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가지의 골목길을 걷다 우연히 오르차테리아Horchateria 간판을 발견했다. 유레카~! 환호성이 절로 터졌다. 사막에서 샘솟는 오아시스를 발견한 느낌이다. 오르차테리아는 오르차타Horchata를 파는 곳이다. 스페인에서는 단어 뒤에 ‘리아ria’가 붙으면 그 무엇을 파는 곳을 뜻한다. 예를 들어, 파나데리아Panaderia는 빵Pan을 파는 곳인 것처럼.
오르차타는 며칠 전 관광 안내소 직원이 내게 꼭 먹어보라고 권해준 발렌시아 전통음료다. 발렌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음료는 물론 상그리아
Sangria지만, 상그리아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졌고 또 스페인 전역에서 파는 탓에 꽤 익숙하다. 하지만 오르차타는 발렌시아에서 처음 알게 됐다. 이슬람교도가 발렌시아를 정복한 8~13세기에 처음 생겨났다니 그 맛이 어떨지 더 궁금했다. 사실 아까 그 식당에서 수첩에 적어둔 ‘Horchata’를 보여주며 물었더니 안 판다길래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발견하게 될 줄이야. 맛없는 파에야에 거금을 날린 보상을 이렇게 받나 보다. 애써 흥분을 감추고 가게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계산대 뒤에 음료 냉각기에서 돌아가는 게 오르차타인 것 같았다. 색깔이 우유랑 비슷한데 가격이 1유로 미만으로 아주 싼 편이다. 무슨 맛일까? 일단 가장 작은 크기로 주문하고 가게 안을 둘러봤다. 한 테이블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오르차타를 마시고 있다. 양이 꽤 되는데 빨대로 순식간에 후루룩 빨아들인다. 다른 테이블에 앉은 이들도 동네주민인 것 같다. 모두 대화를 나누기보다 오르차타를 마시는 데 열중한다. 아, 나는 이처럼 현지 사람들이 열중하는 음식을 볼 때면 가슴이 뛴다. 그 순간 오르차타의 등장! 두근두근. 나도 저들처럼 빨대로 죽 빨아들인다. 목 안에 부드럽게 넘어오는 시원한 맛. 와, 맛있다! 달콤하고 고소하면서 부드럽다. 뜨거운 태양 아래 걷느라 지쳤을 때 마시면 최고일 것 같다. 에너지가 마구 솟는다.
오르차타는 아몬드 가루, 참깨, 쌀, 보리를 넣어 만든단다. 한여름에 얼음 동동 띄워 먹는 우리나라의 미숫가루랑 비슷한 느낌이다. 미숫가루보다 훨씬 묽지만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닮았다. 사람들이 오르차타와 함께 추로스 비슷한 과자를 먹길래 나도 따라 주문했다. 파르톤
Farton이라고 부르는 이 과자는 밀가루에 우유, 설탕, 달걀을 넣어 만든 길쭉한 빵으로 글레이즈 코팅이 돼 있다. 달콤한데 역시 달콤한 오르차타와 궁합이 아주 잘 맞는다. 발렌시아 사람들은 오후 간식으로 오르차타와 파르톤에 푹 빠져 산다. 발렌시아를 방문한다면 발렌시아만의 명물인 오르차타와 파르톤을 꼭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이다.
다음 날은 발렌시아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마지막 추천식당은 구시가지 한가운데에 있다. 점심시간에 맞춰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어느새 식당을 찾은 직장인들로 북적거렸다. 여행자들에게 잘 알려진 식당이라는데 현지인까지 바글거리는 걸 보면 맛있는 식당이 틀림없다. 느낌이 좋다. 이번에 주문한 메뉴는 닭고기 파에야. 발렌시아 사람들은 닭고기나 토끼고기로도 파에야를 만든다고 한다. 역시 메뉴판에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또 저녁으로 남은 파에야를 먹어야 하나 걱정하면서 살짝 물어보니 1인분도 된단다. 기분이 좋아진다. 파에야를 기다리는 동안 전식을 먹으며 식당 분위기를 살폈다. 타일로 장식된 계단이며 커다랗고 화려한 접시들로 꾸며진 벽이며 스페인 분위기가 물씬 난다.
잠시 뒤 무쇠 팬에 담긴 따끈따끈한 파에야가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올라온다. 냄새도 좋고 때깔도 좋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니 음, 역시 아주 맛있다. 채소와 고기가 섞인 사프란 밥에 간이 잘 뱄고 쌀도 적당히 잘 익었다. 물을 머금은 통통한 쌀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동안 먹어본 파에야와는 확실히 다르다. 맞아, 원조란 바로 이런 맛이다. 발렌시아 음식을 향한 나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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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소도시 여행 박정은 저 | 시공사
중남미 여행 중 스페인어를 배우며 시작된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은 저자를 마침내 순례자의 길로 이끌었다, 순례자의 길은 저자에게 큰 깨달음이자 행운의 길이었다. 이 길에서 저자는 스페인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에 감동하고, 감칠맛 나는 음식에 매혹당했다. 그리고 몇 년 후, 저자는 다시 스페인을 찾았다. 이번에는 스페인 소도시 이곳저곳을 걸어다녔다. 마치 둘시네아 공주를 찾아 걸었던 돈 키호테처럼. 흔히 정열, 사랑, 자유로 표현되는 스페인은 감히 한 단어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