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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34범 남편과 진정한 사랑을 깨닫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다 - 김숙향 교사의 결혼 이야기 2 진정한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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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서는 어른과 아이가 모두 같다. 한 사람도 사랑해보지 않았던 교사 혹은 부모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혹은 내 자식을 사랑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 김숙향 교사가 교육 센터의 500명 아이들을 모두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스스로 자신을 낮춤으로 사랑은 더 아름다워진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은 바다다. 바다는 낮기 때문에 모든 물이 흘러들어간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세상의 모든 물이 흘러들 수 있는 이유는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부부 역시 마찬가지다. 서로가 낮은 자세로 사랑을 해야 서로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들은 서로 자세를 낮춰 서로를 받아들였다. 때문에 그와 그녀의 결혼생활은 한 마디로 행복 그 자체였다. 이 둘의 모습은 천상의 부부 같았다. 세상의 그 어떤 고난도 이들의 행복을 막을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대체 세상의 어느 부부가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행복에 아이의 탄생도 큰 영향을 끼쳤다.

결혼할 당시 그녀가 34살이고, 그가 48살이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아이를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임신했다. 임신 소식을 들을 때부터 남편 호세 발라이스는 굉장히 들떠 있었다. 열 달이 지나 아이가 태어나자 그는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아이에 푹 빠져 지냈다. 가정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던, 사랑을 주거나 받은 적이 없었던 그에게, 그를 꼭 닮은 아이의 탄생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숨을 쉬며 살아간다는 게 축복이었다. 그는 늘 아이를 바라보며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믿겨지지 않는다’며 감격스러워했다. 그리고 매일 밤 잠들기 전 그녀에게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그도 사람답게 산다는 게 뭔지 조금은 알게 된 것이다. 김숙향 교사는 센터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웃으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생명을 버릴 정도로 깊은 사랑의 의미를 터득한 사람이고, 둘째는 사랑이 뭔지 모르기에 무지한 마음에 생명에 대한 고귀함을 못 느끼는 사람이다. 그녀의 남편인 전과 34범의 남자는 후자의 삶을 살았다. 사랑에 무지했으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사랑을 몰랐기에 자신의 생명과 남의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둘은 양 극단에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가장 높은 세계로 이끌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더이상 그들은 자세를 낮추지 않았다.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이 단절됨과 동시에 위기가 찾아왔다. 첫 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가난해도 그런 대로 견딜 만했는데, 그들은 무려 세 명의 아이를 낳게 되었다. 가난의 고통, 이건 한 마디로 지옥이었다. 그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 곳곳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 서로에게 적응하는 게 어려웠다.

일단 남편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살았던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문제는 일상에 있었다. 그는 이사를 할 때나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같은 일상의 문제들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아이들이 생기고 교육을 받아야 할 나이가 되니, 평균 일 년에 한 번 정도 안전한 곳으로 이사를 가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짐을 어떻게 싸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것을 그녀가 주도해야 했다. 그런 횟수가 늘어날 때마다 그녀의 짜증도 늘어갔다.

경제적인 문제도 그들을 힘들게 했다. 원래 가진 것 없이 시작했지만, 둘째와 셋째를 낳고 그들은 경제적으로 더욱 힘들어졌다. 이사를 갈수록 조금씩 수도 마닐라를 벗어나야 했고, 결국엔 마닐라에서 차로 두 시간 이상 걸리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집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곳이었다. 그들은 이런 현실 앞에 무너졌다. ‘여기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어’라는 생각이 아닌 ‘이런 곳에서 우리가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긍정적으로 삶을 바라볼 여유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들은 초라했다. 빈민을 돕기 위해 온 그들이지만 이제 그들은 빈민과 다를 바 없었다. 이삿짐이 집에 다 들어가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반 이상을 버려야 했다.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버리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가장 중요한 봉사와 사역에 관련된 부분에서도 다른 점이 많았다. 그녀는 누군가 잘못을 하면 개인의 잘못을 하나하나 따져서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무조건 용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다른 방법 때문에 다투는 횟수가 늘어났다. 성격상 그들은 완전 극단에 서 있었다. 전과 34범의 삶을 회계하긴 했지만 기질은 버리지 못했다. 그에게는 여전히 조직폭력배 두목 기질이 남아 있었다. 때문에 ‘미안하다’라는 말을 잘 하지 못했다.

김숙향 교사는 살면서 남편에게 제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 자신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은 화가 날 때면 밖에 나가서 기분이 풀리면 집에 돌아왔다. 신경전을 벌이며 같이 있는 것보다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 서로가 자신의 화를 내려놓을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 그도 그녀도 화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다투고 나면 일주일을 이야기하지 않기도 했다. 화를 가라앉히는 데 필요한 시간은 점점 길어져만 갔다. 더구나 한 달에 한 두 번은 반드시 싸웠고, 경제적으로도 점점 힘들어져 갔다. 그들은 이건 정상적인 부부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남편을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처음 그녀는 남편을 받아들이는 데 긴 시간 망설였다. 자신보다 나이가 14살이나 많은 조직폭력배 두목 출신, 게다가 살인미수 혐의 등 전과 34범인 그를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교도소에 복역할 때는 교도관 살인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복역 중 과거를 반성하고 특별사면된 뒤 종교에 귀의해 목사가 됐다지만, 34살의 젊은 여자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충격적인 과거다. 가족과 친구들의 반대도 거셌다.

하지만 그는 매일 5시간을 운전해서 고아원에 찾아와, 아이들과 아이처럼 순수하게 어울렸다. 그녀는 그 순간을 기억해냈다. 처음엔 그를 무서워했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따르고, 묵묵히 봉사활동을 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변하지 않는 그의 모습과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그의 얼굴을 생각해냈다. 그 순간 그녀는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다.




‘진정한 사랑은 내게 꼭 맞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게 아니라,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에게 내가 먼저 손 내미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다. 남편은 평탄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의 일반적이지 않은 특이한 생각과 생활습관을 이해하고, 그런 그에게 끊임없이 손을 내밀어야 했다. 좀더 자신을 낮추고 그를 바라봐야 했다. 그렇게 마음가짐을 바꾸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일상생활에 대해 잘 모르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게 만들어주지 못하는 그를 그대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를 더 깊게 사랑할 수 있는 감정이 싹텄다. 그들은 다시 손을 잡았다. 이번엔 좀더 따뜻한 사랑을 담아 서로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서로가 손을 잡자 사랑은 깊고 단단해졌다. 그도 변했고, 그녀도 변했다. 물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판잣집 쪽방에 살아도 그들은 행복했다.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에서 받은 후원으로 마을 외곽에 있는 건물 일부를 빌려 아이 100명을 교육시키고 밥을 먹이는 교육봉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가만 놔두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녀 곁에 그가 없다. 그는 2008년 아이들에게 먹일 식재료를 공급하기 위해 새벽부터 차를 타고 농장으로 달려가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인생 최대의 슬픔을 느꼈다. 사랑은 그렇게 그녀를 떠나갔다. 매일 밤 그녀는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장을 넘기듯 그를 기억해냈다. 하지만 그를 기억해내려 할수록 눈물이 기억의 틈을 틀어막았다. 가라앉아도, 또다시 가라앉아도 그리움의 바닥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그녀는 생의 모든 엔진을 끄고, 흔들리는 마음을 따라 미친 듯 함께 흔들리고 싶었다. 막막했던 지난날들을 힘들게 함께 지내온 남편 생각이 날 때면, 온몸이 심장이 된 듯 무섭게 두근거렸다. 그가 없으면 나도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슬픔은 생각만큼 오래가지 않았다. 몇 달 후, 그녀는 떠난 그를 인정했다. 그녀는 다시 힘을 내서 아이들을 위해 교육 사역을 했다. 그녀는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이 일을 내가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떨어져 있어도 떨어져 있는 게 아니다.’

김숙향 교사와 호세 목사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우린 굉장한 감동을 받음과 동시에 안도했다. ‘그들 부부도 한국의 보통 부부와 다를 게 없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가졌다. 그들이 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들은 엄청난 사랑으로 모든 걸 용서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난 초능력자가 아니었다. 한국의 보통 부부처럼 만나고 사랑하고 다투는 과정을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한 번의 다툼이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빈번하게 있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밖에서는 행복한 척 연기를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원수처럼 지내는 부부들도 있다. 김숙향 교사와 호세 목사 부부 역시 약간의 다툼은 있었지만 다시 서로를 돌아보고 아꼈다.

그들이 그럴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그들의 사랑에는 사랑 그 이상의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사랑해’ 하나로 끝나야지, ‘사랑해, 네가 예뻐서’ ‘사랑해, 네가 돈이 많아서’와 같은 단서가 붙으면 안 된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자녀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엄마 사랑해요, 용돈을 잘 주니까’라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서 당신은 사랑의 감정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건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사랑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 부모의 책임이다. ‘사랑해요, 우리 엄마니까요’라는 대답이 나와야 그게 진짜 사랑이다.

사랑 안에서는 어른과 아이가 모두 같다. 한 사람도 사랑해보지 않았던 교사 혹은 부모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혹은 내 자식을 사랑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 김숙향 교사가 교육 센터의 500명 아이들을 모두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불같은 단 한 번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톤도 교육 센터도 없었을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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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지성 김종원

이지성
1993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 소설, 교육, 자기계발, 인문, 기독교, 어린이 등의 분야에서 스물다섯 권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대표작으로 『꿈꾸는 다락방』 시리즈,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리딩으로 리드하라』 『독서 천재가 된 홍대리』(공저) 등이 있다. 주요 저서들은 미국,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등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자기계발과 인문고전 독서의 바탕은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실천하기 위해 팬카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서울역, 왕십리, 대전, 대구, 부산 등지의 빈민촌에서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 자료를 팬카페에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그 밖에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와 함께 세계 최빈국 어린이들을 일대일로 후원하고, 마을에 우물을 파고 학교와 병원을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김종원
‘자기계발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믿는다. 모든 문제를 환경 탓으로 돌리며 불평으로 일관하는 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롤 모델을 찾아내 치열하게 연구한다. 현재 경제경영, 자기계발 관련 콘텐츠 디렉터 및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이부진 스타일』 『삼성가 여자들』 『전략기획자로 승부하라』 『킹피셔』(공저) 『블루마켓을 찾아라』(공저) 등이 있으며, 이중 일부가 일본, 중국, 대만 등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사진/ 유별남
한 장의 그림을 그리듯 심혈을 기울여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 다른 문화 속에서 같은 삶의 무늬를 찾아내는 그의 사진은 무척 정적이면서도 밝고 따뜻하다. 지은 책으로 『중동의 붉은 꽃, 요르단』, 사진 작업을 함께한 책으로 『신의 뜻대로』 『아이 러브 드림』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등이 있다. 'EBS 세계테마기행'의 요르단, 가이아나, 인도 편에 출연했으며, 'In PAKISTAN'(파키스탄 국립현대미술관) 외 다수의 개인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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