아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대로 내려온 가족 사업에 동참했는데, 아버지 회사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프레젠츠
Francis Ford Coppola Presents에 출자해 선조 때부터 이어진 이탈리아 전통의 맛을 살린 파스타와 파스타 소스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한 양조장에서 가까운 샌프란시스코에 식당 두 개를 운영하는 등 외식 사업도 벌여 사업가로서도 남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사업가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녀지만 와인과 외식 사업은 패션에 대한 외도가 아니라 자신에게 또 다른 영감과 활력소를 제공하는 기회로써 활용하는 듯 보인다.
“아마도 패션은 저에게 있어 영원한 관심의 대상일 거예요. 패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저는 언제나 패션과 함께할 것이고요.”
포토그래퍼 유르겐 텔러
Juergen Teller가 촬영한 마크 제이콥스의 광고 화보에서 수영장에 몸을 담근 채 묘한 시선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그녀와, 포토그래퍼 애니 레보비츠가 촬영한 루이뷔통 광고 속에서 풀밭에 누워 아버지 코폴라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녀는 분명 같은 사람이면서도 다른 사람 같은 느낌을 준다. 같으면서 또 다른 듯하고, 낯익으면서 낯설기도 한 바로 그런 점이 그녀가 많은 패션 크리에이터들의 뮤즈로 주목을 받고 있는 매력이자 마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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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뮤즈 조엘 킴벡 저 | 미래의창
조엘 킴벡, 그가 드디어 자신의 책을 펴냈다. 현재 뉴욕 패션가에서 가장 핫한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며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인 그는 전 세계 패션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진정한 ‘글로벌 노마드(Global Nomad)’다. 요즘 제일 잘 나가는 할리우드 여배우부터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세계적인 스타일 셀럽 30인의 솔직담백한 백스테이지 인터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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