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9회 연재를 통해 톤도 교육센터의 교사들 조나 이베사테, 넬슨 알비올 그리고 셀리아 울수아의 집을 방문했을 때 느낀 감정과 생각을 이야기했다. 사실 우리는 그때 받은 충격을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남부럽지 않은 월급을 받으며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그들. 지긋지긋한 빈민가 톤도를 떠날 수 있지만 자처해서 여전히 빈민으로 살아가는 그들. 돈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이지만, 그들에게 있어 ‘돈’은 단순히 원하는 것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돈은 그들의 밑바닥 인생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때문에 일반적인 톤도 빈민들에게 돈은 자신의 인생과 가족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우리가 여전히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놀랍게도 톤도의 교사들은 ‘돈’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이들은 ‘돈’보다 훨씬 위대한 가치, 오직 진정한 교육을 위해서만 일한다. 때문에 그들 삶의 모든 초점은 돈이 아닌 아이에게 맞춰져 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영혼으로 깨닫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빈민가 톤도의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톤도의 교사들 ⓒ유별남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전형적인 한국 주입식 교육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때문에 우리는 톤도의 이런 교육관은 들어본 적도 없고 이런 교육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접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믿기 어려웠고, 우리는 자꾸 이들을 검증하려고 했다. 하루는 센터의 수업이 다 끝난 후, 여덟 명의 교사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았다. 미안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그들의 사랑의 크기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모든 교사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당신이 가르치는 아이가 걸어가고 있는데, 아이 뒤로 트럭이 달려오고 있다. 당신은 몸을 던져 아이를 구할 수 있겠는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돈 문제에 얽혀 가족도 죽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답이 뻔한 질문이기도 했다. 그들의 대답이 정말 궁금했다. 게다가 이 교사들은 먹고사는 것 자체가 힘든 환경에서 공부하고, 이제 좀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이대로 죽기엔 세상에 미련이 많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표현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한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 죽겠습니다.”
‘충격적’이었다. 방송국에서 취재를 왔다면,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에 약간 과장해서 ‘죽을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방송국 취재도 아니고, 그들에게 아무런 이득도 돌아가지 않는 자리다. 게다가
“에이 정말?”이라며 반박할 수조차 없는 그들의 진지한 표정은 할 말 잃게 만들었다. 우리는 교사들이
“아이들을 위해 죽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들의 눈과 음성에서 헤아릴 수 없는 깊이의 사랑을 느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그때 그들이 전해준 마음의 소리를 이렇게 기억한다.
‘저는 아이들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아이들을 위해 죽겠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죽는다는 것은 제 삶에 자랑할 일이 생긴 것이니, 위로받을 일이 아니라 축하받을 일입니다. 저는 제 인생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겠습니다. 그럼 죽어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게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제 평생의 가장 값진 선물이니까요.’
톤도의 거대한 쓰레기산. 이곳에서 아이들이 살아간다. ⓒ유별남
톤도 교사들의 깊은 사랑을 느끼며, 생각난 사람이 한 명 있다.
1865년, 어느 혹독한 겨울. 한 여인이 태어난 지 20개월도 되지 않은 아기를 안고 추위에 떨고 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녀는 절규한다. 힘을 다해 소리치며 구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안타깝지만 몇 시간 후, 그녀는 얼어 죽은 채 발견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시체가 발견되었을 당시 그녀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왜였을까?
그녀가 꼭 안고 있는 천을 헤쳐 보았다. 거기엔 갓난아기가 있었고, 놀랍게도 아기는 어머니의 옷에 감싸인 채 여전히 살아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아이는 얼어 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엄청난 사랑을 가슴으로 기억하고 성장한 그는 51년 후, 영국의 수상이 된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다. 그는 자신을 위해 생명을 버린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하며, 독학으로 치열하게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평생 노동자를 위해 살며, 국민보험법과 실업보험법 등을 성립시키는 등 영국 사회보장제도의 기초를 확립시켰다. 자신이 받은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그대로 나눠준 것이다.
결국 그의 어머니가 그 추운 겨울 벗어준 옷은 그저 단순한 희생이 아닌 사랑의 교육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이를 위해 책 한 줄 읽어준 적도 없었다. 그저, 뜨거운 사랑을 전했을 뿐이다. 자신의 몸이 얼어가는 것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며 그저 희생한 게 아니라, 아이를 살릴 수 있어 행복한 웃음을 짓는 사랑을 한 것이다.
톤도의 교사들은 더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고, 톤도를 떠날 수 있지만 빈민이 가득한 톤도에 남아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리고 그들은 결코 그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의 부모는 자녀에 대한 투자를 사랑과 간혹 착각하는 것 같다. 노후를 써야 할 돈을 자식의 학비에 보태며 희생하고, 내 꿈을 접고 자식을 위해 함께 유학을 떠나며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 사랑이 아닌 희생을 하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잠깐 양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이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희생했다’고 말하는 건 정말 곤란하다.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는 부모의 말에 아이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사랑으로 받는 부담과는 전혀 다르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부담감이다. 그런 이유로 아이들이 탈선을 하고 급기야는 자살까지 하게 된다.
결국 톤도의 아이들은 사랑을 받고 자라지만 한국의 아이들은 ‘부모의 희생’으로 자란다. 이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돈을 버는 일이든 교육하는 일이든, 그 주체인 인간에게서 사랑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건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산다’는 속담은 이제 다른 뜻으로 변한 듯하다. 여기에 공부를 대입하면 어떤 공식이 만들어질까? ‘개같이 공부하면, 짐승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한국에는 짐승 같은 아이들이 굉장히 많다.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 약한 사람을 배려하며 인격적으로 성숙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한국의 학생들은 오직 공부만 강요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사람이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서 무지한 경우가 적지 않다. 공부만 잘하면 최고인 줄 아는 아이들도 많이 있다. 물론 학생에게 우등생이 되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톤도 교육센터에는 자신이 공부를 잘한다고 뽐내는 아이들이 없다. 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톤도와 자신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와 부모뿐이다. 그들은 높은 성적을 받든, 대회에서 상을 받든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언제나 ‘별것 아닌걸요, 뭐’라고 말한다. 그들에겐 성적보다는 하루하루 선생님들과 사랑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이 기쁨은 깊은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만이 느낄 수 있다. 문득 궁금해졌다.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어떤 기질을 가지게 될까? 우리는 톤도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습에서 일곱 가지 기질을 발견했다.
1.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강하다
2. 말과 행동이 정직하다
3. 언제나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한다
4. 고장 사람들을 가족처럼 사랑한다
5. 밝고 명랑하다
6.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있기에 위의 여섯 가지를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7. 나를 사랑한다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 모든 건 거기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겠다는 교사들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고, 위의 여섯 가지 긍정적 기질을 갖게 된다.
톤도 교사들의 아이들을 위해 죽겠다는 고백은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보통 사람으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아이들을 향한 그들의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에서 교사를 했던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이지성) 아이가 자동차 사고로 숨지는 가슴 아픈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또다시 그런 사고가 일어날까봐 걱정스러웠던 나는 학교 주변을 샅샅이 조사했다. 그 결과 학교 주변에 신호등이 최소한 두 개 이상 필요하다는 결론이 났다.
이 문제의 심각성을 담당 선생님에게 말하니, 그는 녹색어머니회가 스쿨존을 설치한 적이 있다며 녹색어머니회 회장님과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하지만 녹색어머니회 회장님이 신호등을 설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게 아니었다. 그래서 경찰서에 알아보니 시청에 알아보라고 하고, 시청에 전화하면 경찰서 담당이니 그쪽으로 전화해보라고 했다. 나는 갑자기 내가 탁구공이 된 기분이 들었다. 아이의 사망 사고를 자세히 설명하며 신호등 설치의 필요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아무도 그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몇 달 넘게 나는 헛고생만 했고, 내가 교사를 그만둘 때까지 신호등은 설치되지 않았다.
톤도의 아이들과 함께(저자 이지성) ⓒ유별남
톤도의 교사들과 한국의 교육 관계자들의 차이를 여기에서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톤도의 교사들은 오로지 아이의 미래만을 생각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교육엔 큰 일 작은 일이 따로 없다. 오직 아이 앞에서의 사랑만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이 엄청난 사랑을 만들고 아이들에게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톤도 교사들이 했다면 우리도 분명 할 수 있다. 이에 김숙향 교사는 한국의 부모들에게 이런 조언을 전한다.
“부모가 너무 유행을 따라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주위에서 유학을 보내든, 좋은 학원을 보내든 그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지 마세요.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학원을 찾는 일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을 찾는 일입니다. 한국에도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좋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 자신의 방향성과 목적 그리고 준비입니다. 이것을 생각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한 일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내가 원하는 자녀가 되기를 강요하지 마세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보여주는, 아이들이 잘하는 것이 부모가 원했던 것들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하지 마세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사랑하고, 아이가 잘하는 것을 사랑하고, 아이의 현재와 미래를 사랑해 주세요.”
우리는 이것이 진정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당장의 성적이 아닌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는 교육. 바로 이 마음이 톤도의 기적을 만드는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부모와 교사 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마음이다. 그 마음만 있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기적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만 있다면 기적은 곧 현실이 된다. 나는(김종원) 꿈을 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일 년 후에 맞이할 현실 혹은 3년 후에 맞이할 현실이라고 부른다.
김숙향 교사는 톤도에서 교육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사실 아무도 그녀의 꿈을 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되지 않을 거야, 저러다 말겠지”라는 말만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침내 ‘불가능’이라는 말을 딛고 일어섰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꿈을 꾸지 않는 여기 톤도에 꿈을 심었고, 그게 현실이 되고야 마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사랑의 마음이 기적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결코 풀리지 않는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그건 잘 알겠다. 하지만 ‘그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풀리지 않았다. 그들은 돈과 명예 모두를 마다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을 움직이는데, 돈도 명예도 아닌 더 강력한 것이 있단 말인가?
톤도 아이들과 살아가며 톤도의 교육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김숙향 교사 ⓒ유별남
모든 사랑은 김숙향 교사로부터 시작되었다. 김숙향 교사의 사상과 삶에서 비롯되었다. 그럼 김숙향 교사의 마음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성경』이다. 김숙향 교사의 진짜 직업은 선교사다. 사실 그녀는 정식 교육을 받은 교사가 아니다. 그녀는 필리핀 톤도에 예수를 전하러 왔다. 온갖 비리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목사들처럼 예수의 이름을 걸고 어떤 세속적인 목적을 얻으려 한 게 절대로 아니다. 그녀는 인류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살기 위해 톤도에 갔다. 즉 그녀의 교육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육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녀는 교육을 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을 뿐이다.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김숙향 교사의 마음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본질이다. 이것을 모르고 그녀의 교육법을 따라하는 건, 시동을 켤 줄도 모르면서 운전을 하려는 것과 같다.
이쯤이면 ‘그렇다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라고 묻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예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너무 추상적이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김숙향 교사의 교육이 마치 다른 별세계의 이야기처럼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도 희망이 있다. 물론 그 형태와 깊이는 다르겠지만, 예수의 사랑과 김숙향 선교사의 교육방법이 공존하는 훌륭한 교육기관이 한국에도 있다. 한국 어디를 가든 사람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이 교육기관이 반드시 있다. 분명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도, 여러 곳이 있을 것이다. 그 최고의 교육기관이 어디인지는 다음 연재에 소개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