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겐츠는 오스트리아 국경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보덴지(독일인에게 물어봤더니, ‘보덴지’라고 발음하더군요.)를 중심으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독일이 자리해 있는데요. 덕분에 이 지역에 가면 자꾸 휴대전화 회사에서 메시지를 보냅니다. ‘스위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스트리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하지만 호수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넓어서 그냥 바다 같아 보입니다. 자, 그렇다면 유럽인들도 잘 모르는 이 브레겐츠에는 어떻게 가야 할까요?
브레겐츠에서 가장 가까운 공항은 독일 프리드리히스하펜입니다. 이곳에서 브레겐츠까지는 기차나 버스로 30분이면 이동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자면 독일 뮌헨이나 스위스 취리히 공항을 통해 이동하는 것이 수월합니다. 저 역시 이번에는 취리히에서 2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는 분들이라면 잘츠부르크나 인스부르크를 거쳐 이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네, 아주 특별합니다. 감히 인생에서 한 번은 봐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유럽의 그 수많은 음악축제 가운데 이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브레겐츠 페스티벌이 각광받는 이유는 바로 ‘호숫가’가 아닌 ‘호수 위에’ 마련되는 무대의 웅장함 때문입니다. 무대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올해 무대에는 여인의 상반신이 설치됐는데요. 상반신 길이가 24m, 머리 무게만 60톤에 달합니다. 동네 축제가 아닌 것이죠. 브레겐츠 페스티벌이 지금과 같은 현대식 시설을 갖춘 것은 1980년 무렵인데요. 이후 해마다 여름이면 인구 3만 명의 도시에 날마다 7천 명의 관람객들이 찾아들고 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규모의 무대 세트 때문에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는 2년 동안 같은 작품을 공연합니다.
저는 이번에 개막일 공연을 봤습니다. 그래서 군데군데 비어 있는 좌석이 보였습니다만 페스티벌이 중반에 접어들수록 티켓 구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브레겐츠에서는 숙소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에, 모든 티켓은 미리미리 구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국내에서는 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www.bregenzerfestspiele.com)를 통해 예매할 수 있는데요. 티켓은 우편으로 도착합니다. 그래서 주소를 잘 적어야 합니다. 저는 영국 거주지 주소를 적어놓고 나라는 한국으로 적는 실수를 범해 티켓이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어서 티켓 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는데요. 짧은 영어로 어렵게 설명한 뒤 해결책을 들으려는 찰나 전화가 끊겼습니다.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예상을 저버리지 않고 전혀 다른 분이 받더군요. 이런 번거로움을 피하려면 주소를 정확하게 적어야 합니다. 참, 티켓을 잃어버렸을 때는 사전 조율을 거쳐 1회에 한해 현장에서 재발급 해줍니다.
브레겐츠 예찬에 빠져 올해 주인공을 너무 늦게 소개하네요.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이탈리아 작곡가 움베르토 조르다노(Umberto Giordano)의 <안드레아 셰니에>가 공연되고 있습니다.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지난 1896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됐습니다. 오폐라에 조예가 깊지 않은 저에게는 다소 생소한 작품이었는데요. 게다가 3년 전에 겪었던 뼈아픔이 있어(공연은 이탈리아어로 진행되며, 자막은 독일어가 제공됩니다. 내용을 이해하기 참 힘들었어요.) 이번에는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시놉시스를 열심히 읽었습니다. 전체적으로 프랑스혁명 당시 활동한 시인 안드레아 셰니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주인공 셰니에는 물론 백작부인의 딸 막달레나, 귀족계급에 맞서 싸우는 하인 제라드가 만드는 삼각관계도 프랑스혁명과 함께 작품의 중심축을 이룹니다.
앞서도 말했듯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오페라 자체는 물론 그 웅장한 무대연출이 큰 볼거리인데요. 이번에 보덴호는 거대한 목욕통으로 변신했습니다. 무대감독이 프랑스 혁명기 화가인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요. 그림 속의 마라는 프랑스 대혁명의 3대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 목욕 중에 욕조에서 암살당했습니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 기존에 있던 그림을 모태로 무대를 만들기는 이번이 처음인데요. 무대 위에 설치된 여인의 상반신은 공연 중 조명에 따라 시시각각 모습을 달리하는가 하면, 목이 뒤로 꺾이면서 머리 안의 또 다른 무대가 보일 때면 입이 떡 벌어집니다. 또 호수를 적극 활용해 배우들은 극적인 장면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보덴호에 몸을 던집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프랑스 귀족들의 화려한 의상을 보는 것도 큰 재미였습니다.
지난 7월 19일 시작된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8월 18일까지 이어집니다. 밤 9시15분, 어스름과 함께 시작된 오페라가 절정에 달할 때쯤에는 호숫가를 제외한 일대가 짙은 어둠에 휩싸이는데요. 그럴 때면 유체이탈을 하는 사람처럼 객석에 앉아 있는 저를 바라봅니다.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알프스 자락에 숨어 있는 작은 마을, 그 호수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오페라, 오밤중에 그 공연을 보고 있는 까만 머리의 조그마한 나... 이런 경험, 한 번쯤은 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브레겐츠는 페스티벌의 성공에 힘입어 관광도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페스티벌 기간에는 오페라뿐만 아니라 클래식, 콘서트와 무용, 각종 전시회 등을 만날 수 있고, 유람선을 타고 인근 스위스나 독일의 작은 마을도 찾을 수 있습니다. 트래킹이나 하이킹, 호숫가에 자리한 노천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저는 이번에 관광지를 벗어나 실제 브레겐츠 사람들이 사는 타운으로 찾아가봤는데요. 소박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모습에 반해 언젠가 한 번 브레겐츠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습니다. 참, 타운으로 들어가는 분들은 브레겐츠 도서관에 꼭 들러보세요. 도서관이 또 하나의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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