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파토날지 모르는(!) 위험한 댄스 레슨
바다가 그대로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집. 잘 꾸며진 넓은 거실에 릴리 여사(고두심 분)가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곧 문을 두드리며 나타난 마이클(지현준 분)은 그녀에게 6주간 개인 교습을 해줄 댄스 강사다. 잘 차려입었지만 말투나 행동에서 느껴지는 껄렁껄렁한 스타일, 엉터리 같기만 한 배경지식, 신뢰가 가지 않는 품성에 릴리는 좀체 마이클에게 경계심을 풀지 못한다.
릴리 역시 30년 교직 생활을 한 선생님이자, 목사님의 사모답게 예의 있는 척 격식을 갖추고, 배려하는 척 깐깐한 잔소리를 해댄다. 첫 만남부터 언성이 높아지고, 급기야 릴리는 아카데미에 전화해 강사를 바꿔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른다. 아내가 아프고, 자신에게 이 일이 꼭 필요하고, 처음 나온 강의라 서투를 뿐이라며 마지막 기회를 비는 마이클 앞에서 마음이 약해진 릴리. 그렇게 서먹하고 어색한 가운데 첫 번째 강의가 시작된다.
총 여섯 번에 강습에 맞춰, 무대는 여섯 번 암전되고, 일곱 번 막이 오른다. 강의 때마다 새로운 댄스-스윙, 왈츠, 탱고, 폭스트롯, 차차차, 모던댄스-가 마련되어 있고 그에 맞춰 두 주연 배우는 춤에 어울리는 복장으로 볼거리를 더한다. 춤을 배운다는 설정이지만, 이미 댄스 강사보다 춤 실력이 좋은 릴리인지라, 두 사람의 댄스는 그 둘의 사이만큼 서툴지도 어색하지도 않다.
새로운 막이 오를 때마다 둘의 사이도 급격하게 변화가 일어난다. 두 번째 막에서 릴리는 매우 화가 나 있다. 나름 수소문을 해서 마이클의 뒷조사를 한 결과 그에게는 아픈 아내도 없고, 심지어 그가 게이였기 때문이다. 언제 파투 날지 모를 만큼 위태로운 댄스 강습은 이렇게 이어진다. 두 사람의 깊어지는 갈등. 그 속에서 드러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 미묘하게 싹트는 우정 등 다양한 감정을 출렁이며 극은 깊어지고 넓어진다.
엥그리 게이 강사와 노망난 결벽증 할망탱구, 춤을 추다
나름의 이유로 꼭 여섯 번의 댄스 강습이 필요한 두 사람이, 매번 위태로운 관계와 상황 속에서 희로애락을 나누고(물론 대부분 ‘선을 넘는’ 갈등이지만) 서로에게 상처와 격려를 주고받으며 긴장감과 애정을 이어가는 과정이 꽤 흥미롭다. 단 한 번의 배경 전환 없이, 단 두 사람의 캐릭터로 댄스 강습이라는 하나의 상황 속에 놓여 있지만, 캐릭터의 깊이가 깊다. 극이 진행되면 될수록 관객 역시 이 둘에 관한 호기심과 애정도 증폭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댄스 레슨’이라는 명목으로, 댄스라는 소재적 볼거리에 모든 걸 걸지 않았다는 점이다. 댄스 말고도 두 사람의 캐릭터, 이를 드러내는 언중유골의 대사, 팽팽하게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사람의 관계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연극이다. 아마 데뷔 40주년을 맞은 배우 고두심, 뮤지컬어워즈 남우 신인상의 지현준의 연기력과 호흡이 한층 감동을 더한다.
지나치게 발랄하고, 성적 농담도, 막말도 거침없이 쏟아내는 엥그리(!) 게이 댄스 강사,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햅번 만큼 우아하지만, 상황에 따라 성경 구절에 빗대 잔소리할 수 있는 깐깐한 목사 아내. 이 두 캐릭터는 얼핏 보면 전형적으로 느껴지지만 막을 거듭해갈수록, 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관객에게 친숙해 질수록 입체적이고 깊이 있고 매력 있게 다가온다.
게이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겪었던 사랑의 상처, 모든 것을 이해해줬던 엄마에게 어엿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죄책감을 안고 있는 다니엘의 속사정을 알게 될 때, 사회가 요구하는 정숙한 규범에 맞춰 살기 위해 애썼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삶의 환경 때문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릴리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게 될 때, 관객은 그 인물들과 내밀한 소통을 경험하게 된다.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와 깊이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관객에게도 여섯 번의 댄스 레슨이 필요하다. 한 명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시간이다.
춤, 온전히 지금 이 순간을 사는 행위
춤을 춘다는 행위는 무엇일까? 지금 맞은 편 상대와 손을 잡고 음악에 몸을 싣는 것. 그때 그때 다가오는 리듬과 음표에 맞추어 발을 움직이고 동작하는 것은, 온전히 지금이라는 순간을 살아가는 행위가 아닐까?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휙휙 스쳐 가는 느낌이야.” 과거의 아픈 기억, 미래의 헛된 기대 사이에서 어디 하나 마음 놓을 곳 없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이 순간 떨어지는 음표에 몸을 맡길 때 비로소 지금을 살아가게 된다.
여섯 번의 댄스 레슨은, 음악이 끝나고 춤이 멈춘 이후에도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고민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7월 24일에 시작해 9월 2일까지 두산 아트센터에서 이어질 댄스 레슨, 그러니까 결코 춤만 가르치는 댄스 수업은 아닌 거다. 황혼의 여인과 소외된 남자의 이야기, 엄마랑 보면 좋지만, 꼭 엄마랑 봐야 하는 연극만도 아니다. ‘이 순간 온전히 살고 있다!’고 외치기에 뭔가 석연찮은 기분이 드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레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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