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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열풍 속 ‘서태지 데뷔 20년’ 주목해야 하는 이유

대한민국 강타한 복고열풍의 명과 암 복고가 ‘진(進)’이 되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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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와 관련해 음악계에서 티아라를 순간 발화의 지점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좀 더 의미 있는 계기나 전기(轉機) 같은 용어를 동원하지는 않는다. 더 큰, 더 의미 있는 ‘현상’이 복고 흐름의 전체적 윤곽을 잡고 그 뒤 이런저런 연결고리와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조금은 갑작스런 ‘쎄시봉’과 ‘나는 가수다(나가수)’와 같은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위력적 부상이었다.

무수히 쏟아져 나온 근래 가요계의 걸 그룹들 가운데 ‘티아라’가 나름 탄탄한 인기 지평을 확보한데는 지난해 「롤리 폴리」의 히트가 크게 작용했다. 이 곡은 올해 초 티아라의 신곡 「러비 더비」가 방송과 음원 다운로딩 차트의 정상으로 솟구치는데 밑거름 역할을 했으며 4월 총선에서 지원유세에 나선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만약 투표율이 70%를 넘으면 티아라의 「롤리 폴리」 춤을 추겠다.”고 발언하게 할 만큼 보편적 인지도를 과시했다.

이 곡이 집단 호응을 일으킨 이유는 노래도 노래였지만 텔레비전을 통해서 소개된 티아라 멤버들의 의상과 춤 때문이었다. 땡땡이 무늬의 블라우스, 맥시스커트, 선글라스, 스카프, 교복, 데님 등을 착용한 의상은 정확히 1980년대 풍이었다. 아이돌 댄스 리듬에 정나미가 떨어진 기성세대는 과거 학창시절의 추억을 자극하는 것에 모처럼 호감의 시선을 보였다. 언론과 누리꾼들은 복고열풍이라고 열을 올렸다.

마케팅을 위한 순간 선택이 분명했음에도 기발했다고 할 수 밖에 없는 티아라의 복고 패션은 점차 확대되어가는 복고에 대한 관심의 범위 내로 우리가(혹은 언론이) 대대적으로 몰려가는 열풍에 길을 터주었다. 그것은 ‘1980년대로 돌아가기’였다. 「롤리 폴리」가 바람을 일으키기 2개월 전 극장가에서는 <써니>의 흥행대박이 터졌다.

이 영화에서는 보니 엠의 「써니(Sunny)」, 리처드 샌더슨의 「리얼리티(Reality)」, 신디 로퍼의 「타임 애프터 타임」(영화에서는 ‘턱 앤 패티’의 것으로 나왔지만), 나미의 「빙글빙글」 등 1980년대에 전파와 음반을 통해 청소년들 사이에서 사랑받았던 가요와 팝이 무더기로 흘러나왔다. 30-40대 주부들은 스토리와 사운드트랙은 물론, 극중 배우들의 옷차림에도 회상에 젖었다. 「롤리 폴리」가 <써니> 뒤에 위치했기에 누군가는 「롤리 폴리」의 티아라를 “써니의 도플갱어”로 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복고와 관련해 음악계에서 티아라를 순간 발화의 지점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좀 더 의미 있는 계기나 전기(轉機) 같은 용어를 동원하지는 않는다. 더 큰, 더 의미 있는 ‘현상’이 복고 흐름의 전체적 윤곽을 잡고 그 뒤 이런저런 연결고리와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조금은 갑작스런 ‘쎄시봉’과 ‘나는 가수다(나가수)’와 같은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위력적 부상이었다.


쎄시봉과 나가수

2010년 가을 60대의 노병들인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이 MBC의 예능프로 <놀러와>가 마련한 자리 <쎄시봉 콘서트>에 출연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유려하고 로맨틱한 노래를 선사하면서 새파란 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충격과 경이를 몰고 왔다. 이 느닷없는 흐름은 저 옛날 1970년대에 득세했던 포크송의 재림(再臨)이었다. 해를 넘겨 설 특집 TV프로로 확대 편성되면서 더 불길이 높아 오른 쎄시봉 바람은 무교동 소재의 업소 ‘쎄시봉’의 명물이자 당대의 천재인 이장희를 불러들였다.

전국의 악기점들은 고객들이 포크의 중심 악기인 통기타를 일렉트릭 기타보다 더 찾는 것을 보고 쎄시봉 바람을 체감했으며 쎄시봉 시대의 일원인 「물 좀 주소」의 한대수가 지난해 생애 첫 디너쇼를 하게 된 것도 쎄시봉 열풍 덕이었다. 쎄시봉 가수들의 인기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한인들 사이에서도 꼭짓점으로 달아올랐다. 쎄시봉에서 주목할 것은 상기했듯 젊은이들이 반응했다는 사실이다.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이장희의 포크송은 젊은 세대의 청 감수성으로는 과거의 케케묵은 음악, 그들 말로 ‘구린’ 음악일 수 있음에도 소통이 이뤄졌다고 할까.

쎄시봉 열풍은 따라서 젊은 세대 기준으로 가장 멀리 거슬러간 트렌드로 평가받는다. (송창식과 윤형주가 1947년생이라면 현재 대학생인 1990년생 기준에서는 아버지보다 나이가 훨씬 많다) 보통은 길어봤자 한 세대 전으로 복고가 이뤄지는데 반해 1.5세대 혹은 2세대 위로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쎄시봉은 새천년 초입에 불었던 ‘7080’ 붐과는 성격이 다르다. 7080 수요자는 대부분 그 문화를 체험한 어른들이었고 7080 트렌드 정체 역시 기성세대의 문화적 역공으로 규정되었다. 쎄시봉은 젊은이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이런 일은 국내 대중음악사상 거의 최초였다.

더 무게가 둔중한 흐름은 하지만 <나가수> 그리고 <슈퍼스타K>, <불후의 명곡>, <위대한 탄생>, <케이팝 스타>와 같은 TV 프로가 꾸려낸 오디션 열풍이었다. 2011년은 ‘오디션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당장 지금도 방송은 오디션 형식의 프로에 시청률을 기대하고 있다. 오디션 프로의 순기능은 비주얼과 댄스가 아닌 고전적인 가창력을 음악의 기본으로 소환한 것도 있지만 편곡의 중요성과 함께 잊을 뻔했던 무수한 오래된 명곡이 속속 우리 곁으로 돌아오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무명과 스타 가수 가릴 것 없이 경합에 참가한 출전자들은 10년 전에서 심지어 30년 전에 유행한 노래들을 불렀다.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남진의 「님과 함께」, 신중현의 「미인」, 산울림의 「회상」,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 같은 올드 송이 돌아온 것이다. 어떤 복고의 흐름도 오디션 프로가 주조해낸 되돌아가기 물줄기에 주도권을 내주어야 했다. 젊은 직장인들의 대화 콘텐츠는 갑자기 소녀시대, 투애니원, 빅뱅, 비스트 등 아이돌 그룹의 신곡이 아니라 시차가 족히 20년은 나는 왕년의 가요 명곡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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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의 흐름은 완연하다. 35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건축학 개론>은 1994년에 나온 남성 듀엣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삽입해 영화 팬들에게 추억의 감동 판을 마련했다. 언론은 이 곡을 계기로 ‘돌아온 과거’의 시대적 중심이 ‘7080’에서 ‘8090’으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복고’의 시점이 점점 가까운 과거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주류권이 아닌 문화예술 소비의 핵심세력이 20-30대라면 그들에게는 7080보다는 8090이 더 친근할 수밖에 없다.

올 봄의 가요계를 장악한 3인조 그룹 ‘버스커버스커’ 선풍도 복고와 궤를 같이 한다. 그들의 히트곡 「벚꽃 엔딩」과 「꽃송이가」는 통기타와 하모니카, 멜로디언과 같은 악기를 써서 복고현상에 무디고 신곡에만 민감한 젊은이들에게 인연이 없었던 어쿠스틱 질감을 선사하고 있다. 그들에게 닿아있는 음악은 현란하고 아이돌 그룹의 떼춤과 기계적인 전자리듬이었다. 어쿠스틱은 복고와 어깨동무 사이의 개념이다. 버스커버스커는 어쿠스틱과 복고의 충격으로 그들의 청각을 흔들었다.


전설의 소환인가, 보수적 반발인가

복고는 2012년의 각별한 현상일 수 없다. 복고는 동서를 막론하고 대중음악이 글로벌 차원에서 산업으로 가동된 194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찾아왔다. 대중음악은 한마디로 ‘앞으로 차고 나가는 것’과 ‘뒤로 되돌아가는 것’과의 끝없는 격돌과 주도권 다툼이라는 지도를 그려왔다. 중심은 늘 앞으로 뻗어가려는 흐름이 쥐고 있지만 너무 그 진격과 진보의 흐름이 거세면 그 시점마다 뒤로 되돌아가려는 관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복고는, 지금의 음악부문 복고는 성질상 아이돌 그룹의 후크 송, 일렉트로닉 리듬이나 섹시 군무와 대별된다는 점에서 그 키워드는 ‘반격’일지도 모른다. 틴과 20대 중심의 젊은 음악이 패권을 행사하는 것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진행을 역으로 돌려 순수했던 옛날로 가는 것이라고 할까. 하지만 이러한 정리는 음악의 다면적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매우 거친 접근법이다. 그렇다면 대놓고 복고 패션을 내건 티아라의 「롤리 폴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이돌 후크송의 포문을 연 ‘원더걸스’의 「텔 미(Tell me)」가 실은 1986년 미국의 댄스가수 스테이시 큐가 발표한 「투 오브 하츠(Two of hearts)」에 감수성을 의존하고 결국은 부분을 샘플링했다는 것을 대부분이 안다. 실제로 아이돌 기획사 JYP의 음악마스터 박진영은 철저한 1980년대 팝 감성의 소유자다.

선두 아이돌 그룹마저 복고와 손을 잡은 것은 누구 할 것 없이 복고를 마케팅의 필수요소로 활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복고가 지금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관통하며 사용되어오고 있는 마케팅의 원천적 선택이라는 것이다. 복고의 강점은 기성세대에게 반가움을 제공할 뿐 아니라 새로운 세대에게 전설을 붙여준다는데 있다. 되돌아가기의 흐름이 없다면 옛날의 콘텐츠는 박제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서구 음악계는 적당한 때를 잡아 에디트 피아프, 비틀스, 퀸, 아바,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와 같은 팝 레전드들을 토픽으로 포장해 젊은 음악수요자들과의 접점을 주선한다. 올해는 역사 최강의 록밴드 롤링 스톤스의 활동 50주년을 맞는 해라서 팝 음악계는 롤링 스톤스 마케팅에 바짝 신경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레전드의 소환’만이 아니라 서구 음악계도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의 2006년 < Back To Black > 앨범이 나와 ‘빈티지’ 열풍을 일으킨 뒤 부분적으로 현재진행형 가수의 시계추를 1960년대로 돌렸다. 그 후 ‘복고 소울’파인 더피(Duffy)와 아델(Adele)이 출현했다.

지난해 「Rolling in the deep」, 「Someone like you」, 「Set fire to the rain」과 같은 노래로 아델이 팝 차트와 시장 그리고 그래미 시상식을 싹쓸이한 것은 복고의 대첩으로 등식화해도 과언은 아니다. 평단은 “최근 음악계의 지나치게 과장되고 요란한 경향에 대한 염증이 아델 현상을 초래했다”며 복고 흐름으로 진단했다.


대중심리를 이용하는 퇴행성

최근에 부는 복고보다도 이 복고에 대한 언론의 관심에는 무조건 동의만은 할 수 없는 뭔가가 숨어있다는 인상을 떨칠 수가 없다. 복고는 대체 뭘 지향하는가. 단지 어지럽고 현란한 아이돌의 군무와 전자리듬에 정나미가 떨어져서 서정적이고 편안한 왕년의 멜로디 음악으로 돌아가는 건가. 또 예전 콘텐츠의 우수성을 그것에 둔감한 신세대에게 알려 정서의 밸런스를 유지하려는 선한 의도의 산물인가.

복고가 빠르게 연착륙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게 아니라 대중은 예상보다 변화를 겁내며 익숙한 것,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그 대중심리를 언론이 이용하기 때문 아닐까. ‘어른이 되면 힘들게 알아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트렌드에 둔감하다. 거의 무조건 옛날에 접했던 것이 좋다. 그것은 인지상정이며 만약 젊은이들도 동참해 온고지신을 되뇐다면 그것은 덤이다!’ 지금의 기성세대들은 젊었을 때에 전자리듬보다는 어쿠스틱 악기에 의한 실제(리얼) 연주의 음악에, 리듬 중심의 음악보다는 멜로디 음악에 친화력을 키웠다. 언론이 그들의 음악선호를 섬기면 도덕적으로 또 상업적으로도 무난하다.

복고가 지나치게 판을 치게 되면 결과적으로 새로운 것, 진취적으로 향하려는 대중예술의 경향을 약화시킬 소지가 생겨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복고 흐름이 현재 지나치게 환영받고 있기 때문이다. 뒤로 돌아가는 것은 앞으로 뻗어가려는 분위기가 가득할 때에 ‘다양성’을 꾸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복고가 구세주인양 떠들어대고 그것만을 찬양하는 모습은 퇴행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갈등’을 조장하는 ‘세대 분리주의’의 위험성마저 읽힌다. 이것은 정치사회의 측면에서 보수적 기운이다.

‘서태지 20년’에 대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퇴행과 역행의 기미를 보이는 복고에 대한 접근과 의식적 편차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서태지 데뷔 20년은 어느새 스무 해가 흘러 추억의 시점이 됐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세대의 공격과 저항성, 현상 타파, 새로운 가치와 질서에 대한 갈구를 되새기자는 것에 의미망이 있다. 거기에는 대중예술의 방향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저류한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창의적인 동기를, 실험하고 도발하는 흐름을 격려하고 북돋워주는 것이다. 진퇴의 길에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바라는 것은 퇴(退)가 아니라 진(進)이다. 진이 아니면 성취와 발전은 없다. 대중적 지평이 여전히 약함에도 불구하고 ‘인디’ 음악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중음악은 옛 것에 매달리지 않고, 현상을 타파하고 미지의 토양으로 내달리는 담대한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면서 개척과 진화의 역사를 써왔다.

서태지가 그랬고 척박한 한국 땅에 록을 심은 신중현, 대마초 파동 후 침체기에 록의 부활을 견인한 산울림, 음반예술의 미학을 확립한 조용필, 팝 발라드의 획을 그은 유재하가 그랬다. 복고는 진취의 흐름을 보완하며 전체적인 다채로움을 엮어낼 때 가치를 발하지만 지금의 복고 트렌드는 보수적이게도 과거의 것에 흥분조로 갈채를 보내고 상업적으로 이입하는 분위기와 포옹 중이다. 뭐가 선두에 서야 하는지, 어떤 것이 보조해야 하는지 주종(主從) 구별에 민감해야 한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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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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